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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림사지 4

[부여박물관] 정림사지 출토유물, 성왕대 이후 백제의 의관제

백제의 마지막 수도 부여에 남아 있는 대표적인 유물인 오층석탑이 남아 있는 정림사지는 도성의 중심지에 위치한 사찰로 경주 황룡사와 비슷한 역할을 가지고 있는 사찰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찰이 건립된 시기는 백제가 부여로 도읍을 옮기던 시기로 성왕이 중국 남조 양나라의 지원을 받아서 도성, 궁궐 등과 함께 도시의 기능을 갖추기 위해서 제일 먼저 세운 공공시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정림사의 위치는 백제 궁궐인 사비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부여읍 구아리 도심에서 정남방향으로 약 200여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현재로 도로도 남북으로 직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중국 남북조시대나 당나라때 존재했던 투루판의 교하고성이나 고창고성에서도 큰 절이 도심의 중심에 위치하고 그 주변으로 광장과 상업지역이 ..

지역박물관 2012.05.30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국보 9호), 백제 석탑의 전형

백제 석탑의 전형을 보여주는 국보 9호로 지정된 정림사지 오층석탑입니다. 이후 대부분의 석탑이 이 형태와 유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당나라 소정방이 탑에 낙서를 하는 바람에 소정방이 세운 석탑이라는 오해를 갖고 있었던 석탑으로 그 제작연대가 석탑 중에서는 상당히 이른 편이고, 탑의 크기와 웅장한 자태, 균형미 등이 뛰어난 석탑이다. 감은사지 오층석탑입니다. 웅장한 자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림사지 오층석탑에 당나라 소정방이 세겨 놓았다는 글씨입니다.(?) 잘 보이지는 않습니다. 측면쪽에서 본 정림사지 오층석탑입니다. 정림사지 본당 건물쪽에서 본 오층석탑입니다. ☞ 정림사지 오층석탑 부여 정림사터에 세워져 있는 석탑으로, 좁고 낮은 1단의 기단(基壇)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이다. 신라와의..

부여 정림사지 (동영상)

백제의 수도 부여를 가면 금강(백마강) 하류인근에 자리 잡고 있어, 금강 하류의 논산부터 노령산맥 이북의 호남평야를 경영할 수 있는 육로, 수로상 아주 중요한 위치에 수도를 정했음을 느낄 수 있다. 반면에 부여는 백제가 삼국시대에 신라에 멸망한 까닭에 경주에 비해서 유적지가 아주 많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백제의 예술적 기질과 성과는 일본 나라의 동대사 등 일본과 익산의 미륵사 등에 오히려 많은 흔적이 남아 있다. 정림사지는 백제의 많지 않은 예술적 흔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정림사지가 들어선 위치는 부여의 중심지역으로 경주의 황룡사지의 위치와 비슷하다. 정림사지와서 새로 알은 사실은 우리는 정림사지 5층석탑이 당나라가 백제를 멸망시키고 소정방이 그 기념으로 정림사에 탑을 새운 것으로..

기타 2009.01.23

부여 정림사지, 석불좌상

정림사지 본당 자리에 남아있는 고려시대 석조 불상입니다. 투박한 형태의 불상 모습이 관촉사 은진미륵 등 고려시대 석조불상의 형태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림사라는 절의 이름도 고려시대 절의 이름에서 유래하고 있습니다. 충청남도 부여의 정림사지에 남아 있는 석조불상으로 정림사지 5층석탑(국보 제9호)와 남북으로 마주보고 있다. 정림사는 6세기 중엽에 처음 창건되어 백제 멸망 때까지 번창하였던 사찰로 고려시대에 다시 번창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석불상은 고려 때의 번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금의 머리와 보관은 제작 당시의 것이 아니라, 후대에 다시 만들어 얹은 것으로 보인다. 신체는 극심한 파괴와 마멸로 형체만 겨우 남아 있어 세부적인 양식과 수법을 알아보기 어렵지만, 어깨가 밋밋하게 내려와 왜소한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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