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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지신상 7

[경주박물관 야외전시실] 불법의 수호자, 사천왕.팔부중.금강역사.십이지신.사자

불교에서 불법을 수호하는 존재로 여겨지며 사찰 입구를 지키거나 부처의 사리를 모시는 탑에 새겨져 있는 사천왕, 금강역사, 팔부중, 사자 등을 볼 수 있다. 대체로 인도 고유의 신이었다가 불교가 생겨나면서 자연스럽게 불법을 수호하는 존재로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 사천왕은 오늘날에서 사찰출입문인 천왕문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존재로 원래는 부처님의 세상을 악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신장으로 인도에서는 귀신 무리의 왕이었다가 불교에 귀의하여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이 된 존재이다. 불법의 세계인 수미산을 사방으로 지키는데, 동쪽은 지국천왕, 서쪽은 광목천왕, 남쪽은 중장천왕, 북쪽은 다문천왕이 머물면서 불법의 세계를 지킨다고 알려져 있다. 팔부중은 사천왕 비슷한 존재로 불법을 수호하고 대중을 교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

[중국 섬서역사박물관 소장 당대 명품전] 당나라 시대를 대표하는 유물인 당삼채와 십이지신상

당삼채는 중국 역사상 가장 국제적인 성격을 지녔던 왕조인 당대(618~906년)에 만들어졌던 도기로 3가지 색상의 유약을 사용하여 만들었다. 도기에 녹색, 갈색, 황색, 백색 또는 코발트이 남색을 입혀서 칠한 것으로 그릇을 비롯한 생활용품과 무덤의 부장품이나 장식용으로 만든 남녀 인물상, 신상, 전설상의 동물, 말 등의 형태로 만들어졌다. 진시황 무덤에서 발견된 토용이나 우리나라 삼국시대 고분에서 출토되는 이형토기와 같은 용도로 죽은자가 사후세계로 가는 길에 동행하는 의미를 가진 부장품이 주된 용도가 아닌가 생각된다. 당시 귀족들이 취향이나 생활모습, 복식 등을 잘 보여주는 유물로 당시 수도였던 장안이나 귀족들이 많이 살았던 낙양의 무덤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된다. 안녹산의 난 이후 당나라의 국제적 영향력이..

지역박물관 2012.06.25

경주 김유신장군묘(사적 21호), 삼국통일을 완성한 김유신장군의 무덤과 무덤둘레에 새겨진 십이지신상

경주 도심에서 형산강 서쪽편에 위치한 송화산 구릉에 자리잡고 있는 김유신 장군의 무덤이다. 신라 귀족의 무덤이라고 할 수 있지만 왕릉에 준하는 규모의 큰 무덤으로 지름 30m 크기로 둥근 형태의 봉분을 하고 있다. 봉분 아래에는 둘레돌을 배치하고 그 주위에 난간석이 세워져 있다. 둘레석에는 12지신상을 조각하고 있는데 세련된 조각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봉분 앞에는 당나라 능묘제도를 받아들인 서구의 제단과 비슷한 형태의 상석이 놓여져 있다. 무덤의 전체적인 형태는 김유신장군과 같은 시기에 살았던 태종무열왕릉과 달리 성덕왕 이후 왕릉의 형태를 하고 있는 점으로 볼 때 후대에 보완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무덤의 봉분은 후대 당나라 능묘제도를 받아들였던 왕릉과 비슷하지만, 문.무인석을 비롯한 석상들은 세워져 ..

