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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조 6

[경주박물관 야외전시실] 사찰 입구 손을 씻는 물을 담아두는 석조와 우물 윗돌

석조는 사찰 입구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물을 담는 그릇으로 원형 또는 직육면체 형태를 하고 있다. 보통 하나의 큰 화강암 석재의 내부를 파서 물을 담아두는데 사용하고 있다. 삼국시대 백제의 석조에서는 원형으로 만들어진 것을 볼 수 있으나, 통일신라 이후 대부분은 직육면체를 하고 있다.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나 일부는 연꽃문양이나 글씨 등을 새겨 놓는 경우도 있다. 석조는 당간지주와 함께 그 연대가 상당히 오래된 경우가 많으며, 폐사된 옛 절터에 당간지주와 함께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사찰에서 석조는 대웅전 등 불전이 있는 중심영역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위치하고 있는다. 보통 석조는 사찰을 찾는 사람들이 샘물로 목을 축이는 곳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원래는 사찰에서 종교적으로 신성하게 여겨지..

[부여박물관] 부여 석조 (보물 194호), 관북리 왕궁터에서 발견된 백제 왕궁에서 사용했던 수조

석조(石槽)는 물을 담아 두는 그릇으로 큰 돌을 넓게 파고 물을 받아 사용하도록 만든 일종의 돌그릇으로 백제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많이 사용되었다. 흔히 사찰에서 샘물과 연결하여 물을 담아두는 석조가 오늘날까지 많이 남아 있다. 이는 카톨릭 성당이나 이슬람 사원을 출입하기 전에 손과 발을 씻는 곳과 비슷한 성격을 갖는 것으로 불교의 전파와 함께 사원을 구성하는 요소로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석조는 단단한 화강석을 파서 만든 큰 구조물로 그 재료의 견고성 등으로 인해서 삼국시대 이후 만들어진 많은 석조들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으며, 지금도보물 1523호로 지정된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불국사 석조는 오늘날까지 불국사를 찾는 사람들에게 시원한 샘물을 제공하고 있다. 부여박물관 중앙에는 백제의 마지막 왕궁터로..

경주 불국사 석조(보물 1523호), 아직도 방문객의 목을 축여주고 있는 석조

불국사 앞 마당에서 청운교.백운교와 연화교.칠보교를 감상하다가 석가탑과 다보탑이 있는 대웅전으로 올라가기전에 잠시 목을 축이던 샘물을 받아 먹었던 석조가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보물 1523호로 지정된 문화재라는 것을 인식했던 사람은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이 석조는 보통 사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해 보이는 석조의 모습을 하고 있다. 불국사 석조는 원형인 백제의 석조와는 달리 직사각형 모양을 하고 있는 전형적인 통일신라 후기의 석조다. 일반 석조와는 달리 모서리를 둥글게 다듬었으며 내부 바닥면에는 화려한 연화문이 조각되어 있다. 토함산 자락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받아서 불국사를 찾는 모든이에게 목을 축일 수 있도록 해 주고 있는 불국사 석조.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이만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불국사..

보은 속리산 법주사 - 석조(石槽), 식수를 담아 두던 곳

법주사 석조는 직사각형 형태의 돌로 만든 것으로 나름대로 간결한 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법주사라는 사찰 규모에 걸맞게 다른 사찰에 비해 규모가 크다. 법주사의 3천 승려들의 식수를 담아두던 돌그릇이라 한다. 직사각형 모양으로, 아무런 조각을 하지 않은 간결한 모습이며, 규모는 길이 446㎝, 폭 240㎝로 제법 크다. 통일신라 성덕왕 1년(720)에 제작된 것으로 짐작된다.

[공주박물관 야외전시장] 반죽동 석조와 중동석조, 석물들

공주 박물관에 전시된 야외 전시 유물 중 보물로 지정된 석조이다. 이 석조는 백제 성왕 때 세워진 대통사지 있었던 것으로 통일신라 시대의 일반적이 석조와는 달리 원형으로 만들어져 있어 백제 특유의 양식이 반영된 석조라 한다. 석조 외에도 공주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 중 일부분만이 남은 석탑, 대좌석, 계단석, 부도 등 다양한 형태의 석조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공주 대통사지 반죽동 석조와 중동 석조. 직사각형 형태로 만들어진 통일신라시대의 일반적인 석조와는 달리 원형으로 만들어져 세련미가 있다. 석조[石槽]란 돌을 파서 물을 담아 쓰도록 만든 큰 물통으로, 절에서 큰 행사가 끈난 뒤 그릇을 씻을 때, 또는 물을 담아두거나 연꽃 등을 기르는데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석조는 백제(百濟) 성왕(聖王) 5년..

지역박물관 2009.12.08

[서산 보원사지] 석조(石槽), 보원사 규모를 짐작케 하는 통일신라시대 유물

서산 보원마을 보원사지 당간지주와 함께 절터 입구를 지키고 있는 석조유물이다. 약 4톤을 물을 저장할 수 있는 규모로 보원사의 규모를 짐작케 해 준다. 화강암을 파서 만든 직사각형 형태로 단순한 구조를 하고 있는 통일신라시대에 사용했던 일반적인 석조의 모습을 하고 있다. 보원사지 입구를 지키고 있는 식수를 저장하기 위한 용기인 석조(石槽). 4톤의 물을 저장할 수 있다고 한다. 다양한 방향에서 본 석조 석조 내부. 물을 빼는 작은 배수구가 있다. 보원사 금당터와 오층석탑이 있는 곳들 들어가기전 냇가에 위치하고 있는 석조 승서산 보원사터에 위치한 석조이다. 보원사는 고란사라고도 하며 사찰에 대한 역사는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1959년 국보 제84호인 서산마애삼존불상이 발견되면서 큰 관심을 끌었던 곳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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