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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개의 탑 4

경주 천군동 동.서 삼층석탑 (보물 168호), 보문단지 앞 마을 절터에 남아 있는 통일신라 전성기 삼층석탑

경주시 천군동 마을 농경지 가운데 남아 있는 보물 168호로 지정된 경주 천군동 동.서삼층석탑이다. 통일신라시대 가람배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전형적인 '두 개의 탑' 모습을 하고 있는 삼층석탑이다. 원래는 들판에 무너져 있던 것을 1939년에 목원한 것으로 통일신라 전성기 삼층석탑 형식을 하고 있다. 현재 동탑은 기단과 탑신만 남아 있고, 서탑에는 머리돌 장식이 일부 남아 있다. 머리장식이 남아 있는 서탑의 높이가 7.7m로 전성기 석탑의 위용을 갖추고 있다. 두개의 탑은 같은 양식을 하고 있는데, 2층의 기단부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려 놓고 있다. 통일신라 전성기인 8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석가탑과 마찬가지라 기단부와 탑신 몸돌에 특할한 장식을 하고 있지 않으며, 탑신 몸돌 모퉁이에 기둥을 새겨 놓..

경주 남산동 동.서삼층석탑(보물 124호), 형식이 다른 두개의 탑이 세워져 있는 절터

경주 남산 동쪽 서출지 남쪽편에는 불국사처럼 형식이 다른 두개의 탑이 세워져 있다. 통일신라 전성기가 끝나가는 9세경에 세워진 보물 124호로 지정된 이 석탑은 모전석탑 형식의 동탑과 정형화된 통일신라 삼층석탑 형식을 하고 있는 서탑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남아 있는 두개의 석탑 배치 등으로 볼 때 어느정도 규모가 있는 사찰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어떤 사찰이 있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 남산사 또는 양피사 등이 부근에 있었다는 후대의 기록이 있다고 한다. 부근에는 경주 외각의 오래된 저수지인 서출지와 통일신라 쇠퇴기의 왕릉인 헌강왕릉과 정강왕릉이 있다. 동탑은 탑신은 일반 석탑과 비슷해 보이지만, 기단부가 3칸의 큰 육면체돌을 벽돌처럼 쌓아서 만든 것으로 진흥왕릉 아래에 있는 서악동삼층석탑과 ..

경주 원원사지삼층석탑 (보물 1429호), 통일신라 밀교를 대표하는 원원사 절터에 남아 있는 두개의 탑

경주에서 동남쪽을 20여 km 떨어진 외동읍 모화리 동쪽 산에 위치한 통일신라 밀교의 중심지였던 원원사 절터에 남아 있는 보물 1429호로 지정된 원원사지 삼층석탑이다. 이 석탑은 통일신라 전성기의 정형화되어가던 삼층석탑의 구조를 하고 있으며, 절터 가운데 두개의 탑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두개의 탑은 같은 양식으로 만들어졌으며, 2단으로 기단부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려놓고 있다. 부분적으로 파손된 곳이 많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통일신라 삼층석탑의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석탑의 기단부에는 연화좌에 앉아 있는 십이지신상이 새겨져 있으며, 탑신 1층 몸돌에는 사천왕상이 새겨져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무덤 등에는 각 방위를 지키는 신장으로 십이지신상을 새겨 넣는 경우는 많지만 석탑 기단부에 십이지신상을 새긴것..

경주 불국사 다보탑 (국보20호), 석가탑과 함께 '2개의 탑'을 연상시키는 통일신라 석탑의 걸작

불국사를 대표하는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석가탑과 다보탑일 것이다. 많은 전란등으로 불국사가 타버렸을 때도 석가탑과 다보탑이 있었기 때문에 불국사는 계속 재건되어왔던 것으로 생각된다. 황룡사의 목탑이 불타버렸을때 그 복구 비용을 감당할 수가 없어 황룡사는 역사속으로 사라져 버렸지만, 불국사는 석가탑과 다보탑을 중심으로 언제나 예전같이 재건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불국사 마당에 있는 석가탑과 다보탑을 보면 그림,사진,동전 속에서 볼때의 약간 왜소함에 비해 실물의 크기에 감탄을 하게된다. 이 두개의 탑을 중심으로 불국사의 역사는 계속되는 것 같다. 국보 20호로 지정된 다보탑은 석가탑과 함께 대웅전 경내에 나란히 서 있는 '2개의 탑'이라는 의미를 잘 보여주는 석탑으로 높이 10.34m의 대형 석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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