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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비 21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 승탑(보물137호)와 탑비(국보 315호), 섬세한 조각상이 있는 승탑과 최치원이 글을 지은 탑비

문경 봉암사 경내에 남아 있는 지정된 지증대사 승탑(보물137호)와 탑비(국보 315호)이다. 지증대사 승탑은 통일신라말 승려의 사리를 모신 승탑을 대표하는 것으로 2층의 기단위에 탑신과 지붕돌을 올려놓은 형태이다. 승탑 각부분에 화려한 조각상을 새겨놓고 있어 통일신라시대의 뛰어난 조각기술을 잘 보여주고 있다. 2단으로 이루어진 기단은 8각형으로 각면이 밑단에는 사자를 조각하였으며, 기단 윗단에는 전설속 동물인 가릉빈가를 새겨 놓고 있다. 이 승탑의 가장 특징부분인 가운데 받침돌에는 당시 악기를 보여주는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는 비천상을 새겨 놓고 있다. 8각으로 이루어진 탑신에는 앞.뒤로 문을 새겨 놓고 있으며, 사천왕상과 보살의 모습을 조각해 놓고 있다. 탑비는 비는 지증대사의 승탑을 세우면서 그 내력..

제천 월광사지 원랑선사 탑비 (보물 360호), 정형화된 통일신라 탑비

새롭게 단장한 국립중앙박물관의 넓은 로비 공간을 경천사10층석탑과 함께 지키고 있는 월광사지 원랑선사 탑비이다. 제천의 월광사터에 있던 탑비를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경복궁으로 옮겨 놓아서 현재까지 이르고 있고,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탑비로 머리.몸.받침이 온전히 남아 있고, 비례에 있어서 안정감이 있는 탑비로 우리나라 문화를 대표한다고 볼 수 있어서 박물관 중앙 로비에 전시된 것으로 보인다. 이탑비는 통일신라 후기 승려인 원랑선사의 행적을 기록한 탑비로 거북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머리돌을 얹어 통일신라 후기의 정형화된 탑비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원랑선사는 당나라에 11년간 유학한 후 월광사에 머물렀다고 한다. 이 탑비는 헌광왕이 '대보선광'이라는 탑명을 내리고 글을 짓게 하였다고 한다. 글..

부여 보광사지 대보광선사비(보물 107호), 부여박물관 야외로 옮겨진 고려말에 세워진 탑비

부여군 성주산 보광서 절터에 남아 있던 것을 부여박물관으로 옮겨서 전시하고 있는 보물 107호로 지정된 부여 보광사지대보광선사비이다. 이 비는 고려시대 보광사를 크게 일으킨 원명국사의 공적이 새겨져 있다. 고려말 공민왕때인 1358년에 세워진 것으로 바침돌과 머릿돌은 남아 있지 않고 공적이 새겨진 비몸만 남아 있다. 앞면은 비가 처음 세워질 때 새겨진 것이고, 뒷면은 영조대인 1750년에 추가하여 적은 놓은 것이다. 화려하고 섬세하게 만들어졌던 고려중기 이전의 탑비와는 달리 간략하게 만들어 놓고 있다. 부여박물관 정원에는 보광사지 대보광선사비를 하여 충남지역에 흩어져 있던 고승들이 부도와 비석 부재를 옮겨서 전시하고 있는데, 이 지역은 백제 멸망이후 오래된 고찰이 많지 않았던 까닭에 비석들이 많이 전시되..

양평 보리사 대경대사 현기탑비(보물 361호)

국립 중앙박물관 야외에 전시되어 있는 보리사터에서 발견된 고려 초 승려인 대경대사 탑비이다. 머릿돌에 새겨진 구름과 용의 무늬가 인상적으로 중국에서 많이 본듯한 느낌을 준다. 받침돌은 거북이 모양을 하고 있는데, 비석의 크기에 비해서 작아 보인다. 이 승탑은 통일신라말에서 고려초에 활동한 성주산문의 대경대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탑비로 양평 보리사 절터에서 발견되어 경북궁으로 옮겨졌다고 현재는 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비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거북받침돌과 비몸, 머리돌로 이루어져 있는데, 거북받침돌에 비해서 용으로 장식되어 있는 머리돌을 크게 만들어 전체적으로 균형을 잃고 있다. 머릿돌에 새겨진 용무늬 장식은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매우 힘차게 조각되어 있다. 대경대사는 처음에는 교..

