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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 152

고려시대 대몽항쟁의 현장 강화산성 (고려성)

강화산성은 강화도 내에서 대몽항전을 수행했던 강화읍내에 있는 성입니다. 정식명칭은 강화산성입니다만 산성으로 분류할 수도 있고 읍성으로 분류할 수 있는 성입니다. 북쪽으로는 대몽항전씨 최씨정권이 개성을 생각하며 이름지은 송악산과 남쪽의 고려산을 연결하여 강화읍내를 둘러싸고 있는 성으로서 국방상 상당히 중요했던 성으로 여겨집니다. 지금 남아 있는 강화산성은 강화도를 둘러싸고 있는 성(城) 중에서 내성(內城) 역할을 했던 성이고 요지를 연결한 중성(中城)과 해안가의 외성(外城)으로 겹겹히 강화를 지키고 있었다고 합니다. 몽고와의 화친 후와 병자호란 이후에 강화의 궁궐 건물과 성벽 등 방어 시설을 모두 파괴하였다고 합니다. ※ 강화산성 탐방 1. 강화산성 서문/석수문/연무당 옛터 2. 강화산성 남문 3. 강화산..

[나주목 관아] 나주읍성 동점문(동문)

나주는 영산강변에 자리잡고 있는 오래된 도시로서 호남지역 중심도시중의 하나이다. 우리나라의 오래된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나주에는 읍성이 있었고, 관아 건물 및 향교 등 지방관청이 있는 도시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그 중 나주읍성은 일제강점기에 대부분 없어지고, 곳곳에 기초석만 일부 남아있는 상태였다가 최근에 남고문과 동점문이 복원되었다. 나주읍성 동점문은 읍성 동쪽 방향 출입문으로써 광주지역에서 영산강을 따라서 오던 사람들이 출입하는 출입문이다. 복원이 완료된 나주읍성 동점문. 최근에 복원한 성문이라서 그런지, 실제 읍성에 사용되는 자재를 사용해서 제대로 복원이 이루어진 것을 보인다. 나주읍성 동점문은 전면부에 옹성이 있으며, 옹성을 통해서 내부로 들어가게 된다. 나주읍성 동점문은 자연석을 적절한 크기..

[고창읍성(高敞邑城)]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읍성

읍성은 우리나라의 특징적인 성곽의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양이나 일본의 성곽은 지역 유력자의 저택을 중심으로 견고한 성곽을 쌓는데 비해 우리나라의 읍성은 주민이 거주하는 지역을 성곽으로 쌓고 있습니다. 이런 일반적은 읍성의 성격과는 달리 고창읍성은 동쪽으로 반등산(半登山)을 둘러싸고 있는 산성과 비슷한 형태를 보입니다. 동문·서문과 정문격인 북문이 있고, 성문사에는 방어를 위한 6개의 치(雉)가 있습니다. 성문은 일반적인 성곽의 성문처럼 견고해 보이지는 않지만 앞에 튼튼한 옹성을 쌓아놓고 있습니다. 고창읍성의 전체적인 구조를 보면 장기적인 농성을 할 수 있는 견고한 산성이나 지역중심지의 성곽이라고는 보기는 힘들고, 며칠정도 농성이 가능한 읍성과 비슷한 규모입니다. ※ 고창읍성 탐방 1. 고창읍성 성..

[고창읍성(高敞邑城)] 겨울 읍성 성벽길

서산의 해미읍성, 순천의 낙안읍성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읍성입니다. 이 성의 명칭은 고창읍성이라고 불리는데 형태로는 사람들이 거주하지 않았던 산성의 형태와 비슷합니다. 그렇지만 성벽을 쌓은 형태를 보면 읍성의 형태와 비슷해 보입니다. 내부에는 관청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면에서 보면 진주 남강변에 있는 진주성과 형태는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창읍성은 반등산을 중심으로 산성과 비슷한 형태로 성벽을 쌓아놓고 북문, 동문, 서문에는 옹성을 쌓아 방어의 기능에 충실했던 성으로 보입니다. 고창읍성의 정문이자 북문입니다. 옹성으로 정문을 막고 있는데 다른 지역의 읍성보다 튼튼해 보입니다. 정문인 북문 왼쪽편 성벽입니다. 북문의 옹성안에서 본 옹성 입구와 서쪽편 성벽입니다. 북문 옹성성의 외벽입..

