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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청 2

강화유수부 이방청, 유사시 행궁 역할이 부여되었던 관아 건물

고려시대 대몽항전기간동안 궁궐이 있었던 강화 고려궁지에는 조선시대 강화유수부 관아와 행궁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있었던 건물로는 행궁, 동헌, 이방천, 만녕전, 외규장각 등의 건물이 세워졌었는데 지금은 강화유수부 동헌과 이방청 건물만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 강화에는 국방상 중요한 곳에 설치되었던 유수부가 설치되어 있었으며 강화유수는 종2품의 상당히 높은 관직에 해당된다고 한다. 강화유수부 관아는 강화지역을 다스리는 행정관청이기는 하지만, 병자호란 이후 비상시 국왕이 대피할 수 있는 행궁이 설치되어 있으며, 기존의 동헌이나 이방청 등의 건물도 비상시 중앙부처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규모를 상당히 크게 지었다고 할 수 있다. 1654년(효종5)에 강화유수 정세규가 세운 강화유수부 이방청은 다른 지방의 이방청이..

조선 관아 2011.09.11

강화유수부(江華留守府) 동헌, 국가 비상시 행궁(行宮)의 역할을 기대했던 관청 건물

강화 고려궁지는 고려시대 몽고와의 항쟁 기간동안 궁궐 건물이 있었던 곳으로 조선시대 조선시대에는 강화유수부 관아에는 여러 관청건물이 세워졌다고 한다. 광해군 14년(1622)에는 태조의 영정을 봉안하는 봉선전이 세워졌다가 병자호란때 소실되었고, 인조 9년(1631)에는 행궁이 건립되었고, 그 이후 유수부 동헌, 이방청, 만녕전 등에 세워져 궁궐의 형태를 하고 있었으며, 정조 6년(1782)에는 왕실 의궤를 보관하던 외규장각이 세워졌다. 행궁을 비롯한 대부분의 건물들은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불태웠다고 한다. 조선후기 강화에는 수도 이외에 군사적 요지나 행궁에 있던 곳에 유수부라는 관직을 두었다. 조선초기에는 고려의 옛 수도인 개성과 태조의 고향인 전주에 유수부를 두었고, 조선후기 병자호란 이후 남한산성에..

조선 관아 2011.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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