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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회암사지 3

[중앙박물관 조선실] 조선왕조와 불교, 양주 회암사지 출토 유물

유교국가를 지향한 조선왕조는 억불정책을 근간으로 국가를 운영했지만, 삼국시대부터 국민들의 생활에 깊게 뿌리내린 불교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특히, 조선의 개국에 크게 공헌한 무학대사, 월인석보상절을 저술하는 등 불교를 크게 후원한 세조, 조선중기 불교를 크게 중흥시키고 오늘날의 불교를 있게 만든 중종의 계비인 문정황후 등이 있어서 오늘날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조선 왕실과 불교의 관계는 국가적으로 후원을 받은 양주 회암사, 세조가 크게 중장한 오대산 상원사, 왕릉을 지키면서 선왕의 명복을 비는 원찰 등을 두어서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게 하고 있다. 중앙박물관 조선실에는 조선왕실과 관련된 불교 유물로 회암사 절터에서 출토된 청동금탁, 기와, 잡상을 전시하고 있는데 전시할 유물은 많지 않았던 것으로 보..

중앙박물관 2010.12.18

양주 회암사지, 조선 최대 사찰에서 폐사지로 변해버린 무학대사가 수도했던 곳

양주 회암사는 태조 이성계의 정신적 지주이자 한양천도에 관여했다고 잘 알려진 무학대사가 주지로 있었던 사찰로 조선전기에는 전국에서 제일 규모가 큰 사찰이었다. 인도에서 온 고승 지공선사와 회암사를 크게 중창한 고려말 고승 나옹선사, 그리고 무학대사가 회암사를 대표하는 고승으로 절터 뒷편 현 회암사가 있는 곳에 그분들의 부도탑이 남아 있다. 회암사 규모에 대해서는 목은 이색이 쓴 '목은집'에 그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하는데, 262칸의 건물에 거대한 불상 7구를 모시고, 3천여명의 승려들이 이 사찰에 머물렀다고 한다. 양주 회암사에는 태조 이성계가 왕위를 양위한 후 이 곳에서 머물렀으며, 세종대왕의 형인 효령대군도 이 곳 회암사에 머물면서 불교 공부를 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세조의 비인 정희왕후가 또한..

절터 2010.10.01

양주 회암사 무학대사 홍융탑 앞 쌍사자석등 (보물389호)

양주 회암사 무학대사 부도를 구성하고 있는 홍융탑 앞 쌍사자석등이다. 이 쌍사자석등은 바닥돌과 아래받침돌이 하나로 붙어 있으며, 그 위에 화사석을 두고 있다. 이 석등은 기존의 8각 석등형태에서 사각형으로 바뀌었다는 것이 큰 특징이며, 무학대사의 명성이 연관되어서 보물로 지정된 것으로 보인다. 조각된 쌍사자는 가슴과 배가 붙이 있어서 입체감이 부족하고 그 조각 수법도 크게 세련되었다고 할 수 없으며, 화사석은 2개의 석재를 그냥 올려놓아 단순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양주 회암사 무학대사 홍융탑 앞에서 불을 밝혀주는 역할을 하는 쌍사자석등. 연꽃무늬가 새겨진 바닥돌과 아랫받침돌이 하나로 되어 있으며 쌍사자상이 중간받침돌 역할을 하고 있다. 회암사 무학대사 홍융탑 앞 쌍사자석등 쌍사자상을 새겨놓은 중간받침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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