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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현관아 2

창원 진동리 선사유적지(사적 472호), 국내 최대 청동기시대 집단 묘역

진해현 관아가 있었던 창원 진동면 진동리 일대에서 최근에 발견된 국내 최대의 청동기시대 집단 묘역인 사적 472호로 지정된 진동리유적이다. 이 지역에서 토지정리사업 과정에 발견되었다고 하며 대형지석묘와 석관묘가 집단으로 발굴되었다고 한다. 길이 500m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 지석묘와 석관묘과 군집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출토유몰로는 마제석검, 돌화살촉, 무문토기편 등이 있으며 41기의 석관묘가 조사되었다고 한다. 진동리유적은 사적으로 지정되기는 하였지만, 택지 정비를 하던 상태 그대로 남아 있어서 이 곳이 유적지인지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창원시에서 이곳을 공원화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근 진동면 소재지에는 진해현 관아건물들이 남아 있으며, 창원에서 통영으로 가는 국도변에 위치하고 있어서..

진해현 관아 및 객사유지, 창원 진동면 소재지에 남아 있는 관아 건물

진해현은 마산시 합포구 진동면.진북면.진전면 일대에 있었던 조선시대 지방 행정 단위이다. 진해라는 명칭은 지금은 대부분 해군 군항이 있는 옛 진해시로 알고 있지만 조선시대까지는 마산시 서쪽편 고성, 진주 사이에 있는 지역의 고을 이름이다. 진해현은 고려시대에 처음 현이 설치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계속 유지되어 왔다. 진해시는 옛 웅천현에 속했던 지역이다. 이 지역은 농토가 넓은 편이며, 남해안 연안 해로에서도 중요한 지역이었기때문에 고대 이래로 지역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진해현 관아가 있던 진동면 소재지에는 청동기시대 최대의 집단 묘역인 진동리 유적이 발굴되기도 했다. 또한 진해현 관아에서 관리했던 조선시대 호적이 남아 있기도 하다. 진해현 관아 건물은 조선 순조 32년(1832)에 세운 건물로 지금은 ..

조선 관아 2011.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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