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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루 24

상주 태평루, 상주목 관아 출입문인 문루

상주시 임란북천전적지 언덕으로 옮겨져 있는 옛 상주목 관아 출입문 문루인 태평루이다. 조선후기에 건립된 관아 출입문 문루로 앞면 3칸, 옆면 2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정형화된 문루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규모는 큰 편이다. 원래는 상주목 관아가 있었던 상주도심 왕산역사공원 부근에 있었던 것을 일제강점기에 도심이 정비되면서 상주향교로 옮겨졌다가 최근에 이곳에 임란전적지가 조성되면서 객사인 상산관 등과 함께 이곳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1층은 출입문으로 사용하고 2층 누마루는 읍치 마을을 오가는 사람들을 살펴보는 용도로 지어졌다. 상주는 경주와 함께 경상도의 어원이 되는 고장으로 고려시대 전국 지방조직인 12목이 설치될때 상주목이 설치되었으며, 조선초에는 경상감영이 설치되기도 하였다. 낙동강 중류에 위..

조선 관아 2013.10.11

남한산성 우익문(서문), 한양과 연결된 성문

남한산성 서문은 우익문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는 성문으로 남한산성 북동쪽 모서리 부분에 위치하고 있는 성문이다. 산성의 성문과 연결되는 도로가 없고, 성문 앞은 경사면이 급해서 등산로로만 이용되고 있을뿐이지만, 한양에서 송파나루를 거쳐서 성문으로 통하는 길이 가장 가까운 길이기때문에 이 곳에 성문이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성문은 문루와 출입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도로가 없는 까닭에 출입문의 크기는 일반적인 성문에 비해서 작아 보인다.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군대가 주둔했던 지역 또한 이 서문 아래의 송파지역으로 산성내에서도 가장 전투가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 성문은 일반적인 산성의 성문과는 달리 한양에서 피신한 국왕 일행이 가장 빨리 산성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설치한 것으로 보이며, 산성이 처음 축조..

[서울 성곽] 숭례문(남대문, 국보1호)과 서소문까지 성벽

속칭 남대문이라고도 불리는 숭례문은 우리나라 국보 제1호로 지정되어 있는 한양 도성의 정문이다. 숭례문은 1396년(태조 5)에 축조되어, 1447년(세종 29)에는 개수공사를 하였으며, 1961~1962년 사이 목재와 석재 등이 썩고 부서져 무녀질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여 문루와 홍예를 헐고 중수하였다고 한다. 목조건축물을 중수한다는 것은 부서진 석재와 썩은 목재만 새것으로 갈고 다른 것은 옛날 것을 그대로 사용하여 옛 모습을 유지하기때문에 원래 건축물의 가치가 크게 훼손되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이런점에서 최근에 방화로 숭례문 문루가 불타버리고 다시 복원되었다고 해서 국보1호로의 상징적 의미와 가치가 없어지어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1960년대 해체수리를 할때 발견된 상량운에서 1479년 (성..

진주 경상우병영 관아 건물터와 문루인 영남포정사

진주성은 조선후기 경상우병영이 주둔하던 곳으로 공북문 안쪽 언덕에 경상우도병마절도사가 근무하던 공간인 운주헌을 비롯하여 관덕당, 공진당 등 관아 건물과 무기고, 화약고 등이 있었다. 옛 관아건물들은 구한말 병영이 폐지되고 전국이 13도로 개편될 때 경상남도 감영이 설치되었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도청이 부산으로 옮기기 전까지 자연스럽게 이곳에 도청이 설치되면서 옛 관아건물들은 허물어진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옛 관아 건물터에 인근에 있던 청계서원과 사당이 옮겨져 들어서 있고 옛 관아건물로는 병영과 감영 문루였던 영남포정사가 남아 있고, 공식적인 누각이자 남장대였던 촉석루와 관아 누각으로 사용되었던 북장대가 남아 있다. 조선시대 병영은 국방상 주요한 요지에 설치된 군사조직으로 관찰사 또는 지방관인 목사가 겸..

