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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신 4

서울 노량진 사육신 역사공원, 단종복위를 꾀하다 처형당한 사육신 묘소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 경부선 철도가 지나가는 한강변 언덕에 위치한 사육신 공원은 조선초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에 대응하여 단종복위를 꾀하다 목숨을 잃은 사육신의 무덤에 조성된 공원이다. 원래 이곳에는 단종복위 사건에 가담하여 참혹하게 처형된 성승,박팽년,유응부,성삼문,이개 다섯분의 시신을 어느 스님이 현재의 위치에 모셨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숙종대에 사육신이 복위되면서 하위지, 유성원, 김문기의 가묘가 새로이 모셔지고 산기슭에 이들을 모시는 민절서원이 세워졌다. 현재 민절서원은 남아 있지 않고 1970년대 사육신묘 부근을 성역화 하면서 의절사라는 사당을 세우고 주변을 공원화하여 사육신의 충절을 기리고 있다고 한다. 조선초기 단종복위를 꾀하다 참혹하게 처형을 당한 사육신들은 박팽년을 제외하고는 그 후손도 ..

대구 달성 육신사, 박팽년 후손들이 사육신을 모시는 사당.

대구광역사 달성군 하빈면 묘리는 낙동강 동안에 자리잡고 있는 마을로 사육신 중 한명인 박팽년의 후손들이 모여사는 묘골마을이라는 순천박씨 집성촌이다. 박팽년 후손은 단종복위를 꽤하다 죽은 사육신 가운데 유일하게 후손이 살아남은 가문으로 사육신이 복권되면서 조선후기에는 관직에도 많이 진출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마을은 낙동강 동안에 자리잡은 달성군 하빈면에서도 양반들이 모여살았던 마을로 상당한 수준의 경제력이 있었던 모양이다. 묘골마을 안쪽에 위치한 육신사는 세조 때 사육신인 여섯분을 모시는 사당으로 원래는 인근에 있던 낙빈서원내 있던 하빈사에서 모셨는데 대원군의 서월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 1970년대 전국적으로 실시된 '충효위인 유적화사업'의 일환으로 건립되었다고 한다. 원래 하빈사에는 박팽년만을 모셨으나 ..

대구 달성 낙빈서원, 박팽년 후손들이 사육신을 모신 서원

낙빈서원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에 소재하고 있는 서원이다. 이 곳은 사육신 중 한명인 박팽년의 후손들이 정착한 달성군 묘골마을에서 약간 떨어진 낙동강변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본래 이곳에는 박팽년을 모신 사당이 하빈사가 있었으며, 현손인 박계창이 사육신이 나타난 꿈을 꾼 후 사육신 여섯분을 함께 제향했으며, 인근에 강당을 건립하여 낙빈서원을 세웠고 1694년에는 숙종으로부터 사액을 받은 사액서원이 되었다고 한다. 현재의 낙빈서원은 구한말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된 것을 일제강점기인 1924년에 강당만 복원하였다고 하며, 사당인 육신사가 1970년대에 후손들이 집성촌인 묘골에 건립됨으로써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낙빈서원은 후학을 양성하던 서당에서 출발한 초기의 서원들과는 달리 문중에서 ..

홍성 성삼문선생 유허, 선생이 태어난 외가 마을

충남 홍성군 홍북면 노은리 마을에 위치한 성삼문선생 유허이다. 이 마을은 선생의 외가가 있었던 곳으로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아이를 낳았느냐"고 하늘에서 세번 물었다는 성삼문선생 출생의 고사가 담긴 장소이다.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에 반대하다가 처형된 까닭에 선생이 태어난 집은 아직까지 남아 있지는 않지만, 그 집터는 오늘날까지 전해내려오고 있다. 이 곳에서는 조선후기 숙종때 선생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던 노은서원이 있었다고 하며, 우암 송시열 선생이 비문을 지은 휴허비와 노은서원에 모셨던 위패를 묻은 노은단이 유적지임을 말해주고 있다. 노은서원은 구한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지고 대신 위패를 묻은 노은단과 최근에 지은 것으로 보이는 사당인 '숭문사'가 그 자리에 남아 있다. 부근에는 성삼문선생의 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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