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년 김가진이 서거한 이후에도 아들 김의한과 며느리 정정화가 임시정부에서 적극적인 활동으로 독립운동을 이어온다. 며느리 정정화는 임시정부의 안살림꾼으로, 여성단체 주요 멤버로 적극적으로 활동했으며, 아들 김의한은 아들 김의한은 김구가 이끄는 한국독립당에 적을 두고 광복국 기관지 '광복'편찬을 책임지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이들 가족은 1932년 윤봉길 의사 의거 이후 일본의 압박을 받아 상하이를 떠나 자싱으로 떠난 이후 중.일전쟁으로 소주, 항주, 광주를 거쳐 중칭으로 이동하는 힘든 피난생활을 임정인사들과 같이 했다. 다른 중국 임시정부 인사들과 마찬가지로 해방 이후 귀국하였으나, 큰 환대를 받지 못한 쓸쓸한 귀국이었다. 또한 한국전쟁때 아들 김의한은 북한으로 납북되어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