조선 관아 2013.08.01

북한산성(사적162호) 중성문, 대서문과 행궁 사이에 쌓은 중성 출입문

북한산성의 정문인 대서문과 북한산성 마을이 있던 등운각갈림길을 지나서 계곡을 따라서 등산로를 한참 올라오면 만날 수 있는 성문이 중성문이다. 중성문은 북한산 노적봉과 중취봉 사이에 쌓은 중성에 설치된 성문이다. 이 중성문 안쪽이 북한산성 내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곳에 별도로 중성을 축조한 이유는 이곳이 지형이 평탄하여 대서문이 적에게 공략당할 가능성이 많을 것으로 예상하고 그 중간 병목같은 위치에 중성을 쌓고 성문을 설치하였다고 한다. 중성문을 들어서면 북한산성 계곡에 경치가 아름다운 곳에 설치된 정자인 산영루를 비롯하여, 북한산성을 거처간 관리들의 공덕비들이 세워져 있는 비석군이 있고, 그 안쪽에 국왕의 피신처로 마련한 행궁을 비롯하여 식량과 무기를 저장하던 창고, 북한산성 승병들을 지휘하던 ..

대구 경상감영 관풍루, 출입문인 포정사 문루

대구 도심 달성공원에 남아 있는 옛 경상감영 출입문이었던 관풍루이다. 조선시대 관찰사가 근무하던 감영 출입문으로 보통 '포정사'라고 불렀는데, 대구감영 포정사문루는 '관풍루'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다. 원래는 '폐문루'라고 불렀는데 '관찰사가 문루위에서 세속을 살핀다'는 뜻으로 '관풍루'라 이름을 지였다고 한다. 앞면 3칸 옆면 2칸의 전형적인 관아 문루 형태를 하고 있다. 문루 안쪽에는 '영남포정사'라고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원래는 경상감영이 있던 대구 도심 경상감영공원에 있었던 것을 일제강점기에 도청이 들어서면서 이곳 달성공원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경상감영는 조선시대 경상도를 관할하던 관찰사가 근무하는 관아이다. 조선초기 관찰사는 임기 2년(초기1년)으로 지역을 순회하면서 근무했기때문에 특별히 감영..

조선 관아 2013.04.22

서산 관아문, 옛 서산군 관아 아문과 노거수

서산은 충남 서해안의 진산이라 할 수 있는 가야산 서쪽편에서 태안반도 사이에 낮은 구릉지대에 위치한 고장으로 동쪽으로 당진.예산, 남쪽으로 홍성, 서쪽으로 태안군에 접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서산시에는 충청병영이 있었던 해미현과 서령군이 있었다. 이 지역은 삼국시대 백제가 서쪽끝 태안반도 끝 항구를 통해 중국과 교류하던 주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으며, 조선시대 삼남지방에서 세금으로 걷어들은 물자를 운반하던 조운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고장이다. 남쪽의 천수만, 북쪽의 아산만을 통해 바다와 쉽게 접근할 수 있었기때문에 고려말, 조선초 왜구의 위협을 많이 받았던 곳이며, 병자호란 이전까지 서해안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하 해미읍성에는 충청병영이 설치되어 있었다. 서산시청을 비롯한 서산시 주요 관..

조선 관아 2013.03.26

순천 낙안읍성, 동문인 낙풍루와 주변 성벽

전남 순천시 낙안면에 소재한 낙안읍성은 조선시대 이 지역에 있었던 낙안군 관아가 있던 곳으로 남해안 지역에서는 꽤 넓은 평야지대를 이루고 있는 낙안들판 북쪽편에 자리잡고 있다. 동쪽으로는 순천과 연결되며, 북쪽으로는 승주, 구례를 거쳐서 남원과, 서쪽으로는 보성지역과 연결되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고려말, 조선초에 왜구의 침입이 많았던 지역으로 해안에서 비교적 안전한 거리에 떨어져 있는 곳에 읍성을 쌓아 대비했던 곳이다. 낙안읍성은 조선시대 읍성들 가운데 가장 원형이 잘 보존된 곳으로 평지에 장방형의 석축성을 쌓고 있다. 낙안읍성에 있는 동.서.남 3개의 성문 가운데 지금은 정문처럼 사용하고 있는 동문은 실제로 남해안이 있는 벌교지역과 연결되는 곳으로 왜구의 침입이 예상되는 경로이기도 하다. ..

