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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성왕 4

[부여박물관] 백제 성왕대의 대외교류, 남북조의 문물을 받아 왜倭에 전하다.

고대국가 이래로 한.중.일 해상무역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한반도 서남부 해안을 장악하고 있던 백제는 삼한시대로 이래로 꾸준한 대외교류를 통해서 동아시아에서 국제적 입지를 확고히 하고 있었다. 백제는 중국의 남조, 왜와 상당한 수준의 교류관계를 가조고 있었으며, 그 중간에 위치한 가야지역과도 유대관계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북쪽의 고구려, 동쪽의 신라와는 대체로 적대적 또는 비우호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백제가 고구려의 압박을 받고, 신라와의 한가유역 쟁탈전에서 실패한 이후 수도를 사비로 옮기면서 중국,왜와의 관계는 더 깊어졌다고 할 수 있다. 부여로 수도를 옮긴 성왕은 중국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남조의 양나로부터 많은 제도와 문물을 받아 들였으..

지역박물관 2012.05.31

[부여박물관] 정림사지 출토유물, 성왕대 이후 백제의 의관제

백제의 마지막 수도 부여에 남아 있는 대표적인 유물인 오층석탑이 남아 있는 정림사지는 도성의 중심지에 위치한 사찰로 경주 황룡사와 비슷한 역할을 가지고 있는 사찰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찰이 건립된 시기는 백제가 부여로 도읍을 옮기던 시기로 성왕이 중국 남조 양나라의 지원을 받아서 도성, 궁궐 등과 함께 도시의 기능을 갖추기 위해서 제일 먼저 세운 공공시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정림사의 위치는 백제 궁궐인 사비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부여읍 구아리 도심에서 정남방향으로 약 200여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현재로 도로도 남북으로 직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중국 남북조시대나 당나라때 존재했던 투루판의 교하고성이나 고창고성에서도 큰 절이 도심의 중심에 위치하고 그 주변으로 광장과 상업지역이 ..

지역박물관 2012.05.30

[부여박물관] 백제 성왕대 통치체제, 왕궁과 관아

백제의 통치제제로 백제가 건국하여 고대국가가 성립하기 이전에 있었던 부족적 성격이 강한 오부제가 있었다. 백제의 중심부족은 중부가 되고 나머지 방위에 독자세력을 가지고 있었던 집단에게 독자성을 인정하고 관직을 부여하는 형태라 할 수 있다. 실제로 흔히 말하는 백제의 오부제는 '수도오부제'로 한성백제시절부터 있었으나 성왕이 사비성으로 천도한 이후 본격적으로 적용되었던 제도이다. 오부는 수도를 상부.전부.중부.하부.후부의 오부로 나누고 각부를 다시 오항으로 나누어 거주하게 하고, 달솔이라는 부의 책임자를 두어 군사를 거느리게 하는 제도로 백제 지배계층인 귀족들을 수도에 거주하게 하고 이들을 통제하기 좋게 하기 위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백제의 통치제도를 보여주는 유물들은 백제의 마지막 도성의 사비성내..

지역박물관 2012.05.29

[부여박물관] 성왕과 사비도성

사비성은 부여읍 지역에 있었던 백제시대의 성으로 좁게는 부소산성을 말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백제의 수도였던 시기에 쌓았던 읍성 형태의 백제 나성과 백제의 마지막 수도를 일컫는 말이다. 백제는 지형이 방어에 용이한 공산성을 중심으로 한 웅진이 주변에 넓은 벌판이 부족하고 협소하여 넓은 벌판을 배후로 하고 사방에 크고 작은 산성이 있는 부여로 천도한 것은 성왕 16년(538)이다. 사비성은 백마강이 자연적인 성벽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으며, 부소산성 남쪽인 관북리에 궁궐과 지배층의 거주지가 형성되어 있었으며, 부소산성에서 동쪽 능산리 고분군과 남쪽 궁남지 아래쪽까지 산과 평지를 연결하는 나성을 쌓았으며, 이를 사비도성이라고 할 수 있다. 사비지역은 웅진이 수도였을때부터 배후도시로서 기능을 하고 있..

지역박물관 2012.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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