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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화재 13

대구 팔공산 동화사 주불전인 대웅전(보물 1563호)

대구 팔공산(해발 1193m) 동화사(桐華寺) 주불전인 대웅전(보물 1563호)이다. 이곳에는 석가모니여래, 아미타여래, 약사여래를 모시고 있다. 건물이 처음 지은진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여러차례 중건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은 1727년 경에 새로 지었다고 한다. 건물은 장대석를 쌓은 높은 기단 위에 자연석으로 만든 초석을 놓고 그 위에 기둥을 세웠다. 앞면3칸, 옆면 3칸 규모이며, 다포계 공포와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잘 다듬어지지 않은 나무를 기둥으로 사용하고 있어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주고 있다. 내부 불단 위에는 닫집이 화려하게 꾸며져 있다. 비교적 늦은 시기인 조선후기 영조대에 지어졌으며, 건축적인 조형미가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대구지역을 대표하는 동화사 주불전으로 이 지역의 사찰건축 경..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 (보물 247호), 전형적인 통일신라 삼층석탑

대구 동화사 부속 암자인 비로암 대적광전 앞에 세워진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삼층석탑이다. 1층 몸돌에선 돌로 만들어진 사리그릇이 발견되었는데, 통일신라 민애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탑을 세웠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탑은 2층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려 놓았다. 기단부에는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모양을 조각해 놓고 있다. 탑신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으며, 몸돌에는 기동모양을 새겨놓았다. 석탑을 구성하고 있는 기단, 탑신, 머리장식의 비례가 우수하며, 특별한 장식은 없지만 단정하면서 아름다운 조형미를 보여주고 있다. 대구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 장식적인 면은 없으나 전체적인 비례나 조형미가 우수한 편이다. 2층으로 된 기단부. 몸돌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모양을 새겨 놓고 있다. 3층..

부여 장하리 삼층석탑(보물184호)

부여 사비성 남쪽 장암면 장하리에 있는 고려시대 삼층석탑(보물184호)이다. 백제 석탑을 대표하는 정림사지 오층석탑을 모방해서 만든 석탑이다. 얇은 판석을 3층으로 쌓아 기단으로 하고 그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려 놓았다. 1층 탑신 몸돌은 정림사지 석탑처럼 4개의 기둥을 세우고 그 안쪽에 판석을 끼웠으며 2,3탑신의 몸돌은 하나의 돌에 기둥모양을 새겨 감실처럼 보이게 하고 있다. 탑신 몸돌에서는 사리구, 상아불상, 목제소탑 등 고려시대 유물이 발견되었다. 정림사지 석탑을 모방하여 만들었다고 하나 전체적으로 균형미가 없고 조형미도 떨어지는 편이다. 통일신라가 멸망한 이후 옛 백제의 향수를 자극하고자 지역 호족이 정림사지 석탑을 모방해서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석탑이 남아 있는 이곳은 금강나루터가 있었던 교..

부여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보물217호)

부여 가림성(加林城, 성흥산성)이 있는 성흥산 중턱 대조사(大鳥寺)에 있는 석조미륵보살입상(보물217호)이다.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과 함께 고려초기 이 지역에 성행했던 미륵신앙을 잘 보여주는 유물로 높이 10m의 거대한 불상이다. 머리에는 이중 보개(寶蓋)를 얹은 관(冠)을 쓰고 있는 전형적인 미륵보살의 형상을 하고 있다. 몸통에 비해서 얼굴을 크고, 얼굴은 4각형으로 넓적하며, 귀와 눈은 크고 코와 입은 작게 표현하고 있는 등 전체적으로 비례가 맞지 않으며 조각수법은 투박하다. 대조사(大鳥寺)는 삼국시대에 창건된 전통 깊은 사찰이다. 13세기(고려 원종)에 크게 중건되면서 현재와 비슷한 사찰 모습을 갖추게 되었으며, 석조미륵보살입상과 삼층석탑이 같이 조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조사(大鳥寺)라는..