순천 낙안읍성 관아 아문인 낙민루와 임경업장군 선정비

조선시대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세워진 많은 읍성들 가운데 그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낙안읍성은 원래 세종대에 흙으로 쌓은 토축성을 개축하여 석축성으로 쌓은 것이다. 현재의 성벽은 조선 인조대에 낙안군수를 지낸 임경업장군이 크게 보강한 것으로 지금도 읍성내 관아 객사 입구에 그의 선정을 기리는 선정비가 세워져 있다. 낙안읍성내에는 아직도 100여명 이상의 주민들이 거주하는 초가집들이 있고 읍성 북쪽편에는 조선시대 관아 건물들이 있다. 낙안읍성 관아건물로는 초등학교 건물로 사용되었던 객사, 최근에 복원된 동헌과 내아, 문루인 낙민루가 있다. 읍성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큰길가에 위치하고 있는 관아 출입문인 낙민루는 다른 지방 관아 문루가 동헌 입구에 있는 것과는 달리 고을 수령의 숙소인 내아 출입문..

조선 관아 2012.10.19

남한산성 북문(전승문), 병자호란 최대의 패배가 있었던 곳

남한산성 북문에 해당하는 전승문이다. 이 성문은 원래 남한산성을 축조할 때 부터 있었던 성문은 아니고 인조때 신축한 성문이라 한다. 이 곳의 이름은 '전승문'이라고 부르는데 이 곳이 병자호란 당시 가장 큰 패전이 있었던 장소라서 그 사실을 잊지말자는 뜻에서 그런 이름을 붙혔다고 한다. 남한산성에서 북문은 서울 강동지역 한강유역과 연결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북문 아래쪽은 통일신라시대 한강유역을 관리하는 주요 방어시설인 이성산성과 고려초 크게 세력을 떨쳤던 광주지역 호족의 근거지인 하남 춘궁동과 연결된다. 정문격인 서문과는 달리 일반적인 성곽의 성문과 비슷한 규모로 지었으며, 이 쪽 방면으로는 계곡을 통해서 접근하기는 쉽지만, 계곡과 주변 지역이 경사가 있는 편으로 쉽게 공략할 수 없는 지형을 하고 있다. ..

논산 연산아문, 옛 연산현 관아 출입문

연산현은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를 구성하고 있는 지역중 동쪽 5개면을 포괄하는 조선시대 행정구역이다. 이 지역은 삼국시대 백제가 멸망하기전 마지막 큰 전투라고 할 수 있는 황산벌 싸움이 벌어진 곳이며, 지역내에 계백장군의 묘라고 전해지는 무덤이 있다. 이 지역은 황산벌 싸움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지만, 조선후기 유학의 학파 중 율곡의 제자로 기호학파를 대표하는 김장생의 세거지가 있던 곳이기도 하다. 소론의 영수 윤증이 세거지인 노성현과 함께 조선후기 정치와 사상을 이끌어온 고장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연산현 내에는 김장생을 모시는 서원인 돈암서원을 비롯하여 서원과 사당, 재실 등 유교와 관련된 문화유적들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연산현 관아가 있던 자리에는 현재 관아출입문인 아문만 남아 있고, 객사와 동헌을 ..

조선 관아 2012.02.12

남한산성, 동문인 좌익문(左翼門)

남한산성은 한강 유역이 내려다 보이는 서장대를 중심으로 주변 산능선을 따라서 석축을 쌓은 둘레 8km의 대표적인 조선시대 산성이다. 남한산성에는 동.서.남.북에 4개의 대문을 두고 있으며 좌익문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동문은 광주지역과 연결되는 성문으로 한반도 중부내륙지방과 연결되는 주요 교통로이기도 하다. 남한산성 동문은 산성내 행궁을 중심으로 좌측에 위치하고 있어서 좌익문이라고 부른다. 동문은 남문과 함께 남한산성에서 가장 통행이 많았던 성문으로 광주에서 계곡을 따라 평탄한 길이 나 있기때문에 아마도 산성내 필요한 물자는 동문을 통해서 공급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동문은 지형적인 이유로 계단을 쌓고 그 위에 성문을 축조했기때문에 실제 우마차나 사람들의 통해은 남쪽편에 있는 제11암문을 이용했을 것..

