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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 15

[중앙박물관 특별전, 천하제일 비색청자] 상감청자, 고려 공예의 정수

상감(象嵌, inlay)이란 공예품에 장식을 하는 기법으로 소재의 표면에 그림이나 문양을 새겨서 그곳에 조개껍질, 뼈 등의 상감재료를 끼워 넣어서 문양을 나타낸다. 상감기법은 고대 이래로 다양한 시대, 지역에서 사용되었던 공예기법으로 나무, 유리, 금속, 도자기 등에 사용된다. 이집트를 비롯한 고대 문명지역에서도 칠기나 금속공예 등에 상감기법을 많이 사용하였으며, 섬세하면서도 화려한 조형미를 보여주는 기법이다. 상감기법은 오랜세월 동안 다양한 지역에서 사용된 공예기법이기는 하지만 이를 도자기에 적용한 것은 12세기 고려청자가 처음이라고 한다. 상감청자는 자기의 바탕흙에 무늬를 새기고, 다른 종류의 흙이나 재료 등을 메워 넣는 기법으로 장식한 것으로 고온에 굽는 도자기의 기술적 특성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

중앙박물관 2013.01.09

[중앙박물관 특별전, 천하제일 비색청자] 종교와 고려청자

차를 마시는 그릇인 완을 도자기로 만들어 사용한 이래로 국내에서 직접 도자기를 생산.제작하면서 기술도 발전하여 다양한 형태와 크기의 도자기들이 만들어졌다. 초기에는 도자기의 원래 용도라고 할 수 있는 음식을 먹는 그릇이나 잔 등이 많이 만들어졌으며, 점차로 음식을 보관하는 매병, 병, 항아리를 비롯하여 베개, 향로, 의자, 연적 등 특이한 형태의 도자기들이 만들어졌다. 그중 삼국시대나 통일신라시대에 많이 만들어졌던 상형토기가 발전한 것이라 할 수 있는 상형도자기들도 많이 만들어졌는데 상당부분 종교와 관련된 형상이나 용기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상형도자기로는 도교의 신선을 형상화한 국보 157호로 지정된 사람모양주자, 국보 173호로 지정된 나한상, 국보 270호로 지정된 원숭이모양 연적을 들 수 있다..

중앙박물관 2013.01.07

[중앙박물관 특별전, 천하제일 비색청자] 청자로 만들어진 생활용품

통일신라시대에 당나라에서 수입한 도자기를 사용하기 시작한 이래로 고려시대에 들어서면서 수도인 개경을 중심으로 한반도에서도 도자기를 자체 생산하기 시작했다. 고려청자로 잘 알려진 고려의 도자기는 처음에는 차를 마시는 작은 그릇인 완을 만들기시작했으며, 점차 궁궐을 비롯한 왕실과 귀족계층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종류의 식기를 주로 만들었다. 주로 음식을 먹는 그릇, 술이나 차를 담는 주자, 잔, 매병 등 다양한 형태의 도자기들이 만들어졌다. 도자기는 처음 사용했을때부터 상당히 고급스러운 사치품이었으며, 국내에서 도자기를 생산하면서 도자기의 고급스러운 빛깔과 빼어난 조형미는 귀족들의 취향에 맞는 다양한 생활용품들에 대한 수요를 불러 일으켰다고 할 수 있다. 고려청자로 만들어진 생활용품으로는 화려한 무늬가 새겨진 ..

중앙박물관 2013.01.06

[중앙박물관 특별전, 천하제일 비색청자] 무덤에 묻힌 도자기

고대 문명이 발생한 이래로 인류는 죽은자가 사후세계에서도 현세와 마찬가지로 살아 갈 수 있도록 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껴묻거리를 무덤에 묻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청동기시대 무덤양식인 고인돌을 비롯하여 다양한 형태의 고분에서는 수많은 껴묻거리들이 출토되고 있다. 무덤 껴묻거리 중에는 무기류를 비롯하여 다양한 장신구들이 있지만, 그 중 가장 많은 수량을 차지하는 것이 식생활과 관련된 다양한 그릇들일 것이다. 통일신라를 거치면서 무덤 껴묻거리는 그 수량이나 종류가 간소화되는 경향을 보이지만 기본적인 생활용품이 그릇들이 많은 무덤들에서 출토되고 있다. 고려시대 무덤은 많이 발굴되지는 않고 있지만, 일부 발굴된 무덤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꺼묻거리들이 출토되고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곳이 개성부근에서 발굴조사된 고려 ..