안성 칠장사 혜소국사비 (보물 488호)

안성시 죽산면 칠장사 경내에 있는 고려시대 고승 혜소국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 세운 비석이다. 혜소국사는 972년에 안성에서 태어나 10세에 입적하여 이 곳 칠장사에서 융철에게 요가법에 의한 수행방법인 유가행을 배운뒤 법천사에 머물렀으며, 목종대인 992년에 대사(大師), 문종대인 1049년에 왕사, 1054년에 국사를 지낸뒤 말년에 칠장사에 머물다 입적했다고 한다. 그는 칠장사를 창건하여 일곱악인을 교화했다고 사적기에 기록되어 있으나, 수행을 중시하는 선승(禪僧)이라기 보다는 밀교의 일종인 유가밀교의 고승이었다고 한다. 현재의 비는 받침돌인 귀부와 몸돌, 머릿돌이 따로 떨어져 있는 상태로 있다. 그의 행적이 새겨진 몸돌은 흑대리석으로 만들었으며, 옆면에는 길게 두마리의 용을 새겨놓고 있다. 이 비는 ..

충주 정토사법경대사자등탑비 (보물 17호)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에 있었던 정토사는 신라말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찰이다. 영남 내륙과 한양을 연결해 주던 주요 교통로인 죽령 아래 남한강 수로를 관리하던 큰 고을인 청풍도호부 지역과 약 20 km 정도 떨어진 곳으로 제천지역에서 흘러 남한강과 합류하던 주요 교통로에 위치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충주댐 건설로 수몰되어 현재의 위치로 옮겨져 있다. 이 사찰은 신라말.고려초 고승으로 태조 왕건이 국사로 모셨던 법경대사와 그 뒤를 이어 홍법대사가 제자들을 가르치던 큰 사찰이었다. 또한 고려시대 실록을 마지막으로 보관하던 사찰로 이 곳에 있던 실록을 비롯하여 많은 자료와 서적들이 한양으로 옮겨져 세종대에 고려사를 편찬하는 자료가 되었다고 한다. 당시 자료 대부분은 없어지고 그 내용만이 고려사를 ..

충주 억정사대지국사비(보물16호), 조선초에 세워진 간략한 형식의 비석

충주시 엄정면 괴동리 옛 억정사 절터에 남아 있는 보물 16호로 지정된 대지국사비이다. 이 비는 고려말 고승이 대지국사를 기리기 위해서 세운 비석이다. 대지국사는 양주 출신으로 삼각산 중흥사에서 태고화상 보우의 제자로 출가하여 당대의 고승인 정혜국사, 수자화상에게 배웠다고 하며, 주로 공민왕 때 왕실과 가까웠다고 하며 1283년에는 왕사로 책봉되어 원응존자라는 칭호를 받았다. 불교 역사나 사상에 큰 영향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당대의 고승으로 명망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보통 승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우는 비석은 승려의 사리를 모신 승탑과 함께 세우는 것이 일반적이나 승탑이 원래 없었는지 훼손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은 탑비만 남아 있다. 이 비는 거북받침돌이나 이수가 없는 단순한 형태의 돌에 글자..

원주 흥법사지 진공대사탑비 귀부 및 이수(보물 463호)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 섬강변 언덕에 위치하고 있는 흥법사 옛절터에는 고려시대에 세운 삼층석탑과 진공대사를 기리는 탑비의 귀부와 이수만이 남아 있고, 절터 대부분은 경작지로 바뀌어 옛모습을 찾아 볼 수는 없다. 흥법사가 있었던 절터는 원주와 여주, 양평을 연결해주는 주요 교통로이며 섬강과 문막읍 시가지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이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진공대사는 통일신라말 고승으로 당나라에서 유학을 했으며,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한 이후에는 고려 태조의 왕사를 지냈다고 한다. 절터에는 진공대사 탑비의 귀부와 이수만이 남아 있고, 비석은 파손되어서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탑비의 귀부는 짧은목에 비늘을 새긴 용의 얼굴을 하고 있으며, 거북 등에는 卍자와 연꽃무늬가 장식으로 새겨져 있다. 머릿돌인..