북한산성 대서문, 산성 정문격으로 제일 낮은 곳에 설치된 문루

북한산성에 설치된 14개의 성문 중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정문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 대서문이다. 이 성문은 고양시 북한산계곡을 통해서 북한산을 등반하는 가장 쉬운 코스 중 하나로 가장 많은 등산객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서울 북쪽 험준한 북한산 능선을 따라 쌓는 북한산성 중에서도 방어상 제일 취약한 곳으로 여겨졌으며, 일상적으로 북한산성을 출입하는 통로이기도 한다. 이런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대서문에서 계곡을 따라서 올라가면 중성문을 만들어 놓고 있다. 대서문은 잘다듬은 크고 튼튼한 화강석으로 석축과 홍예를 쌓고 그 위에 문루를 올려놓은 전형적인 조선후기 성문의 모습을 하고 있다. 홍예좌우에는 동물머리 모양의 빗물을 빼내는 석누조가 설치되어 있고, 문루 앞쪽에는..

보령 남포현 관아 건물, 외동헌과 진서루

남포현은 충남 보령시 남포면 일대에 있었던 옛고을이다. 삼한시대부터 있었던 아주 오래된 고을로 차령산맥 끝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고려말 서해로 출몰하는 왜구를 막기 위해 이 곳에 읍성을 쌓고 군영이 설치되었다. 남포현은 천수만 입구의 왜구의 침입이 많았던 고장에 위치하고 있어서 그런지 상당히 견고한 읍성을 쌓아두고 있다. 남포현 관아는 고려말에서 조선초에 구축한 읍성안에 위치하고 있으며, 현재는 외동헌, 문루인 진서루, 동헌 출입문인 내삼문이 남아 있다. 동헌은 앞면 7칸의 전형적인 관아 건물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문루인 진서루는 앞면3칸, 옆면 2칸으로 잘 지어진 건물로 보인다. 동헌은 읍성 서쪽편에 자리잡고 있으며, 읍성 중앙에 있던 객사 자리에는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초등학교가 자리잡고 있다. ..

조선 관아 2011.06.27

제천 청풍 팔영루, 옛 청풍도호부 문루

남한강 충주호에 수몰된 옛 청풍도호부 읍성 성문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청풍 팔영루이다. 청풍도호부는 부사가 고을 수령인 조선시대에는 상당히 규모가 컸던 고을이다. 청풍도호부는 충주, 단양과 함께 남한강 내륙수운의 중심지이자 영남에서 서울로 통하는 주요 교통로인 죽령고갯길과 연결되는 교통의 요지로 삼국시대 이래로 크게 번성하였던 고장으로 여겨진다. 충주와 함께 경부선 철도의 교통으로 크게 쇠락했다가 충주댐 건설로 수몰되는 비운의 고장이라고도 할 수 있다. 청풍 팔영루는 옛 청풍도호부 읍성 성문으로 보이는 문루이다. 팔영루를 지은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조선초기 전국적으로 읍성을 구축할 때 처음 지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팔영루는 2.2m 기단에 크지 않은 4각형의 출입문을 만들고 그 위에 문루를 올려놓고..

원주 포정루, 강원 감영 출입문 문루

강원도 원주시는 조선시대 강원도 관찰사가 근무하던 강원감영이 있었던 도시이다. 섬강 지류인 하천 동쪽편 강원감영지는 4대문이 있었고 관찰사가 업무를 보던 선화당을 비롯하여 40여동의 큰 건물들이 있었던 조선시대 행정 중심도시였다. 강원도 도청소재지가 춘천으로 옮겨가서 행정중심지로서 역할은 많이 퇴색되었지만 강릉, 춘천과 함께 강원도를 대표하는 도시로 남아 있다. 옛 강원도 관찰사가 근무하던 강원 감영은 대부분의 건물들이 지금은 남아 있지 않고, 옛 강원감영이 있었던 자리는 원주시 중심 상업지구로 변모해 있다. 강원 감영 건물 중 남아 있는 건물의 하나인 관아 출입문인 포정루이다. 조선시대 관아건물은 지역별로 고유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관찰사가 근무하던 감영은 같은 이름을 사용했던 것으로 보..

