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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족산사고 2

강화 정족산사고, 조선왕조실록과 왕실족보를 보관하던 곳

사고(史庫)는 고려와 조선시대에 당대의 역사를 기록한 실록과 국가적으로 중요한 서적이나 문서를 보관하던 곳이다. 고려는 개국 직후부터 사관을 두고 실록을 편찬했으나 거란의 침입으로 모두 소실되고 고종대인 1227년부터는 개경 이외에 한부를 해인사에 보관하였다. 조선은 고려의 제도를 계승하여 개경의 사고는 한양으로 옮겨 춘추관으로 개칭하고, 충주에서 실록보관소를 두었다. 세종대에는 사고의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경상도 성주, 전라도 전주에 별도의 사고를 설치하여 충주와 함꼐 3대사고를 두었다. 임진왜란 때 전주사고를 제외하고 모두 소실되자 고려의 전례를 참조하여 묘향산, 오대산, 태백산, 적상산의 4곳에 두었다. 청나라의 위협이 증대했던 인조대에는 묘향산 사고를 강화 정족산으로 옮겼다. 이는 실록 등 중요한..

조선 관아 2012.03.05

강화 정족산성(삼랑성), 남문인 종해루와 주변 성벽, 양헌수 승전비

정족산성은 정족산을 중심으로 3개의 봉우리를 능선을 따라서 연결한 전형적인 포곡식 산성으로 산성의 방향은 강화해협(염하)를 바라보는 동쪽을 향하고 있다. 지금은 정족산성 동쪽편으로 넓은 간척지 평야가 펼쳐져 있지만, 원래는 넓은 갯벌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해안을 따라서 구축한 돈대와 함께 강화도 남쪽 해안과 연안 해로인 강화해협을 감시하고 지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던 산성으로 생각된다. 이 곳은 오랜 옛날부터 천혜의 요새로 여겨졌던 것으로 보이며, 조선시대에는 정족산 사고가 산성내에 설치되어 있다. 정족산성의 주출입문은 남문으로 실제로는 산성의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계곡의 시냇물이 흘러 내려가는 방향이다. 일반적인 산성과는 달리 평지와 비슷한 고도에 성문이 위치하고 있으며, 마을과도 상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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