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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층석탑 33

경주 용장사곡 삼층석탑(보물 186호)

경주 남산 용장사 옛 절터에 있는 삼층석탑(보물 186호)이다. 바위를 1층 기단으로 삼고 그 위에 2층기단과 탑신을 올려놓고 있다. 통일신라 후기 정형화된 삼층석탑 형태를 하고 있는데, 주위 경치와 함께 아름다운 조형미를 만들고 있다. 절터에 쓰러져 있던 것을 일제강점기에 다시 세웠다고 한다. 용장사는 금오산 정상부 서쪽 용장사 계곡 정상에 자리잡고 있었다. 사찰 규모는 크지 않은 편이며, 절터에는 삼층석탑으로 비롯하여 석조여래좌상, 마애여래좌상이 남아 있다. 조선초 천재이자 생육신 중 한명인 김시습이 머물면서 『금오신화』를 저술한 장소로 잘 알려져 있다. 경주 용장사 계곡 정상부에 남아 있는 삼층석탑(보물 186호). 경주 남산을 대표하는 명장면으로 주변 경치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조형미를 만들어 내고..

경주 남사리 삼층석탑(보물 907호)

경주 현곡면 남사리 마을 뒷편 절터에 있는 통일신라 삼층석탑이다. 2층 기단위에 3층 탑신을 올려 놓고 있으며, 기단과 탑신 몸돌에 기둥모양을 새겨 놓은 것 외에는 특별한 장식을 하고 있지 않다. 전체적인 비례에서 보여주는 조형미나 세부 조각수법은 양호한 편이며, 정형화된 통일신라 삼층석탑의 형태를 하고 있다. 절터에는 삼층석탑 외에 특별한 유물이나 건물터 흔적은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기록에도 남아 있지 않다. 통일신라 왕경이었던 경주 교외에 조성된 귀족들의 원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경주시 현곡면 남사리 절터에 남아 있는 삼층석탑. 불국사 삼층석탑과 비슷한 외형을 하고 있는 정형화된 통일신라 후기에 조성된 삼층석탑이다. 삼층석탑 기단부. 기둥모양을 새겨 놓은 것 외 특별한 장식이 없다. 3층으로 된 ..

경주 용명리 삼층석탑(보물 908호)

경주 용명리마을 절터에 남아 있는 삼층석탑(보물 908호)이다.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려 놓았다. 기단과 탑신 몸돌에 기둥모양을 새겨놓은 것 외 특별한 장식이 없는 정형화된 통일신라 삼층석탑 양식을 하고 있다. 전체적인 구성이나 비례와 조각수법 등은 양호한 편이다. 절터에는 삼층석탑 외 특별한 흔적은 남아 있지 않고 주변에는 민가들이 흩어져 있어 옛 사찰의 규모를 짐작할 수 없다. 이곳에 용명사(龍明寺)라는 절이 있었다고 하나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사찰의 내력에 대한 기록도 없는 듯 하다. 경주 용명리 삼층석탑(보물 908호). 2층 기단에 3층 탑신을 올려놓은 전형적인 통일신라 삼층석탑이다. 조가수법이나 전체적인 조형미는 양호한 편이다. 석탑 기단부.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모양을 새겨놓고 ..

함양 승안사지 삼층석탑 (보물 294호)

경남 함양군 승안사 절터에 있는 고려시대 삼층석탑이다.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려 놓고 있다. 기단에는 부처, 보살, 비천 등의 모습을, 탑신 1층 몸돌에는 사천왕상을 새겨놓은 통일신라말 석탑 양식을 따르고 있다. 머리장식으로 받침과 복발, 연꽃모양장식이 남아 있다. 기단과 탑신의 비례에서 보이는 조형미가 비해 떨어지는 편이며, 고려전기 특색을 보여주는 장식들이 여러곳 있다. 승안사(昇安寺)는 함양군 수동면 남계서원 북쪽에 승안산 기슭에 있던 사찰로 조선초 사찰이 있었다는 사실 외에 다른 기록이 없다. 조선중기 이후에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함양 승안사지 삼층석탑. 기단과 탑신 1층 몸돌에 부조를 새겨 놓은 통일신라 말 삼층석탑 양식을 따르고 있는 고려시대 석탑이다. 기단부에는 부처, 보살, 비천..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 (보물 247호), 전형적인 통일신라 삼층석탑