[진주박물관] 서부경남지역의 불교 유적과 유물

서부 경남에는 한반도의 대표적인 명산 중 하나인 지리산이 자리잡고 있다. 지리산은 삼국시대 이래로 성스러운 곳으로 여겨졌으며 불교가 전래된 이래로 많은 사찰들이 자리 잡았다. 통일신라를 대표하는 화엄10찰 중 하나인 화엄사를 비롯하여 통일신라말부터 지방호족세력의 지원을 받아 크게 융성한 선종계열 사찰로 실상사, 단속사, 쌍계사 등이 있었으며, 고려말 결사운동을 주도했던 송광사와 선암사 등이 지리산 일대에 자리잡았다. 지금도 지리산 주변을 비롯하여 서부경남지역에는 많은 사찰들이 있지만, 통일신라.고려시대에 크게 번창하였다가 폐사된 사찰 또한 적지 않았으며, 많은 유물들이 절터에서 출토되고 있다. 대표적인 절터로 합천 영암사지, 거창 천덕사지, 함양 승안사지, 산청 단속사지와 석남사지 등이 있다. 신앙의 산..

지역박물관 2013.08.23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 (국보41호), 도심 상가지역에 남아 있는 고려시대 철당간

청주 남문로 일대는 조선시대에는 청주목 관아 및 충청병영이 있었던 행정 중심지로 넓은 벌판을 이루고 있는 넓은 청주벌판이 동쪽끝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는 고려시대 용두사라는 큰 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철당간만이 남아 있다. 고려 광종 13년(962)에 청주지역 호족들이 세운 사찰로 보이는 용두사는 인근의 흥덕사나 사뇌사와 함께 고려시대에 크게 번창했던 사찰로 보이며, 금속활자를 비롯하여 금속공예가 크게 발달했던 지역으로 보인다. 당간은 절입구나 법당 앞에 깃발이나 괘불을 거는 것으로, 돌로된 지주대를 마주보게 세우고 그 사이에 철이나 돌로 만든 당간을 세웠다.당간 몸체에는 당간을 세운 목적을 담은 명문이 새겨져 있다. 이글에는 '준풍3년'이라는 광종의 독자적인 연호와 함께 청주호족과 학교 관련 내용이 있..

[경주박물관 야외전시실] 석등, 밝게 빛나는 부처님 말씀

석등은 사찰의 가람배치에서 불상을 모신 불전 앞을 밝히는 석조물이다. 불교에서 등불은 부처님의 진리를 비춰줌으로 중생을 착한 길로 인도하고, 탑과 불상 앞에 등불을 밝히면 내세에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기복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지금도 사찰에서는 부처님이 태어난 초파일에 사찰입구에서부터 불전까지 끝없이 이어지는 연등을 볼 수 있다. 사찰의 가람배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구조물로서 석등이 언제부터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삼국시대 백제의 큰 사찰이었던 미륵사 절터에서 가장 오래된 석등의 화개석과 팔각연꽃무늬 하대석이 발견되었다. 원래 석등은 불전 앞을 밝히던 기능을 갖는데, 그 역할이 승려의 사리를 모신 승탑을 비롯하여 고려시대부터는 능묘를 밝히는 장명등의 형태로 확장되었다. 통일신라시대부터 본격적..

부산 범어사 석등과 당간지주

범어사 경내에 남아 있는 문화재 중 석탑과 함께 그 내력이 가장 오래된 석등이다. 이 석등은 의상대사가 범어사를 창건할 때 같이 조성한 것이라고 하나 실제로는 석탑과 함께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석등의 내력은 오래되었지만, 조각수법이 투박하고,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몇자례 수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오히려 전체적인 조화나 균형미가 떨어진다. 통일신라에 만들어졌으면 상당히 오래된 것이기는 하지만, 원형이 유지되지 않았고 조형미가 떨어져서 보물로 지정되지 못한 것 같다. 범어사에는 석등 외에 오래되어 보이는 여러개의 당간지주가 있는데, 이 또한 조각수법이 떨어지는 편이라서 그런지 문화재로 지정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범어사 경내에는 다른 사찰과는 달리 옛 당간지주에 당간..

보령 성주사지 동 3층석탑

보령 성주사지 금당터 뒷쪽에 나란히 서 있는 3기의 3층 석탑 중 동쪽편에 서 있는 3층석탑이다. 다른 2기의 3층석탑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반면에 이 석탑은 지방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다. 생긴 형태는 비슷하게 생겼지만 그 내력이 조각수법이 약간 떨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사찰 경내에 신앙의 대상인 불탑이 3기씩 배치되는 것은 전례가 없는 경우로 보이는데, 이 석탑은 다른 곳에 있던 것을 이 곳으로 옮겨 놓았다고 한다. 이 석탑은 전형적인 통일신라 말기의 3층석탑의 형태를 하고 있는데, 2단으로 된 기단부 위에 몸돌과 지붕돌로 이루어진 탑신을 3층으로 쌓아 올려 놓고 있다. 신앙의 대상으로 만들어졌던 전기의 석탑에 비해서 이 석탑은 장식적인 의미가 강한 석탑으로 통일신라 말기에 대량으로 제작되었던 ..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 (국보 201호)