중앙박물관 2013.01.03

[중앙박물관 특별전, 천하제일 비색청자] 청자 매병, 술을 담는 용기

매병은 술같은 액체를 담는 용기로 입이작고 어깨가 풍만하여 몸체는 아래로 내려갈 수록 좁아지는 형태의 병으로 도자기를 만들기 시작했던 고려청자 중에서 많은 걸작품들이 남아 있다. 액체를 담는 그릇으로 선사시대 이래 토기를 만들었을 때부터 중요한 용도의 그릇으로 입이 넓은 항아리(Jar)나 입이 좁은 병(Battle)이나 서양의 암포라(Amphora)의 형태로 많이 만들어졌다. 고려청자 매병는 주로 궁중이나 부유층에서 술을 담기 위한 그릇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뚜껑이 있다. 기존의 항아리, 병, 암포라와는 다른 형태를 하고 있으며 기능은 비슷하지만 특히 지중해 해상교역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던 올리브오일이나 포도주를 담았던 그릇인 암포라(Amphora)와 비슷한 기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매..

중앙박물관 2013.01.02

[중앙박물관 특별전, 천하제일 비색청자] 상위에 놓인 청자

도자기는 흙을 빚어 고온의 불에 구워낸 그릇이나 장식물을 말하는데 1,300도 이하의 낮은 온도에서 구운 것으로 도기, 1300~1,500도에서 구운 것을 자기라고 한다. 사람이 흙으로 그릇을 빚은 토기를 사용한 것은 상당히 오래된 일로 동시대 사람들의 생활모습과 기술수준을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가 되기도 한다. 동아시아에서 도자기는 중국에서 처음 만들어졌으며 한반도를 비롯하여, 베트남, 일본, 서역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한반도에서는 통일신라시대부터 중국으로부터 수입된 도자기를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중국 송나라 월주요의 영향을 받아 고려초기부터 국내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한반도에서 도자기를 사용하게 된것은 서역으로부터 차를 마시는 문화를 받아들임으로써 차를 마시는 그릇인 완이 중국으로부터 수..

중앙박물관 2012.12.28

[중앙박물관 특별전, 천하제일 비색청자] 청자로 장식된 집

고려초 청자가 국내에서 제작하던 시기에는 차를 마시는 작은 그릇인 완을 비롯한 작은 그릇들이 주로 만들어졌으나 전성기에 접어들면서 다양한 형태의 생활용구를 비롯하여 상형도자기들이 만들어졌다. 청자로 만든 생활도구 중에는 항아리를 비롯하여 각종 그릇들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청자 의자나 향로, 베개 등 예술적 조형미가 풍부한 도자기들도 많이 만들어졌다. 청자는 또한 집을 장식하는 기와를 비롯하여 각종 건축부재로도 사용되기도 하였다. 청자기와 등은 고려시대에 사용되기는 했지만 아주 일반적으로 사용된 건축부재는 아니고 정자 같은 소규모 건축물 등을 장식하는데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강진 가마터에서 발견된 청자기와 등을 통해서 고려인들이 청자를 건축부재로 사용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청자기와는 조..

