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story Traveling
반응형

부여무량사 8

부여 무량사에 모셔진 매월당 김시습 부도

부여 만수산 골짜기에 자리잡고 있는 무량사는 세조의 왕위찬탈에 반대했던 생육신 중의 한사람이자 당대의 천재로 널리 알려진 매월당 김시습이 말년을 보내고 돌아가신 사찰이다. 이 사찰에는 매월당 김시습의 흔적으로 그가 직접 그렸다고 전해지기도 하지만 사실여부가 확실하지 않은 영정이 보관되어 있고, 사찰에서 약간 떨어진 언덕에는 그가 죽은후 남김 사리를 봉안한 사리탑이 모셔져 있다. 세조의 왕위찬탈을 반대하여 젊은 나이인 21세에 모든 것을 버리고 세상을 떠돌다 간 그의 삶이 아쉬워서 그런지 후대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고, 그래서인지 그가 만년을 보낸 무량사 또한 그의 명성과 함께 크게 번창한 사찰로 보인다. 무량사 입구 마을에서 서쪽편 언덕에는 여러기의 부도들이 모여 있는 부도군이 있는데, 그 중에서 ..

부여 만수산 무량사, 매월당 김시습이 만년을 보낸 사찰

충남 부여군 외산면 만수산에 위치한 무량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사찰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는 사찰경내에 있는 가장 유서깊은 문화재인 무량사오층석탑은 고려전기에 만들어진 석탑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로 미루어볼때 통일신라말기에서 고려전기에 크게 번창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사찰에는 현재 많이 남아 있지 않은 불전의 형태인 2층으로 이루어진 극락전을 주불전으로 해서 여러동의 작은 불전들이 있다. 무량사 극락전은 조선후기에 지어진 건물이지만, 금산사 미륵전과 함께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의 금당인 장륙전의 형태가 남아 있는 많지 않은 불전 중의 하나이다. 부여 무량사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고, 임진왜란때 불타버린 것을 현재의 규모로 중창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조선전기 천재이자 생육신인 매월당 김시습이..

전국 사찰 2011.02.20

부여 무량사 요사채와 김시습 초상 (보물 1479호)

부여 무량사는 부여군 서쪽편에 위치한 만수산에 있는 오래된 사찰로서 조선 세조때 생육신의 한 사람이자 당대의 천재로 유명했던 매월당 김시습이 만년을 보냈던 곳이기도 한다. 조선시대 행정구역 상으로는 이 곳이 홍산현이었기때문에 홍산 무량사로 많이 알려져 있던 곳이다. 무량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사찰이지만 대부분의 전각들은 임진왜란때 불타버렸다고 하며, 현재의 전각들은 그 이후에 중건된 것들이라고 한다. 김시습이 만년을 보낸 사찰이라서 후대의 유생들에 의해서 우대를 받아서 그런지 무량사 중불전인 극락전은 조선시대에 세워진 많은 사찰들의 전각들 중에서도 규모가 큰 편에 속하며, 그 모습도 삼국시대 금당인 장륙전의 모습을 하고 있다. 무량사는 주불전이 크기는 하지만, 승려들이 수양을 하는 수도 도량으로서의 ..

부여 무량사 불전들

부여 무량사는 조선초 생육신 중 한사람인 매월당 김시습이 만년을 보낸 사찰로 잘 알려져 있으며, 그가 후대 유림들의 숭상을 받아서 그런지 조선후기에 사찰이 크게 융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무량사에는 중심불전으로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전이 있으며, 남아 있는 사찰 중에서는 드물게 통일신라시대 미륵불을 모신 장륙전의 모습을 하고 있다. 무량사 주불전인 극락전 외에 동쪽편에는 명부전이 있는데, 19세기에 세워진 이 전각은 명부전 중에서는 역사가 깊은 편에 속한다. 사찰 경내 동쪽편에는 작은 건물이 영산전이 내력이 좀 있으며 보이며, 뒷쪽편에 관음보살을 모신 원통보전과 토속신을 모신 삼성각을 두고 있다. 무량사는 주불전인 극락전은 규모가 큰데 비해서 이 사찰을 찾는 사람이 많지 않고, 상주하는 스님들 또한 많지 않..