양양 선림원지 홍각선사탑비 귀부 및 이수 (보물 446호)

양양에서 구룡령을 넘어가는 56번국도 근처에 있는 미천골자연휴양림 내에는 통일신라시대 창건된 옛 절터인 선림원지가 있다. 선림원지는 해인사를 창건한 순응법사가 창건한 사찰로 대표적인 선종의 수행도량이었다고 한다. 선림원지에는 3층석탑과 석등, 부도, 홍각선사탑비 등이 남아 있으며, 신라범종 등 다량의 유물이 출토된 유적지이다. 이 곳 선림원지에 남아 있는 유물 중 홍각선사탑비는 신라 정강왕때인 886년에 홍각선사를 기리기 위해서 세워진 탑비이다. 이 탑비는 조선시대 이전에 파손되어 귀부와 이수만 남아 있던 것을 최근 몸돌을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귀부는 용의 머리가 직립한 모습이고, 비좌에는 구름무늬가 둘러져 있다. 이수에는 "홍각선사비명"이라는 전액을 양각으로 새기고 주위에는 구..

보령 성주사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 (국보8호)

대천해수욕장이 있는 보령시에서 내류 방향으로 조금 들어가면 통일신라시대의 큰 사찰이었던 성주사지 옛 절터를 볼 수 있다. 보령 성주사지에는 이 사찰을 창건한 낭혜화상의 탑비를 비롯하여 5층석탑과 3기의 3층석탑이 있는 큰 절터이다. 절터는 금당과 강당, 석탑으로 구성된 통일신라시대 사찰배치를 하고 있으며, 당시 산속에 많이 세워졌던 다른 사찰과는 달리 전통적인 평지사찰의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성주사지에 있는 문화재 중에서 국보로 지정된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는 성주사를 크게 중창한 낭혜화상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비석이다. 낭혜화상은 태종무열왕의 8대손으로 당나라에서 선종을 배우고 와서 이 곳에서 성주산문을 창설한 인물이다. 이 탑비가 세워진 시기는 통일신라 말기인 진성여왕때라고 하며, 통일신라 시대에 세워..

양주 화암사 지공선사 부도와 석등, 탑비

양주 회암사 언덕에 있는 여러기의 부도 중 하나인 지공선사 부도이다. 이 부도는 회암사를 창건한 인도인 승려 지공선사의 사리를 모신 것으로 부도탑, 제단, 석등, 탑비가 제대로 구성되어 있다. 통일신라시대 이래로 보이는 8각을 기본으로 한 전형적인 형태를 하고 있는데, 고려전기의 부도탑에는 화려한 조각이 부조로 새겨져 있는데 비해 이 부도는 어떤 장식도 하지 않고 있으며 돌을 쌓아 놓은 것 같은 단순한 형태를 하고 있다. 부도 앞 석등은 4각을 기본으로 한 형태로 이 또한 장식이 없고, 석재를 조립해서 만든 듯한 느낌을 준다. 탑비는 앞쪽의 무학대사비와 마찬가지로 4각의 받침돌 위에 몸돌과 머리돌을 얹어 놓은 것으로 조선후기에 만든 것으로 보인다. 원래의 탑비가 놓여졌던 거북모양 이수가 탑비 옆에 놓여져..

양주 회암사 무학대사비

양주 회암사 무학대사 홍융탑을 구성하고 있는 무학대사묘비로서 홍융탑 앞에 위치하고 있다. 비문에는 그가 원나라에 들어가 나옹선사의 제자가 된일, 한양천도에 역할을 한 일 등이 적혀 있다고 한다. 원래는 태종 10년에 변계량이 지은 비문이 새겨져 있었던 것이나, 순조되 파괴되었다고 다시 세워졌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비석은 고려시대에 만든 많은 탑비에 비해서 제작수법이 많이 떨어지고 단순한 4각받침돌 위에 비석을 세워놓고 있다. 그 옆에는 원래 탑비가 세워졌던 이수가 놓여 있다. 양주 회암사 동쪽편 언덕 무학대사 홍융탑 앞에 세워진 탑비인 무학대사비. 무학대사 탑비는 4각의 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지붕돌을 얹어 놓은 단순한 형태를 하고 있는데 이는 조선후기에 훼손된 탑비를 새로 만들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원주 거돈사지 원공국사승묘탑비

