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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릉 5

파주 삼릉(사적205호), 한명회의 두딸인 장순왕후 공릉, 공혜왕후 순릉과 영조 장남 진종의 영릉이 모여 있는 곳

파주시 조리읍 봉일천리에 위치한 파주삼릉은 조선8대 예종의 원비 장순왕후의 무덤인 공릉, 성정의 원비인 공혜왕후의 순릉과 영조의 장남인 추존왕 진종(효장세자) 부부의 무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이곳은 조선초기 세조반정의 공신인 한명회가 세자빈으로 들였던 예종의 원비 장순왕후가 세자빈시절에 죽으면서 세자빈 무덤을 만들면서 조성되었으며, 한명회의 딸로 성종의 원비가 된 공혜왕후가 죽으면서 부근에 왕비의 무덤이 조성되었다. 세조와 함께 단종을 몰아내고 권세에 올랐던 한명회가 두딸이 세자빈과 왕비가 되었으나 이른나이에 죽자 직접 두딸을 위해 조성한 능역이라고 볼 수 있는 곳이다. 파주 삼릉은 다른 왕릉과 떨어져 있는 듯 보이지만, 서오릉에 세조의 장자 덕종과 소혜왕후(인수대비)의 영릉, 예종과 계비 안순왕후의 ..

파주 삼릉(사적 205호) 영릉, 영조의 첫째 아들로 진종으로 추존된 효장세자의 능

파주 삼릉 중 제일 마지막으로 조성된 영릉은 조선 21대 영조의 장자이자 사도세자의 형인 추존왕 진종과 효순왕후 조씨의 능이다. 효장세자는 영조가 즉위한지 4년되는 해인 1728년에 어린 나이로 죽었기때문에 처음에는 왕자의 묘로 조성되었다. 이후 영조 38년 사도세자가 죽은 후 정조를 효장세자의 양자로 입적하였고, 정조가 즉위한 후 진종으로 추존되었으며, 대한제국 선포 이후인 1908년에는 다시 황제로 추존되었다. 이런 추존 내력은 영릉에 있는 3기의 표지석에 기록되어 있다. 효장세자가 진종으로 추존되면서 왕자의 묘에서 왕릉으로 격상되었지만 봉분과 석물은 원래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난간석과 무인석이 없다. 영릉의 조성 경위와 절차, 부장품 등에 대한 기록은 의궤에 비교적 소상하게 기록되..

여주 효종 영릉(사적195호), 17대 효종과 인선왕후의 능

여주군 능서면 왕대리에 위치한 조선 17대 효종과 인선왕후의 능인 영릉이다. 세종대왕과 소헌왕후를 모신 영릉에서 북동쪽으로 700여m 정도 떨어진 남한강변에 위치하고 있는 왕릉이다. 효종의 능은 원리 구리 동구릉 건원릉 서쪽편에 있던 것을 현종대인 1673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당시 석물에 틈이 있어 봉분안으로 비가 샐 염려가 있다는 여론이 있어서 능을 옮기기는 했는데, 실제로 별 문제가 없어 이에 연루된 인사들이 면직을 당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산릉의 조성과 천장 등에 관련하여 세력간 대립을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왕릉은 왕과 왕비의 능이 상하로 조영되어 있는 동원상하릉으로 효종 영릉이 최초의 사례이며 이후 경종과 선의왕후의 의릉이 이런 형태를 하고 있다. 단지 왕릉을 두르는 담..

세종대왕 옛 영릉 석물과 신도비

영릉은 세종대왕의 능으로 원래는 서울 내곡동 태종의 능인 헌릉 서쪽편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을 풍수지리상 좋지 않다고 하여, 현재의 위치인 여주로 이장하게 되었다고 한다. 여주로 이장하면서 기존의 석물들은 무거워서 옮기기 힘들다고 하여 땅속에 묻었다고 하는데, 70년대에 그 석물과 옛 영릉 석실들이 발굴되어 현재는 청량리 세종대왕기념관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옛 영릉은 '국조오례의'에 따라 조성된 마지막 능으로 현재의 영릉과는 다른 모습이었다고 한다. 청량리 세종대왕기념관 마당에 전시된 석물들은 영릉에 있었던 모든 석물들이 발굴된 것은 아니지만 상당부분 남아 있다고 한다. 발굴된 석물은 무인석 2기, 문인석2기, 석양.석마 2기씩, 장명등, 망주석, 혼유석, 고석과 신도비가 있다. 청량리 옛 홍릉 능역에 속..

세종대왕릉(영릉) 전시물 - 혼상, 간의, 천상열차분야지도

세종 19년(1437년) 경복궁내에 만든 혼상은 오늘날 천구의와 같이 하늘의 별자리를 적도와 황도좌표의 각도로 둥근 구면 위에 표기하여 별자리의 위치를 살펴볼 수 있도록 한 천문기기이다. 이 둥근 혼상을 회전시키는 축은 지구으 자전축인 북극(북극성 방향)과 남극 방향이 일치하도록 설치되어 있다. 따라서 혼상에 그려진 별자리도 시간에 따라 지평환의 동쪽에서 떠오른다. 또한 천체가 남중(자오선을 통과)할 때는 자오환을 지나도록 하였다. 그리고 서쪽으로 이동하여 지평환 밑으로 지는 모습이 재현되어 하루 밤 동안 별들의 운행을 살펴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세종 때의 혼상은 물의 흘러내리는 힘을 이용하여 자동적으로 하루에 한번씩 회전시킴으로써 하루동안 하늘의 움직임과 같게 하여, 이 혼상을 이용하면 밤의 시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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