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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서원 2

함양 청계서원, 김일손을 모신 서원

연산군 때 학자이자 문인인 김일손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함양 청계서원이다. 조선시대 세워진 서원은 아니고 1907년에 세워진 사당 성격의 서원이다. 강당을 중심으로 강학공간이 낮은 곳에, 사당을 높은 곳에 배치한 전학후묘의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남계사원과 거의 비슷하게 지어졌는데 건축적 측면에서 완성도는 떨어지는 편이다. 김일손(1464~1498년)은 조선 성종~연산군대 활동한 학자이자 관리로 남계사원에 모셔진 정여창과 함께 김종직의 제자였다. 그는 사관으로 김종직의 ‘조의제문’이란 글을 사초(史草)에 넣어 무오사화 때 희생되었다. 한때 이곳에서 ‘청계정사’를 세후고 후학들을 양성했다고 하여 지역 유림들이 그를 기리는 유허비와 서원을 세웠다. 목천 도동서원과 청도 자계서원에 모셔졌다. 함양 남계서원 옆..

진주 청계서원, 목화를 처음 재배한 정천익을 모신 서원

진주성내 옛 경상우병영 관아가 있었던 북장대 안쪽에는 일제강점기에 이곳에 경남도청이 들어서면서 옛 관아건물들은 남아 있지 않고 지금은 청계서원과 사당인 경절사가 들어서 있다. 청계서원은 고려초 거란과의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정신열과 우리나라에서 목화를 처음 재배한 인물인 정천익을 모신 서원이다. 청계서원은 조선후기 순조대에 진주 대평면 남강변에 세워졌다가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던 것으로 해방이후 진주성으로 옮겨와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원래 후진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기관으로 세워졌던 서원이 조선후기에 들어서면서 가문의 유력인물을 모시는 사당으로 변질되면서 많은 병폐가 생겨나던 시기에 세워진 전형적인 서원이라 할 수 있다. 청계서원은 가운데 강학공간인 강당이 있고, 양쪽에 사당인 경덕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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