남한강변 내륙수운의 요지 중 하나인 원주시 부론면 소재지 인근에 위치한 법천사지에서 동쪽편 고개 너머에 위치하고 있는 원주 거돈사지에 남아있는 승려의 사리탑인 부도탑이다. 고려 현종때 고승인 원공국사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는 탑비로, 그 제작 수법에 있어서는 법천사지 지광국사현모탑비에 비해서 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뒤에 만들어진 지광국사현모탑비를 만들때 그 조각 기술이 더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이 탑비는 거북받침에 몸돌과 머릿돌을 세운 것으로 이 탑비는 거북받침돌은 작고, 머릿돌은 크게 만들어서 전체적으로는 약간 불안정하게 보이는 면이 있어 보인다. 머릿돌은 용무늬를 새겨 넣고 있는데 중국의 비석과 비슷한 느낌을 주고 있다. 거북받침돌은 작고 단순하게 만들었으며 조각수법의 세련된 멋은 약간 부족..

원주 법천사 지광국사현모탑비, 용이 살아움직이는 듯한 탑비

남한강변에 위치한 원주시 부론면에 위치한 법천사지에는 오래된 절터에 옛날의 영화를 보여주는 듯한 유물로 고려시대 고승인 지광국사현모탑비가 남아 있다. 탑비가 있으면 현모탑(부도탑)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이 곳에 없고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현재는 경복궁 경내에 있다고 한다. 탑비는 거북받침돌 위에 비모돌을 세우고 그 위에 머릿돌이 있는 형태를 하고 있는데, 전통적인 탑비의 양식에 이 탑비만으니 독특한 양식이 많이 남아 있어서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이다. 법천사지는 남한강 이북의 교통요진인 원주시 부론면의 교통요지에 자리잡고 있는데, 조선시대까지는 남한강을 오가는 내륙수운에 있어서 중요한 나룻터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부론면에는 원주와 충주를 연결해 주는..

[북경 명13릉] 정릉(딩링) 입구 거북모양 비석

북경 명13릉 중 하나로 만력제의 능인 정릉 금수교를 지나서 좁은 삼도를 조금 걸어서 들어가면, 우리나라 사찰 탑비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거북모양의 받침대를 하고 있는 비석을 볼 수 있다. 한국의 왕릉에서는 볼 수 없는 것으로 그 이유와 비석에 적힌 내용을 잘 모르겠지만, 중국 만의 특징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 비석의 생김새는 우리나라 고려시대 유명한 승려의 사리탑과 같이 있는 탑비와 비슷한 크기와 모양을 하고 있다. 탑비를 만든 재료 또한 중국에서 많이 쓰는 대리석을 사용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탑비의 경우도 대리석을 쓴 경우가 자주 있는 것으로 보아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명13릉 정릉 금수교와 삼문 사이의 삼도 중간에 자리잡고 있는 거북모양의 받침대를 하고 있는 탑비. 중국에서 많이 볼..

중국(China) 2010.07.10

대원각사비, 원각사지 내력을 적은 비석

종로 탑골공원에 있던 사찰인 원각사의 창건 내력을 적은 대원각사비이다. 조선 성종때 건립되었다고 하는데, 거북모양으로 만든 귀부 위에 대리석으로 비석을 세워 놓았는데, 용이 비석을 휘감고 있는 중국풍의 비석이다. 당시 국가 주도로 만든 비각이지만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탑비보다는 만든 수법이 떨어지고 약간 성의가 없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원각사지10층석탑과 함께 이 곳의 원각사 옛터였음을 알려주는 대원각사비. 머릿돌을 따로 두지 않고 몸돌과 머릿돌이 하나로 되어 있다. 대원각사비 거북받침돌. 조각수법이 고려시대 탑비들에 비해서 많이 떨어진다. 전체적으로 화려하거나 생동감을 많이 주지는 못하고 있다. 비석의 몸돌과 머리돌이 하나로 이루어져 있고, 두마리의 용이 비석을 감싸는 모양이다. 비문은 당대의 명신들인..

