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story Traveling
반응형

서오릉 4

고양 서오릉(사적198호) 홍릉, 영조가 자신의 무덤으로 터를 잡은 영조 비 정성왕후의 능

홍릉은 고양시에 위치한 서오릉에서 가장 후대에 조성된 능으로 영조의 비인 정성왕후 서씨의 능이다. 정성왕후는 영조가 연잉군시절에 결혼하여 66세에 죽었는데, 왕비시절에 선왕인 숙종과 경종의 부인을 잘 모시고 영조의 어머니인 숙빈최씨를 모시는 사당인 육상궁을 세우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왕자를 낳지 못했지만 영조와는 상당히 사이가 좋았던 것으로 보인다. 영조는 숙종과 왕비들의 능이 있는 서오릉에 자신의 능을 조성하여 숙종을 잇는 정통성을 확보하고자 이곳에 정성왕후의 능을 조성하였다. 하지만 왕위를 계승한 정조는 사도세자를 죽게한 영조에 대한 원한이 있었고, 계비인 정순왕후 또한 영조와 같은 곳에 묻힐 의도가 있어서 그런지 이곳에 능을 조성하지 않고 구리의 동구릉에 영조의 능을 조성하여 그의 바램..

고양 서오릉(사적198호) 익릉과 대빈묘, 숙종의 원비 인경왕후의 능과 장희빈의 묘

고양시 신도동에 위치한 서오릉 중 숙종의 원비 인경왕후 김씨의 능과 한쪽편 구석에 위치한 장희빈의 묘소이다. 숙종은 원비로 인경왕후 김씨, 계비로 인헌왕후와 인원왕후를 두었고, 경종을 낳은 장희빈과 동이로 유명해전 영조의 어머니 숙빈최씨가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왕과 왕비의 무덤은 능, 세자나 세자빈 등은 원, 약간 격이 낮은 경우는 일반인처럼 묘라고 불렀는데, 경종을 낳은 희빈 장씨는 대빈묘라고 불렀으며, 영조를 낳은 숙빈최씨의 무덤도 원래는 소령묘였는데 영조의 노력끝에 소령원으로 승격되었다고 한다. 숙종과 왕비의 능을 배치한 것을 보면 당시의 정치상황이 상당히 많이 고려되어 있었는데, 당시 지배세력이었던 서인들의 입김이 많이 반영되어 인헌왕후는 숙종과 쌍분의 형태로 이루졌으며, 영조대까지 살았던 제2계..

고양 서오릉(사적198호) 경릉과 창릉, 세조의 두아들 덕종(추존)과 예종의 능

경기도 고양시 신도동에 소재한 서오릉은 예종의 창릉과 숙종의 명릉을 비롯하여 많은 조선왕실을 능원이 조성된 곳으로 태조의 능이 있는 동구릉 다음으로 많은 능원이 있는 곳이다. 서오릉은 1457년(세조3)에 의경세자가 20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자 세조가 풍수지리설에 따라 길지로 추천된 이 곳에 안장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곳은 세조가 터를 잡은 곳으로 그의 맏아들인 덕종(추존)과 왕비, 세조의 뒤를 이은 예종과 왕비의 능이 근처에 자리잡고 있다. 서오릉 입구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경릉은 세조의 장남이자 성종의 아버지인 덕종(추존)과 어머니로 인수대비로도 많이 불리는 소혜왕후의 능이다. 서오릉 안쪽에 위치한 창릉은 세조의 둘째아들로 왕위를 계승한 예종과 안순왕후의 능이다. 예종 또한 20세의 ..

고양 서오릉(사적198호) 명릉, 숙종과 인현왕후의 능

고양시 신도동에 위치한 서오릉(사적 198호)은 구리의 동구릉과 함께 조선왕실 능묘 중 가장 큰 규모로 세조의 맏아들인 덕종(추존)과 왕비의 능인 경릉, 예종과 왕비의 능인 창릉, 숙종의 원비의 능인 익릉, 숙종과 계비의 능인 명릉, 영조 원비의 능인 홍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밖에 순창원, 수경원, 대빈묘 등이 있다. 대체로 예종.성종대와 영조대에 조성된 왕릉이라 할 수 있다. 이 곳에 능지로 선택된 것은 1457년 세조의 장남(성종의 아버지로 덕종으로 추존)이 죽자 이곳을 세조가 답사한뒤 터를 잡으면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왕릉의 면적은 약 51만평에 이른다. 서오릉에 모셔진 5곳의 왕릉 중 동쪽편 언덕에 위치하고 있는 명릉은 조선 19대 숙종과 계비인 인현왕후 민씨, 제2계비인 인원왕후 김씨..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