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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랑성 4

강화 정족산성(삼랑성), 남문인 종해루와 주변 성벽, 양헌수 승전비

정족산성은 정족산을 중심으로 3개의 봉우리를 능선을 따라서 연결한 전형적인 포곡식 산성으로 산성의 방향은 강화해협(염하)를 바라보는 동쪽을 향하고 있다. 지금은 정족산성 동쪽편으로 넓은 간척지 평야가 펼쳐져 있지만, 원래는 넓은 갯벌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해안을 따라서 구축한 돈대와 함께 강화도 남쪽 해안과 연안 해로인 강화해협을 감시하고 지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던 산성으로 생각된다. 이 곳은 오랜 옛날부터 천혜의 요새로 여겨졌던 것으로 보이며, 조선시대에는 정족산 사고가 산성내에 설치되어 있다. 정족산성의 주출입문은 남문으로 실제로는 산성의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계곡의 시냇물이 흘러 내려가는 방향이다. 일반적인 산성과는 달리 평지와 비슷한 고도에 성문이 위치하고 있으며, 마을과도 상당..

강화 정족산성(삼랑성), 서문에서 동남쪽 치성(雉城)까지

강화 정족산성은 둘레 약 1km로 주산인 해발 220m 정족산을 중심으로 3개의 봉우리를 연결하여 전등사와 정족산사고가 있는 계곡을 에워싸고 있는 전형적인 포곡식 산성이다. 이 산성을 처음 쌓은 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성벽을 축조하고 있는 석축의 형태 등으로 유추해 볼 때 고구려 산성의 특징을 하고 있다. 정족산성에는 주출입문인 종해루가 있는 남문을 중심으로 동문, 서문, 북문을 두고 있다. 남문에는 문루를 두고 있고, 북문은 암문의 성격을 갖고 있다. 정족산성 서문은 조선후기 강화 해안을 방어하기 위한 군사조직인 진.보 중에서 강화도 남쪽 해안을 지키는 돈대를 관장하던 선두보가 위치하고 있다. 방어상 취약지역인 남문과 동문과는 달리 서문은 선두보와 연결되는 출입구이자, 바다와 가장 가까운 연결로이..

강화 정족산성(삼랑성), 정족산(해발220m) 정상 부근 성벽

강화 정족산은 해발 220m로 그리 높지는 않지만 높은 산맥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아 정상부에 올라서면 사방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실 지금은 많은 간척이 이루어져서 강화도에 넓은 농토가 많지만, 원래는 드넓은 갯벌위에 크고 작은 섬들이 흩어져 있는 지형이라고 할 수 있다. 정족산 정상에 올라서면 북쪽으로는 고려시대 왕릉들이 있는 진강산이 보이고 그 사이에 넓은 평야가 들어서 있다. 서쪽편으로는 강화도의 명산이라고 할 수 있는 마니산과 그 너머로 석모도와 서해바다가 보이고 동쪽편으로는 강화해협과 문수산성, 김포지역이 한눈에 들어오고 남쪽편으로 길상산과 산맥으로 연결되어 있다. 정족산성은 삼국시대부터 존재해 왔던 산성으로 강화해협(염하), 한강하구, 서해안 연안 항로를 지키는 전략적으로 중요했던 요지였던 것으..

강화 정족산성(삼랑성), 강화해협(염하)가 내려다 보이는 동문에서 북문까지

강화도 전등사가 있는 정족산성은 그리 높지 않은 해발 220m의 정족산을 중심으로 3개의 봉 우리가 솥다리처럼 받치고 있어서 정족산성 또는 삼랑성이라고 불린다. 이 성을 쌓은 연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원래 토성이었던 것을 바깥쪽에 돌을 쌓아 석축성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현재의 산성은 거친 활석을 비롯하여 잔돌로 촘촘하게 석축을 쌓았는데 서울의 아차산성이나 고구려가 쌓은 여러 산성들과 입지나 석축을 쌓는 수법이 비슷한 것으로 볼 때 고구려가 백제를 몰아내고 한강유역 패권을 잡은 이후에 쌓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정족산성은 서북쪽 해발 220m의 정족산이 가장 높은 산이고, 남쪽편과 동쪽편에 비슷한 높의 봉우리들이 능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전등사와 정족산 사고가 있었던 산성내부는 강화해협(염하)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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