대구 동화사 부속 암자인 비로암 대적광전 앞에 세워진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삼층석탑이다. 1층 몸돌에선 돌로 만들어진 사리그릇이 발견되었는데, 통일신라 민애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탑을 세웠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탑은 2층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려 놓았다. 기단부에는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모양을 조각해 놓고 있다. 탑신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으며, 몸돌에는 기동모양을 새겨놓았다. 석탑을 구성하고 있는 기단, 탑신, 머리장식의 비례가 우수하며, 특별한 장식은 없지만 단정하면서 아름다운 조형미를 보여주고 있다. 대구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 장식적인 면은 없으나 전체적인 비례나 조형미가 우수한 편이다. 2층으로 된 기단부. 몸돌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모양을 새겨 놓고 있다. 3층..

부여 장하리 삼층석탑(보물184호)

부여 사비성 남쪽 장암면 장하리에 있는 고려시대 삼층석탑(보물184호)이다. 백제 석탑을 대표하는 정림사지 오층석탑을 모방해서 만든 석탑이다. 얇은 판석을 3층으로 쌓아 기단으로 하고 그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려 놓았다. 1층 탑신 몸돌은 정림사지 석탑처럼 4개의 기둥을 세우고 그 안쪽에 판석을 끼웠으며 2,3탑신의 몸돌은 하나의 돌에 기둥모양을 새겨 감실처럼 보이게 하고 있다. 탑신 몸돌에서는 사리구, 상아불상, 목제소탑 등 고려시대 유물이 발견되었다. 정림사지 석탑을 모방하여 만들었다고 하나 전체적으로 균형미가 없고 조형미도 떨어지는 편이다. 통일신라가 멸망한 이후 옛 백제의 향수를 자극하고자 지역 호족이 정림사지 석탑을 모방해서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석탑이 남아 있는 이곳은 금강나루터가 있었던 교..

문경 봉암사 삼층석탑(보물 169호)

문경 봉암사 옛 주불전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금색전 앞 마당에 세워져 있는 보물169호로 지정된 삼층석탑이다. 석탑 조형미가 절정을 이루던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석탑으로 당시 일반적인 석탑과는 달리 기단부가 1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상륜부 머리장식이 온전히 남아 있어 동시대 석탑의 기준이 된다고 한다. 전성기때 만들어진 석탑답게 전체적으로 구성품들이 균형을 이루고 있어 아름다운 조형미를 보여주고 있는 석탑이다. 문경 봉암사는 하얀 바위산인 희양산(해발999m) 남쪽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사찰로 통일신라말 호족의 지원을 받아 크게 번창했던 선종계열의 구산선문 중 하나인 희양산문의 종찰이었다. 이 사찰의 창건내력에 대해서는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통일신라말 지증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시대..

원주 영전사지 보제존자탑 (보물 358호), 석탑 형태로 만든 승려의 사리탑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에 전시된 보물 358호로 지정된 영전사지 보제존자탑이다. 이 사리탑은 고려말 승려인 보제존자의 사리탑으로 현재도 보제존자의 사리탑은 여주 신륵사 뒷동산에 석종형태로 만들어져 있지만, 특히하게 그의 제자들이 석탑형태로 사리탑을 만들었다고 한다. 원래는 원주 영전사지에 있던 것을 일제시대때 일본인들이 경복궁으로 옮겼다고 한다. 고려말에 통일신라시대 양식이 두개의 탑 형식으로 세운 것도 특이하며, 아마도 우리나라 남아 있는 제대로 된 삼층석탑 중에서 가장 후대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석탑의 크기는 크지 않지만, 기단과 탑신의 구성요소들의 비율의 통일신라시대 양식과 비슷해서 얼핏 보기에도 조형미가 뛰어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나옹선사는 고려말을 대표하는 승려로 무학대사의 스승이기도 하다..