조선 관아 2011.05.10

공주 포정사문루와 옛 충청감영터

충청감영은 충청도관찰사가 근무하던 곳으로 원래 청주에 있던 것을 임진왜란 이후부터 공주로 옮겼으며, 공산성을 비롯하여 여러 장소로 옮겼다가 숙종때인 1603년 이후부터 현 공주사대부속고등학교가 있는 자리에서 200년동안 있었다고 한다. 구한말 공주감영에는 49동 481칸의 건물이 있었다고 하며, 일제강점기에 도청이 들어서면서 상당수 건물들이 없어지고, 충청관찰사가 근무하던 선화당과 구한말에 지어진 공주목 동헌, 그리고 정문인 포정사 문루만이 남아 있다고 한다. 포정사문루는 조선시대 공주에 있었던 충청감영 정문이다. 아래층에는 큰 문을 달아서 감영으로 들어가는 출입구로, 2층은 누각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까지 공주사대부고 정문으로 사용했던 것을 공주군청으로 옮겨졌다가 1993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

조선 관아 2011.04.14

부여 홍산현 관아 아문

부여군 홍산면 소재지에는 옛 홍산현관아 건물들이 남아 있다. 홍산현 관아는 다른 지역과는 달리 동헌, 객사, 형방청 건물이 같이 남아 있어 조선시대 관아의 모습을 제대로 엿볼 수 있는 곳 중의 하나이다. 홍산현은 부여의 서남쪽 백마강 건너편에 있는 평야지대로 고을의 규모는 그리 크지는 않지만 평야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나름 경제력이 있었던 고을로 보이는 곳이다. 홍산현 관아 건물 중 동헌 출입문인 아문은 옛날부터 있었던 건물은 아닌 것으로 보이며, 홍산현이 사적지로 지정되면서 복원된 관아 아문 문루로 보인다. 홍산현은 현감이 고을 수령인 작은 고을이지만, 경제력이 있었기 때문에 문루가 있는 아문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삼문으로 이루어진 관아 출입문 위에 문루를 세운 전형적인 아문의 형태를 하고 있어 ..

조선 관아 2011.01.06

홍성 조양문, 홍주성의 동문

홍주성은 조선시대 홍주목 관아가 있던 읍성으로 지방 읍성 중에는 규모가 제법 크고, 잘 보존되어 있는 읍성 중의 하나이다. 홍주성 내에는 홍주목 관아와 주요 행정시설들이 있었는데, 정3품이 목사가 다스리던 고을로 관아의 규모도 컸던 것으로 보인다. 홍주성에는 남쪽과 서쪽의 성벽, 동헌, 아문과 동문인 조양문이 남아 있다. 홍주성은 구한말 고종때 대대적인 수리를 한 성곽으로 역사적으로 보면 가장 최근에 축성한 성곽이라고 할 수 있다. 홍주성에는 동문인 조양문, 서문인 경의문, 북문인 망화문으로 3곳에 문루를 세웠었는데 지금은 도심 한가운데에 조양문만이 남아 있다. 조양문은 구한말 을사조약에 반대하여 일으킨 의병군과 일본군의 치열한 전투로 상당부분 파괴되어 있던 것을 1975년에 복원하였다고 한다. 홍주성의..

[서울 성곽] 혜화문, 한양도성 동소문에 해당하는 성문

사직터널에서 산능선을 따라서 인왕산을 거쳐 북악산을 지나 창덕궁과 성균관대학 뒤쪽 능선을 지나서 의정부 방향 도로와 만나는 곳에 있는 혜화문이다.한양도성의 동소문에 해당하는 성문으로 의정부, 양주를 거쳐 함경도 방향으로 연결된 도로들이 한양도성으로 들어오는 혜화동 고갯길에 있던 성문으로 지금은 원래의 위치에서 동쪽편 언던에 위치하고 있다. 다른 성문과는 달리 원래부터 있던 성문이 아니라 90년대에 복원한 성문이다. 혜화문 안쪽으로는 혜화동 대학로가 있으면, 성곽은 다시 낙산 능선을 따라서 계속 이어진다. 한양도성의 동소문은 원래 의정부방향 도로 중앙에 있었는데, 도로 확장 등으로 현재의 위치인 동쪽편 언덕에 복원해 놓고 있다. 복원된 혜화문. 아치형 성문과 성루로 이루어져 있으며, 원래 있었는 성루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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