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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륵사 5

여주 신륵사, 들어가는 길과 사찰 풍경

여주 남한강 북쪽 강변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신륵사는 고려시대 남한강변 뱃길과 육로를 부근에 있었던 고달사를 비롯한 많은 사찰들 중 하나이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이들 사찰들이 경제적 기반의 상실과 숭육억불정책으로 대부분 폐사되었지만 신륵사는 오늘날까지 그 명성을 사찰규모를 유지하고 있는 거의 유일한 사찰이다. 신륵사는 남한강 뱃길에서 중요한 나룻터 중 하나였던 조포나루를 끼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려말.조선초 명망이 높고 조선왕실과 인연이 많았던 나옹선사가 입적한 사찰로 조선초기 여주로 옮겨진 세종대왕 영릉을 지키는 원찰로서 왕실의 보호를 받았기때문 크게 번창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여주 신륵사 일대는 여주를 대표하는 관광지로 남한강 풍경을 감상할 수 있..

전국 사찰 2013.04.26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석종 앞 석등(보물231)

석등은 불상을 모신 불전, 사리를 모신 탑의 앞에 불을 밝히기 위한 석조물로 서양 기독교 등 각종 종교에서 다양한 촛불을 밝히는 것과 같은 기원을 두고 있는 보이는 대표적인 공양물이다. 불교에서는 불을 밝히는 것으로 공양 중에서 으뜸으로 여겼기때문에 불전, 탑 외에도 승려의 사리를 모신 승탑 앞에도 석등을 세워 놓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석등은 언제부터 사용했는지는 알져져 있지 않지만 백제 미륵사지에서 발견된 석등이 가장 오래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석등은 승탑이나 석탑처럼 목조건물 형태를 하고 있음 기본적으로 4각, 5각, 8각형을 하고 있으며, 기단이 되는 하대석, 기둥인 중대석과 그 위의 상대석, 불을 밝히는 화사석과 지붕 보주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보물 231호로 지정된 신륵사 보제존자석종 앞 석..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석종(보물228호)과 석종비(보물229호)

신륵사는 고려말 공민왕의 왕사였던 나옹선사가 마지막으로 입적하면 그의 제자들이 크게 중창한 사찰로 세종대왕 영릉이 여주로 옮겨지면서 원찰로 크게 번창한 사찰이다. 조선초기 무학대사가 주지로 있으면서 왕실과 관련이 깊었던 대표적인 원찰인 양주 회암사와 관련이 깊은 사찰이기도 하다. 현재의 신륵사는 조선중기 성종대에 크게 중창될 때의 모습이 여러차례 중건을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고려말.조선초를 대표하는 승려인 지공선사, 나옹선사, 무학대사의 영정이 모셔진 조사당 뒷편 남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는 신륵사를 크게 중창시킨 나옹선사의 사리를 봉안한 승탑이 있다. 나옹선사의 승탑은 통일신라시대 이래로 정형화된 목조 건물 형태를 하고 있는 승탑과는 달리 인도의 승탑인 스투파와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

여주 신륵사, 남한강변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 사찰

여주 신륵사는 남한강변에 자리 잡고 있는 아름다운 절이다. 보통의 절들은 산속에 있는데 반해 신륵사는 조선 시대 서원이나 정자들 처럼 강변에 자리잡고 있는 특색이 있다. 영남지방의 대형 사찰들에 비해서는 큰 편은 아니지만 건물들의 배치가 오밀조밀하고 아름다운 정원처럼 잘 꾸며져 있는 사찰입니다. 남한강 조포나루 인근에 있는 사찰로 남한강을 오가는 많은 사람들이 이 곳 신륵사에서 잠시 쉬어갔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신륵사는 여주의 세종대왕 능인 영릉을 지키는 원찰을 성격을 갖고 있는 사찰로 특히 세종대왕이 아들인 세조가 많이 찾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신륵사 중심불전인 극락보전이 있는 경내 모습. 전각의 크기가 크지는 않지만 오목조목 잘 구성되어 있다. 1. 신륵사 조사당,극락보전 신륵사의 중심불전인 극락..

전국 사찰 2010.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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