김천 갈항사 동.서 삼층석탑 (국보 99호), 언적법사 3남매가 건립했다는 통일신라 전성기 석탑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전시된 국보 99호로 지정된 갈항사 삼층석탑이다. 경북 김천시 남면에 소재한 갈항사절터에 있던 두개의 탑으로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반출될 위기에 처했던 것을 경복궁 마당으로 옮겼다가 현재 중앙박물관 정원에 전시되어 있다. 이 석탑은 2층의 기단위에 3층의 탑신으로 이루어진 통일신라 전성기 석탑의 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기단의 네모서리와 각면에는 기둥모양을 새겼다. 탑신부 몸달은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동탑의 기단부에 통일신라시대 영묘사 언적법사 3남매가 건립하였다는 내용이 글로 새겨져 있다. 이 탑에 모셔졌던 사리병과 법어 불경이 발견되었다. 이 석탑은 장식이 없고 약간은 정형화된듯하지만 석탑 각 부분의 비례가 뛰어나고, 당시의 석탑 양식이 잘 드러나 있어서 문화재로..

경주 천군동 동.서 삼층석탑 (보물 168호), 보문단지 앞 마을 절터에 남아 있는 통일신라 전성기 삼층석탑

경주시 천군동 마을 농경지 가운데 남아 있는 보물 168호로 지정된 경주 천군동 동.서삼층석탑이다. 통일신라시대 가람배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전형적인 '두 개의 탑' 모습을 하고 있는 삼층석탑이다. 원래는 들판에 무너져 있던 것을 1939년에 목원한 것으로 통일신라 전성기 삼층석탑 형식을 하고 있다. 현재 동탑은 기단과 탑신만 남아 있고, 서탑에는 머리돌 장식이 일부 남아 있다. 머리장식이 남아 있는 서탑의 높이가 7.7m로 전성기 석탑의 위용을 갖추고 있다. 두개의 탑은 같은 양식을 하고 있는데, 2층의 기단부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려 놓고 있다. 통일신라 전성기인 8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석가탑과 마찬가지라 기단부와 탑신 몸돌에 특할한 장식을 하고 있지 않으며, 탑신 몸돌 모퉁이에 기둥을 새겨 놓..

경주 남산동 동.서삼층석탑(보물 124호), 형식이 다른 두개의 탑이 세워져 있는 절터

경주 남산 동쪽 서출지 남쪽편에는 불국사처럼 형식이 다른 두개의 탑이 세워져 있다. 통일신라 전성기가 끝나가는 9세경에 세워진 보물 124호로 지정된 이 석탑은 모전석탑 형식의 동탑과 정형화된 통일신라 삼층석탑 형식을 하고 있는 서탑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남아 있는 두개의 석탑 배치 등으로 볼 때 어느정도 규모가 있는 사찰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어떤 사찰이 있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 남산사 또는 양피사 등이 부근에 있었다는 후대의 기록이 있다고 한다. 부근에는 경주 외각의 오래된 저수지인 서출지와 통일신라 쇠퇴기의 왕릉인 헌강왕릉과 정강왕릉이 있다. 동탑은 탑신은 일반 석탑과 비슷해 보이지만, 기단부가 3칸의 큰 육면체돌을 벽돌처럼 쌓아서 만든 것으로 진흥왕릉 아래에 있는 서악동삼층석탑과 ..

경주 황복사지 삼층석탑 (국보 37호), 효소왕이 신문왕의 명복을 빌고자 세운 구황리 삼층석탑

황복사지는 신라에서 신성시 여기던 선덕여왕릉이 있는 경주 낭산 북쪽 끝자락 동쪽편에 있던 사찰로 경주에 있었던 많은 사찰 중에서도 큰 규모의 사찰에 속했던 사찰이었다. 황복사 옛절터에는 효소왕이 그의 아버지 신문왕의 명복을 빌고자 세운 석탑으로 효소왕의 아들 성덕왕이 다시 사리와 불상을 넣으면서 두왕의 명복을 빌었다고 한다. 1943년 이 탑의 해체복원 과정에서 금동사리함과 금동 불상 2구을 비롯하여 많은 유물들이 발견되어 이 탑이 건립된 경위와 발견된 유물들의 성격이 기록되어 있다. 이 석탑은 높이 7.3m로 이중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쌓아 올린 전형적인 통일신라 석탑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기단에 각면에는 2개의 기둥이 새겨져 있고 탑신부도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경주 서악동 삼층석탑 (보물 65호), 진흥왕릉 아래에 남아 있는 모전석탑