[강진 월출산 무위사] 선각대사편광탑비

무위사 극락전 서쪽편에 위치한 탑비로 통일신라시대 고승 선각대사를 기리기 위해 세운 탑비이다. 고려초 광종이 '선각'이라는 시호를 내렸다고 한다. 이 탑비는 비받침돌, 몸돌, 머리돌이 온전하게 남아 있으며, 당시에 세워진 탑비 중에서 큰 편은 아니지만, 받침돌의 조각이 사실적이고 생동감있게 만들었다. 무위사 선각대서편광탑비. 탑의 받침돌. 몸은 거북이고, 머리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의 형상이다.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의 형상을 한 받침돌 머리. 탑비에는 고려초 문장가 최언위가 비문을 지었다고 한다. 탑비의 머리돌. 여러 방향에서 본 선각대사편광탑비. 무위사는 전라남도 강진의 월출산 동남쪽에 있는 사찰이다. 신라의 명승 원효(元曉)가 창건하여 ‘관음사’라 하였고, 명종 5년(1550) 태감(太甘)이 4번..

[월출산 도갑사] 도선.수미비, 수미왕사비

도갑사 경내 중심불전인 대웅전을 지나서 월출산에서 흘러내리는 계곡길을 따라서 조금만 올라가면, 해탈문과 함께 이 곳 도갑사를 대표하는 문화재인 도선.수미비라는 탑비와 그 옆에 여러 고승들들의 부도를 한데 모아 놓은 부도전을 볼 수 있다. 도선.수미비는 조선후기 효종때에 만들어진 것으로 도선국사와 수미왕시의 행적을 적어놓고 있는 비석으로 글자와 조각의 예술적 가치가 높고 조선후기 조각을 대표하는 유물 중의 하나라고 한다. 비각에 모셔진 도갑사 도선.수미비. 뒤쪽에서 본 도선.수미비 도갑사 도선.수미비의 귀부. 살아 움직이는 듯하게 잘 만들어진 작품이다. 측면에서 본 귀부 여의주를 물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는 귀부의 머리. 입안에 동전을 던져 놓고 있는데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닌 것 같다. 섬세하게 조각해 놓..

하동 삼신산(지리산) 쌍계사(雙磎寺) - 진감선사대공탑비(眞鑑禪師大空塔碑)

쌍계사 누각인 팔영루를 돌아서면 경내로 들어서게 됩니다. 쌍계사 경내는 특이하게 석탑이 중앙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탑비가 경내 중앙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쌍계사의 내력에서 가장 중요시하게 여기는 불교 음악인 범패를 우리나라에 도입한 진감선사탑비입니다. 이 탑비는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로 몸통은 손상되었지만 아래의 거북받침돌과, 위의 머릿돌은 통일신라시대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예술적/역사적 가치가 높은 것 같습니다. 국보로 지정된 쌍계사 진감선사대공탑비입니다. 몸돌은 손상되었지만 아래의 거북받침돌과, 위의 머릿돌은 통일신라시대에 만든 것으로 역사적/문화적인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쌍계사의 팔영루를 지나서 본당이 있는 마당에 들어서면 다른 사찰에는 보통 석탑이 가운데에 자리하는 경..

충주 청룡사 보각국사정혜원륭탑비(靑龍寺普覺國師定慧圓融塔碑,보물)

청룡사 옛터에 남아 있는 보각국사정혜원륭탑비입니다. 국보로 지정된 사리탑 뒷편에 있는 탑비로서 비석 자체는 장식이 없고 특별한 조형미는 없습니만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입니다. 탑비에 적힌 글씨가 매우 뛰어나고 그 비문을 조선초 공신인 권근이 지어서 탑비의 글씨와 내용에 가치를 두고 있는 듯 합니다. 충주 청룡사 보각국사정혜원륭탑 뒷편에 있는 탑비입니다. 그냥 보기에는 평범해 보여도 보물로 지정된 탑비입니다. 조선초 권신인 권근이 비문을 짓고, 승려 천택이 글씨를 썼다고 하는데 그 글씨체가 매우 뛰어나나고 합니다. 비문에 적힌 글씨체입니다. 아주 잘 쓴 것으로 느껴집니다. 다양한 방향에서 본 보각국사정혜원륭탑비입니다. 탑비 자체의 조형적인 특징은 별로 없어 보이는 것으로 봐서 역시 글씨에 의미를 두는 것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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