경주 용강동 고분 (사적 328호), 통일신라시대 복식과 당나라와의 교류관계를 보여주는 통일신라 귀족의 무덤

경주 용강동고분은 경주시 용강동 밭 가운데에 남아 있던 고분이라고 설명이 되어 있는데 지금은 경주 신도심 중앙, 경주시청 북쪽편으로 아파트가 들어선 도심 한가운데 공원처럼 남아 있는 신라의 고분이다. 지금은 둘레석이 있는 통일신라시대 고분처럼 복원해 놓고 있지만, 원래는 밭 한가운데 작은 봉분만 남아 있는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 내부는 통일신라시대 무덤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양식을 돌방을 갖춘 굴식돌방무덤으로 오랜 기간동안 도굴에 의해 많은 피해를 입은 곳이라고 한다. 돌방무덤은 무덤방에 문이 달려 있어 여러차례 시신을 묻을 수 있는 형태로 가족무덤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런 무덤의 형태는 지방에서 먼저 사용하고, 수도의 경주로 확산되어 통일신라시대 중앙 귀족들의 무덤 형태로 정착되었다고 한다. 이곳에..

경주 신라 흥덕왕릉(사적30호), 통일신라 전성기의 양식을 보여주는 왕릉

경주시 안강읍 육통리에 있는 사적 30호로 지정된 신라 42대 흥덕왕릉이다. 이 왕릉은 당나라 문물을 받아들인 원성왕의 괘릉과 함께 당나라의 능묘제도를 반영한 무덤으로 석물의 배치에 있어서 약간 다른면이 있지만 구성요소는 괘릉과 거의 유사하다. 왕릉은 둘레석을 두르고 있으며, 둘레석에는 십이지신상이 새겨져 있고, 바깥에 난석이 둘러져 있다. 왕릉 중앙에는 전대나 후대의 왕릉에서는 잘 볼 수 없는 그리스.로마신전의 제단에서 볼 수 있는 큰 제단이 놓여져 있다. 석물은 왕릉입구임을 알려주는 화표석 1쌍, 문.무인상 1쌍, 2쌍의 사자상 중 하나가 없어진 3개의 사자상이 남아 있다. 특히, 무인석은 괘릉과 마찬가지로 서역인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왕릉 앞쪽에는 비석에 세워져 있었는데 지금은 거북..

[경주박물관 고고관] 신라의 토용과 십이지신상

신라의 유물은 삼국시대 내물마립간대부터 시작한 황금문화시기에 조성된 경주도심 대릉원 일대의 돌무지덧널무덤에서 수많은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 이후 불교를 받아들이고 통일신라시대에 들어서면서는 사찰건립 등에 많은 자원을 쏟아부었기때문에 이전 시대에 비해서 무덤에 껴묻거리로 묻은 유물은 많이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통일신라 무덤에서 껴묻거리로 출토된 유물 중 대표적인 것 사람이나 동물을 본떠서 만든 토용과 무덤을 지키는 수호신역할을 기대했던 십이지신상일 것이다. 토용에서는 당사 사람들이 입었던 의복이나 복식 등을 알 수 있으며, 함께 출토되고 있는 수레 등 생활용품에서 당시 사람들의 생활모습을 알 수 있다. 특히, 경주 용강동에서 출토된 여인상과 문인상은 통일신라 복식에 대해서 알려주는 대표적인..

지역박물관 2011.10.16

[국립중앙박물관 역사관] 통일신라 무덤의 십이지상

십이지는 현재 우리의 생활에 사용되고있는 방위와 시간을 나타내고 있는 12동물을 말한다. 처음에는 무덤에 안에 인형처럼 생긴 십이지용을 넣다가 후대에는 무덤을 둘러싸는 형태로 바뀌어서 무덤을 지키는 수호신의 의미를 갖게되었다. 가장 유명한 십이지상은 경주 김유신 장군 무덤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12지상 일 것이다. 김유신 장군 무덤을 둘러싸고 있는 십이지신상. 곱돌을 갈아서 만들었다. 현재 김유신 장군 무덤을 둘러싸고 있는 십이지신상. 화강석으로 만든 것으로 보이다. 어느 것이 원래 있던 것인지??? 초기에 무덤안에 넣었던 것로 보이는 십이지용(뱀,말) 경주 성덕왕릉에 있던 십이지신 석상. 신라 이후 왕릉의 표본이 되었던 경주 괘릉. 무덤 주변에 십이지신상으로 장식하고 있다. 십이지는 방위와 시간을 맡은..

중앙박물관 2010.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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