중앙박물관 2012.12.26

[중앙박물관 특별전, 천하제일 비색청자] 고려청자의 변화와 쇠퇴

12~13세기초까지 절정을 이루었던 고려의 청자 제작기술을 13세기 몽고의 침입으로 오랜 기간 전쟁을 치르면서 그 경제적 기반이 상당히 약화되었다. 도자기의 모양은 단순해지면서, 두께는 두꺼워졌고, 아름다운 비색 청자 유약은 녹갈색이나 황갈색을 띠게 되었고 화려한 상감무늬는 점차 단순해졌다. 특히 몽고와의 전쟁이 끝난후 일본과의 해상무역이 쇠퇴하고, 왜구의 침입으로 해안가에 있었던 전남 강진이나 전북 부안의 도자기 생산가마들이 폐쇄되고 장인들은 내륙으로 피난하면서 도자기의 생산지가 전국으로 확산하게 된다. 이런 까닭에 고려말기의 도자기 수준은 전성기에 비해서 퇴보하게 되었고, 이런 도자기의 품질을 관리하기 위해서 도자기의 한쪽 부분에 글자를 상감으로 새겨 넣게 되었다. 도자기에 새겨진 글자로는 궁궐 관청..

중앙박물관 2012.12.16

[중앙박물관 특별전, 천하제일 비색청자] 고려청자의 절정과 확산

도자기는 유약을 입혀 1,300도 정도의 높은 온도에서 구워낸 것으로 세계 도자기 역사에 큰 의미를 갖는 것으로 중국 당나라에서 당삼채와 함께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한반도에서는 통일신라시대에 도자기 제품을 사용하기는 했으나, 실제로 생산된 것으로 고려초인 9세기말에서 10세기 초 중국 월주요의 영향을 받아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개경부근에서 도자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는데,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12세기에는 도자기 무역로에 위치하고 있었던 전남 강진과 전북 부안을 중심으로 전국각지에 가마에서 청자가 만들어 졌다. 초기에는 간단한 형태를 차를 마시는 용기인 '완'이 많이 만들어졌지만, 기술의 발전함에 따라 매병, 병을 비롯하여 다양한 생활용품들이 청자로 만들어졌다. 장식기법 또한 음각.양각.철화.통화..

중앙박물관 2012.12.15

[중앙박물관 특별전, 천하제일 비색청자] 고려청자의 시작과 전개

비색청자로 불리는 고려 청자는 은은한 녹색을 띠는 도자기로 우리나라을 대표하는 문화재이자 예술작품이라 할 수 있다. 고려청자는 도자기 종주국인 송나라 사람들조차도 그 빛깔이 중국 청자보다 뛰어나다고 칭송하였다고 한다. 비색청자는 유약이 반투명하며 그릇표면에 금이 생기지 않고 광택이 은은한 것이 특징으로 11세기 후반에서 12세기 전반에 절정기를 이루며 12세기에는 상감기법이 도입되어 그 빛깔과 함께 예술적 조형미까지 갖추게 되었다. 청자는 중국 당나라에서 당삼채와 함께 처음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통일신라시대에는 당나라에서 수입한 도자기들이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당나라 말에서 오대에 이르는 혼란기에 중국에서 도자기를 만들던 기술자들이 한반도로 넘어오면서 월주요의 영향을 받은 도자기들이 고려초기부터 생산되기 ..

중앙박물관 2012.12.12

[중앙박물관 신안해저문화재실] 용천요와 경덕진요를 비롯한 다양한 중국 도자시기 생산지에서 만들어진 도자기들

고려시대 신안 앞바다에서 침몰한 신안선에는 2만8천여점에 이르는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그 중 상당수가 중국에서 만들어진 청자이다. 신안선에 출토된 목간들을 비롯한 자료들과 생활용품 등을 분석해 볼 때 이 배에 실린 화물은 일본 사원의 승려들의 주축이 되고 상인들이 출자하여 중국에서 도자기류를 비롯한 다양한 물품을 싣고 한반도 연안을 따라 항해하여 일본 교토지방으로 운행하던 선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신안선에서는 청자빛깔의 대명사인 중국 저장성 룽취안에 위치한 용천요에서 생산된 청자들을 비롯하여, 고려청자, 회색빛의 청백자가 특징인 푸젠성 민칭에 위치한 민청요, 흑색항아리의 푸젠성 홍탕촌에 위치한 홍당요, 광동성 스완에 위치한 석만요, 장시성 간저우에 위치한 감주요, 흑유잔으로 유명한 푸젠성 지엔양에 위치..