경주 형산강 서쪽 선두산 동쪽 능선에 자리잡고 있는 태종무열왕릉과 서악동 구분군에서 약간 북쪽편 능선에 위치한 진흥왕릉을 비롯한 여러 왕릉들과 함께 있는 서악동 삼층석탑이다. 이 곳에 석탑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볼 때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으며, 왕릉을 지키는 원찰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런 사실들과 함께 다른 여러가지 정황을 종합하여 서악동고분군보다는 이 곳이 왕릉으로 공식화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 석탑은 통일신라시대 모전탑 계열을 탑으로 흙을 구운 벽롤로 쌓은 전탑을 모방하여 돌을 벽돌모양으로 다듬어서 쌓은 석탑이다. 이 석탑과 비슷한 형태로 경주 남산리동삼층석탑이 있다고 하며 형식적으로 간략화되어 있어 통일신라 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

속초 향성사지삼층석탑(보물 443호), 외설악으로 들어가는 도로에 외로이 서 있는 통일신라 석탑

속초시 설악동 설악산국립공원으로 들어가는 길 옆에 외로이 서 있는 향성사지삼층석탑이다. 보물 443호로 지정된 이 석탑은 2층의 기단부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석탑이다. 높이 4.33m로 웅장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통일신라 석탑이 정형화되기 시작하는 시점에 만들어진 석탑이다. 인근에 있는 국보 122호로 지정된 진전사지 삼층석탑에는 이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부조상이 새겨져 있지만, 이 석탑 몸돌이나 기단부에는 조각상이 새겨져 있지 않고 간결한 형태를 하고 있다. 이 석탑이 있는 자리는 설악산 신흥사의 전신인 신라고승 자상이 653년에 건립하였다고 전해지는 향성사가 있었던 곳이라고 한다. 현재 향성자시삼층석탑은 설악켄싱턴스타호텔과 도로를 사이에 두고 있는데, 아마 호텔이 있는 자..

부산 범어사 삼층석탑(보물 250호), 통일신라 후기의 정형화된 양식의 석탑

부산 범어사 삼층석탑은 보물 250호로 지정된 통일신리시대에 세워진 3층 석탑이다. 이층의 기단부에 3층 탑신을 쌓아 올린 석탑으로 석탑이 정형화되어가던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경북내륙지역 3층석탑에서 볼 수 있는 기단부나 탑신에 새겨진 팔부중상 등의 부조상은 보이지 않고 간략하게 안상만 새겨 놓고 있다. 탑신석과 옥개석은 각 1개의 돌에 기둥 등을 새겨놓고 있다. 제작수법이 간단하면서도 정형화된 통일신라 후기와 고려초기의 석탑 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부산 금정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범어사는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한 전국 화엄십찰 중 하나로 남해안 침략하는 왜(倭)를 물리치고하고자 하는 바램으로 세운 사찰로 국왕을 보위하는 화엄종 사찰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사찰로 임진왜란 때 ..

양양 진전사지 삼층석탑 (국보122호), 통일신라 걸작 조각상이 새겨진 석탑

진전사는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경에 창건된 사찰로 추정된다. 이절은 우리나라 선종을 크게 일으킨 도의선사가 오랫동안 은거하던 곳으로, 염거화상이나 보조선사와 같은 고승들이 이곳에 배출되었고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스님도 이곳에서 수행했다고 한다. 진전사 절터는 설악산 자락 아래에 있기는 하지만 깊은 계곡에서 수행을 중심으로 하는 산사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진전사지가 있는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하천은 물치천이라고 하며 이 하천을 중심으로 약간 넓은 벌판이 형성되어 있고 마을도 동해안에서는 많은 편으로 보인다. 통일신라나 고려시대의 평지사찰과 비슷한 성격을 가졌던 사찰로 보인다. 진전사지 절터는 아래쪽과 윗쪽 두곳이 있는데 아래쪽 절터에는 국보 122호인 진전사지 삼층석탑이 있다. 이 석탑은 지대석 위에 이층..