[부여 무량사] 천왕문, 일주문, 당간지주

무량사는 충남 부여군 외산면 만수산에 있는 사찰로 옛날에는 이곳이 홍산현 관할 지역이었기때문에 홍산 무량사라고 옛 기록에 많이 남아 있다. 조선초 세조의 왕위찬탈에 반대했던 생육신의 한사람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매월당 김시습이 만년을 보낸 곳으로 유명하다. 부여 무량사는 외산면 소재지에서 자동차로 5~10분 정도 들어가면 있는데, 산중에 위치한 산사이지만 마을에서 멀지 않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무량사 입구의 음식점들이 모여있는 마을을 알려주는 산문인 일주문을 나타나고, 일주문을 지나서 개울을 건너면 호젓한 산사의 느낌을 주는 길이 나타난다. 개울을 건너서 2~3분 정도 걸어들어가면 사찰 경내로 들어가는 천왕문이 나타나고 천왕문 옆 숲속에 옛날에 사찰입구임을 알려주는 당을 걸어놓았던 당간지주가..

부여 무량사석등 (보물 233호)

부여군 외산면 만수산에 있는 무량사는 신라시대 범일국사가 창건한 절로 전해지고 있으며, 조선초 생육신이자 당대의 천재로 잘 알려진 매월당 김시습이 만년을 보낸 사찰로 잘 알려져 있다. 현재의 건물들은 임진왜란때 불타버린 것을 조선 인조때 크게 중건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무량사 가람배치는 통일신라시대 금당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극락전과 그 앞에 정림사지오층석탑을 닮은 고려초기에 만들어진 오층석탑과 석등이 극락전과 나란히 하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무량사 오층석탑 앞에 있는 석등은 불을 밝히는 화사석을 중심을 아래에는 네모난 바닥돌 위로 3단의 받침돌을 쌓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아래 받침돌과 윗받침돌에는 연꽃잎이 조각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지붕돌이 약간 큰 느낌을 주고 있기는 ..

부여 무량사 극락전 (보물 356호), 삼국시대 장륙전의 모습이 남아 있는 불전

부여 무량사는 통일신라 말기에 처음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자세한 내력은 잘 알려져 있지는 않다. 다만 조선초 생육신의 한사람인 김시습 선생이 말년에 이 사찰에 머물다 세상을 떠난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무량사는 부여군에 속해 있는 만수산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사찰이지만 실제로 부여읍에서는 거리가 떨어진 곳으로 보령시와 경계를 이루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무량사 극락전은 우리나라 사찰 불전 중 삼국시대 지어진 황룡사나 미륵사에 있었던 큰 불전인 미륵불을 모신 장륙전과 비슷하게 외부에서는 2층, 내부는 단층으로 이루어진 불전이다. 남아 있는 불전 중 비슷한 형태로는 금산사 미륵전, 화엄사 각황전, 법주사 대웅전을 들 수 있다. 이런 사찰들은 대부분 삼국시대부터 존재했던 대형사찰들로 전란과 조선시대 억..

부여 무량사 오층석탑 (보물 185호), 정림사지오층석탑을 닮은 고려초기 석탑

부여 무량사는 조선 세조때 생육신인 매월당 김시습이 만년을 보낸 사찰로 사찰경내에 보물로 지정된 김시습 초상화와 사찰 바깥쪽에 그의 부도탑이 모셔져 있는 사찰이다. 부여 서쪽편 만수산 아래에 있는 이 사찰은 신라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알려져 있으며, 임진왜란 때 사찰 건물 전체가 불타버린 것을 인조 때 중창한 것이라 한다. 사찰 경내에는 보물로 지정된 2층 건물인 무량사 극락전이 있는 금산사 극락전보다는 작지만, 꽤 큰 건물로 통일신라시대 금당(장륙전)의 모습이 남아 있는 건물이다. 무량사 극락전 앞에는 웅장한 모습의 오층석탑이 남아 있는데, 부여 정림사지오층석탑과 그 모양새가 비슷하다. 기단은 단층인 것처럼 보이며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을 세워두고 있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층마다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