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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2

[중앙박물관 고려실] 고려시대 성리학의 도입

고려시대 원의 간섭기을 대표하는 역사적인 유물로는 금속활자와 단군신화를 기록한 삼국 유사를 들 수 있고, 고려말 이후 우리나라의 정신 세계를 이끌어 온 성리학 또한 이 시기에 도입되었다. 성리학은 원나라에서 왕을 모시면서 오랜 기간 머물렀던 관료이자 학자인 안향.백이정 등이 관련 서적을 국내에 소개하였고, 충선왕과 함께 원나라에 간 이제현이 중국의 성리학자들과 학문적이 교류를 하면서 많은 학문적인 깊이를 더했다고 한다. 당시 초강대국 원나라를 중심으로 많은 교류가 있었기때문에 원나라 간섭하의 고려정권이었지만, 큰 영향을 미친 많은 학문적.기술적인 발전을 이루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성리학의 도입 원나라에서 왕(충렬왕.충선왕)을 모셨던 안향.백이정 등의 관료들은 주자성리학 관련 서적들을 가지고 귀국함으로써 ..

중앙박물관 2012.02.19

[중앙박물관 특별전] "문자, 그 이후: 한국고대문자전", 이두와 향찰의 발명,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우리나라에 한자가 수용된 이후 우리말을 표현하기 위해서 이두, 향가, 향찰, 속자, 구결 등 다양한 형태로 방법들이 만들어졌는데, 보통 이를 통털어서 이두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두는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서 우리말을 적던 표기법으로 삼국시대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며, 고려때에는 이서라는 형태로 하급관리들이 공문서나 관용문에 많이 사용하였다고 한다. 보통 이두는 넓은 의미로 한자를 차용해서 음을 표기한 것을 통칭하며, 현재의 일본어 또한 이두와 비슷한 개념의 문자라 할 수 있다. 이두는 신라초기부터 사용되어 진 것으로 보이며 서동요, 제망매가 등 다양한 문학작품이 이두로 표현되기도 하였다. 통일신라 신문왕때 설총이 기존의 이두사용법을 정리하여 크게 발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두의 사용은 삼국유..

중앙박물관 2011.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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