중앙박물관 2012.05.08

[중앙박물관 고려실] 고려시대 금속화폐와 일상속 상류층 문화

고려시대에는 절제와 소박함을 강조하던 유교사회였던 조선시대와는 달리 일상생활에서도 화려함과 세련된 문화를 향유한 사회였다.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재로 오늘날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화려한 색감과 형태의 고려청자를 비롯하여 물그릇으로 사용한 정병, 화려한 재질로 만들어진 생활용품 등이 남아 당시 지배층의 화려했던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고려시대에는 중국 송나라를 중심으로 활발한 무역거래가 있었던 시기로 신안 앞바다 등에서 발굴된 유물들에서도 알수 있듯이 도자기를 중심으로 송나라, 일본 등과 활발했던 무역활동을 엿볼 수 있다. 중앙박물관에서는 태안 앞바다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데, 당시 강진가마에서 만들어진 청자들이 고려의 수도이 개경으로 운송하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무역..

중앙박물관 2012.02.10

[경기도박물관] 고려시대 도자기

통일신라시대 이후에는 고분에 껴묻거리를 묻는 문화가 없어지면서 대체로 현재까지 전해내려오는 유물이 그리 많지 않은편이다. 조선시대의 경우는 진왜란 이후 많은 문서들이 전행기때문에 유물들이 풍부한 편이지만 고려시대는 유형적인 유물로는 고려청자를 비롯한 도자기, 여러 사찰들에 남아 있는 불상이나 불화, 승탑 등을 제외하고는 다양한 유물이 전해오지는 않고 있다. 이는 중국이나 일본 등 동아시아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대체로 고려시대 유물로는 각 박물관에서는 고려자기를 주로 전시하고 있는 형편으로 당시 역사나 생활모습을 보여주기에는 부족해 보이는 부분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도자기 인류의 도자 문화는 신석기 시대 곡물의 저장과 조리용으로 토기를 사용한 것으로 시작된다. 우리..

지역박물관 2012.01.08

[중앙박물관 도자공에실] 고려후기의 청자

고려후기에는 몽골의 침입으로 오랜 기간 전쟁을 치르면서 국가적으로 경제가 상당히 어려웠던 시기이다. 이는 청자제작에도 영향을 미쳐 전반적으로 전성기의 청자에 비해서 고려후기에는 그 제작수법의 단순해졌으며, 이전의 세련된 기술들이 많이 쇠퇴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고려 중기 청자기술의 발달이 남송과의 교역 등을 통해서 크게 발전할 수 있었는데 그 경제적 기반이 약해짐으로써 생기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고려후기 해안지역에는 일본의 왜구가 서남해안 지방을 침입하여 고려청자를 만들던 가마들이 있었던 전남 강진과 전북부안의 장인들이 내륙으로 피난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한강유역을 중심으로 도자기 생산의 새로운 거점이 생기고 조선시대 분청사기가 등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용어리..

중앙박물관 2011.02.14

[중앙박물관 도자공예실] 고려의 자기문화, 비색청자

우리나라에서 자기가 언제부터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통일신라 말기인 9~10시에 시작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많았던 것 같다. 중국에서는 당삼채에서 시작되어 당나라때 청자가 만들어졌다고 하며, 통일신라말에서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크게 발전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며 중국에서 수입한 것들을 일부 계층에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자기를 만드는 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황소의 난에서 시작된 당나라 말기의 혼란상을 피해서 우리나라로 넘어온 중국 기술자들에 의한 것이라는 견해들이 있는데 세계 문화 교류를 돌이켜 보면 크게 무리가 없는 주장인 듯 하다. 고려 초기의 가마들은 수도 개경을 부근에서 중국 월주요의 자기들을 생산했다고 하며, 11세기에 들어서는 중국 송나라와 ..

중앙박물관 2011.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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