봉화군 북지리는 봉화읍에서 십여리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태백산에서 발원한 큰 개천이 봉화읍으로 흘러 들어가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봉화 닭실마을을 나와서 봉화읍에서 부석사 방향으로 난 길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서쪽편 개울가에 국보인 북지리 마애여래좌상을 볼 수 있다. 북지리 마애여래좌상이 있는 곳은 교통의 요지로서 신라시대에 500여명의 승려들이 있었던 큰 사찰이 있었다고 한다. 북지리 여래좌상은 자연암벽을 파서 만든 석불로서 신라시대를 대표하는 것으로 국보 201호로 지정되어 있다. 마침 이 곳을 방문했을 때 법회가 있어서 세부적으로 살펴보지는 못했지만, 전체적으로 크고 웅장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주변에는 이 석불을 중심으로 사찰이 들어선 것 같은데, 내력이 깊어 보이지는 않아 보였다. 북..

양주 회암사 무학대사 홍융탑 앞 쌍사자석등 (보물389호)

양주 회암사 무학대사 부도를 구성하고 있는 홍융탑 앞 쌍사자석등이다. 이 쌍사자석등은 바닥돌과 아래받침돌이 하나로 붙어 있으며, 그 위에 화사석을 두고 있다. 이 석등은 기존의 8각 석등형태에서 사각형으로 바뀌었다는 것이 큰 특징이며, 무학대사의 명성이 연관되어서 보물로 지정된 것으로 보인다. 조각된 쌍사자는 가슴과 배가 붙이 있어서 입체감이 부족하고 그 조각 수법도 크게 세련되었다고 할 수 없으며, 화사석은 2개의 석재를 그냥 올려놓아 단순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양주 회암사 무학대사 홍융탑 앞에서 불을 밝혀주는 역할을 하는 쌍사자석등. 연꽃무늬가 새겨진 바닥돌과 아랫받침돌이 하나로 되어 있으며 쌍사자상이 중간받침돌 역할을 하고 있다. 회암사 무학대사 홍융탑 앞 쌍사자석등 쌍사자상을 새겨놓은 중간받침돌..

양주 회암사 무학대사 홍융탑 (보물388호)

양주 회암사는 고려말에 창건되어 조선후기에 폐사된 사찰로 조선 건국에 관련된 무학대사가 주지로 있었으며, 태조 이성계가 왕위에서 물러나 머물렀던 사찰로 조선 왕실과 관련이 많은 큰 사찰이다. 옛날의 영광을 간직한 옛 회암사는 그 건물터만 남아 있고 절터 뒷편에는 회암사와 관련된 고승들의 부도가 여럿 있으며, 그 부도를 중심으로 현재의 회암사가 자리잡고 있다. 회암사 옛터에서 뒷쪽으로 올라간 언덕에 있는 고승들의 부도 중 대표적인 것으로 보물로 지정된 무학대사 홍융탑은 8각의 바닥돌 위에 용과 구름이 새겨진 몸둘과 목조건축물 형태의 지붕돌로 구성된 부도로서 조선전기 부도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무학대사 홍융탑은 현재의 회암사 동쪽편 언덕에 있으며, 여러기의 부도 중 제일 앞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 부도..

안동 조탑동 오층전탑 (보물 57호), 벽돌과 화강암을 혼용하여 쌓은 전탑

안동시 남쪽 일직면에 자리잡고 있는 보물 57호로 지정된 조탑동 오층전탑이다. 이 곳 오층전탑이 있는 일직면 조탑동은 남안동 IC에서 가까운 곳에 있으며, 안동과 의성을 연결해 주는 5변 국도 가까이에 있다. 아마도 이 곳은 옛날부터 경북 남부지역에서 안동으로 들어가는 교통의 요지였던 곳으로 보인 이 오층전탑은 산지가 아닌 평지 사찰이 있었던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아마도 통일신라시대에 이 곳에는 안동지역을 여행하는 사람이 잠시 머물던 역원과 비슷한 역할을 한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곳 조탑동에서 안동 도심을 비롯하여 풍산지역 등 사람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과는 여자들 걸음 기준으로 반나절에서 하루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 조탑동 오층전탑은 석재와 벽돌을 섞어서 만든 우리나라 전탑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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