[고창읍성(高敞邑城)] 성문, 옹성, 치(雉), 연못

고창읍성은 동쪽으로 반등산(半登山)을 둘러싸고 있는 산성과 비슷한 형태를 보이는 읍성이다. 동문·서문과 정문격인 북문이 있고, 성문 사이에 방어를 위한 6개의 치(雉)가 있다. 성문은 일반적인 성곽의 성문처럼 견고해 보이지는 않지만 앞에 튼튼한 옹성을 쌓아놓고 있다. 고창읍성의 전체적인 구조를 보면 장기적인 농성을 할 수 있는 견고한 산성이나 지역중심지의 성곽이라고는 보기는 힘들고, 며칠정도 농성이 가능한 읍성과 비슷한 규모이다. 고창읍성의 정문격인 북문. 옹성을 통해서 들어가게 되어 있는데, 옹성의 크기가 전주 풍남문의 옹성보다 크게 보인다. 옹성 출입통로. 통로 길의 넓이가 일반적인 읍성의 옹성보다 크다. 옹성 성벽 북문의 성루인 공북루 성안에서 본 공북루 성의 또다른 방어시설인 치(雉) 고창읍성으 ..

[공주 공산성] 남문 진남루(鎭南樓)와 주위 성벽들

공산산 남문과 누각인 진남루는 공산성 성문 중에 거의 유일하게 남아 있던 성문으로 보이며, 70년대 해체 복원했다고 한다. 토성이었던 공산성을 돌로 쌓은 석성으로 바꾸면서 만든 성문으로 공주 구시가지와 통하는 길이 이 진남루와 연결되어 있다. 공산성과 진남루가 통하는 길이 경사가 있는 산길이었고, 서문인 금서루가 금강변을 중심으로 교통의 중심지와 가까웠던 까닭에 도로가 서문방향으로 개설되어서 이 곳 진남루 주변은 보존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진남루는 공산성의 중심인 쌍수루와 백제 왕궁터와 가깝고 공주 구도심과도 가까웠던 까닭에 조선시대에는 진남문을 통해서 출입하던 사람이 많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공산성 남문인 진남루.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성문으로 조선시대 산성 성문 형태를 하고 있다. 남문은 도심과..

[공주 공산성] 북문인 공북루와 금강 옛다리 흔적

공주 공산성 북문인 공북루는 지금은 아무도 드나드는 사람들이 없는 외진 곳처럼 보이지만, 고대 이래로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공주에 금강철교(금강교)가 가설되기 전까지는 호남지역에서 서울로 통하는 거의 유일한 내륙교통의 거점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던 출입문이다. 공북루를 나서면 금강을 건너는 나루가 있었고, 후대에는 각종 다리가 건설되었다고 한다. 이 곳에서 금강을 건너면 걸어서 천안 차령산맥의 관문인 차령을 넘어서 서울로 향할 수 있었다고 한다. 공주 공산성은 동.서로 흐르는 금강 수운과 호남지역에서 연결된 남.북 내륙 교통의 거점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 왔으며, 그 관문이 공산성 북문인 공북루였다. 계곡을 둘러싼 포곡형 산성인 공주 공산성에서 정면이 뚫린 북쪽 방향에 북문과 공북루가 있다. 공북..

경주 월성 (반월성) - 월성을 둘러싸고 있는 성벽

경주 월성(반월성)은 지금은 나무가 울창한 평범한 야산처럼 보이는 곳이지만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 수도 경주의 궁궐이 있는 성으로 성벽은 자연 지형을 이용한 곳도 있고, 흙과 돌을 쌓아 놓은 부분도 있는 국왕이 살고 있던 도성입니다. 고려이후 통일된 국가에서는 평지에 궁궐을 쌓지만 삼국시대까지만 해도 전쟁이 많았기때문 안전한 요새처럼 성벽을 쌓고 그 내부에 궁궐을 짓는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성벽은 석축형태로 쌓은 조선시대와는 달리 흙과 돌을 섞어서 쌓았으며, 자연지형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경주 월성의 성벽은 흙과 돌을 섞어서 쌓았기때문에 자연 지형 그대로인 것처럼 보입니다. 백제의 토성은 흙으로만 쌓은데 비해 월성은 돌을 섞어서 쌓아서 월성에는 큰 돌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경주 월성(반월성)의 성..

