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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터 3

경주 인용사지, 월성 남쪽 무열왕 둘째아들 김인문을 위해 세운 인용사 절터

경주 반월성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인용사가 있었다고 전해지는 절터이다. 인용사는 삼국통일에 큰 공헌을 한 태종무열왕의 둘째 아들이자 문무왕의 동생인 김인문을 위해 세운 사찰이다. 삼국통일 이후 신라와 당나라 사이에는 긴장관계가 형성되었는데 김인문은 당시 볼모형태로 당나라 감옥에 갇혀 있었다고 하며 당시 신라사람들이 그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인용사를 세웠다고 한다. 절터의 규모나 궁성 아래에 위치한 점 등으로 볼 때 김인문이 당시 신라 사람들에게 상당히 존경받았던 인물었던 것 같다. 경주 인용사지는 2002년 발굴 조사를 시작한 이래로 현재까지도 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절터에 남아 있는 석물 등으로 볼 때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사찰 가람배치 양식인 2개의 탑을 중심으로 금당, 강당, 회랑 등으로 ..

절터 2011.10.22

파주 혜음원지, 고려시대 교통로 있었던 여관인 원(院)

혜음원지는 파주시와 고양시를 잇는 고개인 혜음령 동쪽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다. 혜음원에 대한 기록은 김부식의 '혜음사 신창기'에 기록되어 있는데 고려 예종 16년(1122년)에 지어진 국가에서 운영한 숙박시설로 왕의 남행시에는 행궁의 역할도 했다고 한다. 혜음원지에서는 24동의 건물터에 각종 청자류, 불구, 기와편 등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혜음원은 그 건립연대가 정확하게 알려져 있으며, 당시 서울지역과 개성지역의 교통로, 사회경제사 등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국가에서 운영하는 공식적인 기능이 혜음령 북쪽에 있었던 혜음원에서 혜음령 남쪽 벽제에 있던 고양군 관아의 벽제관과 관아 주변의 민간시설에 그 기능이 넘어가면서 폐사되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원은 고려시대..

절터 2010.10.02

경주 감은사지, 문무대왕의 호국 정신이 담긴

경주 불국사에서 토함산 고개를 넘어 동해안으로 한참을 달리면 해안가 농지가 있는 벌판 언덕에 두개의 거대한 탑이 우뚝 서 있는 감은자지를 볼 수 있습니다. 감은사지는 삼국통일을 이룩한 문무대왕과 관련된 사찰로 문무대왕의 무덤인 동해안의 조그만 암초인 대왕암을 바라보는 위치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문무대왕을 기려서 그 아들이 신문왕이 세운 사찰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회랑으로 둘러쳐 있는 두개의 탑, 금당 그리고 강당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당시의 평지 사찰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감은사 본당 출입구인 중문터와 양쪽편의 회랑이 있던 자리입니다. 발굴된 주춧돌을 제 위치에 배치해 놓고 있습니다. 감은사 회랑의 주춧돌입니다. 감은사 본당인 금당터입니다. 감은사 두개의 탑 뒷쪽편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감은사 지하에..

절터 2010.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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