보령 성주사지 중앙 3층석탑 (보물20호)

성주사는 서해안 대천해수욕장이 있는 보령시에서 내륙 방향으로 고개를 넘어서 조금만 들어오면 있는 옛 절터이다. 통일신라시대 대표적인 선종 도량의 하나로 평지에 위치하고 있는 대형사찰이었다. 성주사 옛 절터에는 오층석탑 1기와 3기의 있는데 3기의 3층석탑 중 가운데에 있는 석탑이다. 3기의 석탑은 같은 양식을 하고 있지만 그 중 몸돌 조각 수법에 제일 화려하고 잘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 석탑은 2층의 기단위에 3층의 탑신과 상륜부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3층석탑이다. 전제적으로 비율의 잘 이루어져 있으며, 날렵하고 경쾌한 느낌을 주고 있다. 탑신 몸돌의 남북면에는 조각이 새겨져 있는데, 자물쇠와 문고리가 조각되어 있다. 잘만들어지기는 했지만, 구성품의 비율, 조각 수법 등에 있어서 창의적이..

하남 동사지 오층석탑(보물 12호)과 삼층석탑(보물 13호)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하남으로 가는 길에 있는 춘궁동 동사 절터는 남한산성과 이성산성이 있는 크기 않은 분지에 위치하고 있는 절터로 금당터를 비롯하여 건물터 흔적이 발견된 통일신라 말기에 세워진 사찰이 있었던 곳이다. 규모가 상당히 큰 사찰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두개의 탑만이 절터에 남아 있다. 이 절터를 지키고 있는 두개의 탑은 하나는 삼층석탑, 다른 하나는 오층석탑으로 이루어져 있다. 두개의 탑 모두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고려전기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두개의 탑 모두 지붕돌이 치켜들고 있는 모습으로 경쾌하고 밝은 느낌을 주고 있다. 통일신라 가람 배치에서는 같은 모양으로 2개의 탑이 나란히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곳의 두개의 탑은 동시대에 같이 많들어진 것은 아니고 각각 ..

원주 거돈사지 삼층석탑 (보물 750호), 전형적인 통일신라 석탑

원주시 부론면 남한강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큰 절터가 있는 거돈사지 삼층석탑이다.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삼층석탑으로 9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거돈사지는 1탑, 1금당, 1강당으로 구성된 가람배치를 보이고 있는 사찰로 통일신라시대까지 유지된 전통적인 사찰의 가람배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거돈사지 삼층석탑은 일반적인 사찰의 삼층석탑이 평지위에 조성된 것과는 달리 금당과 비슷한 높이의 축대위에 삼층석탑을 쌓고 있다. 이 석탑은 전형화된 통일신라 후기의 삼층석탑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2층의 기단과 3층의 탑신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단과 탑신에는 부조상이나 장식을 거의 새겨놓지 않고 있으며, 석탑 자체로서 그 구성을 마무리하고 있다. 석탑 제작기술의 전성기가 조금 지난 ..

영양 현일동삼층석탑 (보물 610호), 전형적인 통일신라 후기 석탑 양식

영양 현일동삼층석탑은 영양 일월산에서 발원하여 임하댐으로 흘러드는 낙동강 지류인 반변천 중상류에 위치한 영양읍 입구인 현동 벌판에 외롭게 서 있는 삼층석탑이다. 이 삼층석탑은 기단부 1층에는 12지신상을, 2층에는 팔부중상, 몸돌1층에는 사천왕상을 새겨 놓고 있는 통일신라 후기 삼층석탑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통일신라 초기 삼층석탑인 감은사지석탑과 절정기인 불국사 석가탑의 웅장함은 사라진 대신, 각종 조각상을 섬세하게 새겨놓고 있는 약간은 대량생산되었고, 정형화되었다는 느낌을 주기는 하지만, 통일신라 후기 사람들이 석재를 다루는 기술이 뛰어났음을 잘 보여주고 있는 삼층석탑이다. 크지는 않지만, 기단과 탑신의 비율, 조각의 섬세함 등이 후대에 세워진 고려시대 삼층석탑에 비해서 상당히 뛰어난 석탑이다.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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