경주 월성(반월성)을 둘러싸고 있는 해자, 월성교(모형)

경주 월성(반월성)은 신라의 궁궐이 내부에 있었던 도성입니다. 삼국시대는 고려.조선과는 달리 전쟁이 많았던 시절답게 궁궐이 요새화된 성벽안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신라의 수도 경주에는 반월성이라는 천연의 언덕위에 궁궐을 짓고 사방을 토성으로 쌓았으며 토성 아래에는 적의 침입에 대비한 해자 시설을 두고 있습니다. 지금도 동쪽편 일부에는 물을 채워서 해자 시설을 하고 있으며 여러곳에 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서남쪽 해자에는 월성교라는 아름다운 부교가 있었다고 합니다. 경주 월성(반월성) 동쪽편 임해전지와 연결되는 성문 주위 경주 박물관 방향으로는 해자시설을 복원해 놓고 있습니다. 아마도 월성 전체를 이런 형태의 해자로 둘러쌓여 있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경주 월성(반월성) 동쪽편 임해전지 방향 출입문 북..

강화 강화산성, 해안가에 벽돌로 쌓은 강화전성

강화해안에 오두돈대 아래에 있는 벽돌로 쌓은 전축성인 강화전성입니다. 강화산성을 구성하고 있는 강화외성 중의 일부분으로 대몽항쟁 기간부터 존재해 왔던 성벽입니다. 원래는 토성이었으나 조선후기에 벽돌로 쌓았다고 합니다. 이 강화외성의 전축성은 수원화성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거의 유일한 전축성이며 수원 화성보다 쌓은 연대가 약간 빠르다고 하며, 건축사적으로 의미있는 유적이라 합니다. 고려시대 몽고와의 항쟁에서 강화 강화도 외곽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성인 강화외성 중의 하나인 오도돈대 아래 갯벌위에 쌓은 성벽이 강화전성입니다. 원래는 토성이었던 것을 조선후기에 벽돌로 쌓았다고 합니다. 강화전성은 일반적으로 성을 쌓는데 쓰이는 다듬은 돌로 기초를 쌓고, 그 위에 벽돌을 쌓아 올리 전축성입니다. 석축과 다양한 형..

카이로 바빌론요새(Bablyon Fortress)

콥틱카이로 지역의 입구에는 바빌론요새 유적이 있는데 나일강의 흐름이 바뀌기 전에는 원래 이 탑에서 나일강 주요 항구를 굽어볼 수 있었다고 한다. 로마시대 이 바밀론 요새를 기점으로 상하이집트로 구분되었다고 하고 당시 이곳을 지나가는 배들이 이곳에서 통행세를 내었다로 합니다. 이 요새는 원래있던 것을 로마시대에 새로 건설되었다고 합니다. 규모는 크지 않고 일부 유적들만 도심 한가운데 남아 있습니다. 이집트 올드카이로의 대표적인 유적인 바빌론 요새(Bablyon Fortress)입니다. 전철역을 나오면 '성조지교회'의 돔과 '바빌론 요새' 유적, 그리고 '콥틱박물관' 정문을 같이 볼 수 있습니다. 바빌론 요새는 중세 십자군 전쟁때 벽돌로 쌓은 성벽들만 일부 남아 있습니다. 성채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작은 요..

이집트(Egypt) 2009.04.09

나고야성 - 일본3대 성곽

나고야성은 일본 전국시대 통일의 기반을 마련한 오다노부나가의 근거지이자, 임진왜란 당시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있던 성이다. 토요토미는 후일 근거지를 오사카로 옮기지만 당시는 오다 노부나가를 계승하여 나고야 지역을 근거지로 하고 있었다. 나고야성을 직접 가 보지는 않았지만, 일본의 3대 성에 속하기때문에 관련 사진을 올려봅니다. http://rds.yahoo.com/_ylt=A0S0200OisJHytoAXgujzbkF/SIG=123cjqp0r/EXP=1204018062/**http%3A//www.flickr.com/photos/zhzheka/290243397/ 나고야성의 성벽: 우리나라의 양식과는 다르고 순천왜성의 양식과 같다고 보면 됩니다. http://rds.yahoo.com/_ylt=A0S02011is..

기타 2009.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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