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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170

담양 유종헌가옥과 해곡리 마을, 송강 정철 처가인 문화 유씨 종가

담양군 창평면 해곡리 마을에 있는 문화 유씨 종가인 유종헌가옥이다. 조선중기 이전에 지어진 고택으로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치면서 원래의 모습에서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문간채를 들어서면 왼쪽에 사랑채와 안채가 나란히 있고, 오른편에 후대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자형 안채 주택과 사당이 들어서 있다. 이곳은 송강 정철의 처가집이었던 곳으로 이곳에서 혼인을 치루었다고 한다. 해곡리마을은 남쪽으로 영산강 지류인 창평천이 흐르고 마을 뒷편으로 창평과 담양을 경계짓는 산자락이 이어지는 배산임수의 입지를 잘 갖추고 있는 곳이다. 읍치인 창평 삼지천마을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체로 경제력을 갖추고 있었던 양반들이 살았던 마을로 보인다. 송강 정철의 처가가 있던 마을로 마을에선 그를 모시는 사..

고택_정원 2013.03.24

담양 김선기 가옥, 조선중기 건축양식이 남아 있는 한옥

전남 담양군 대덕면 장산리마을은 옛 담양과 창평의 경계가 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뒷쪽으로는 높지는 큰 산이 있고, 앞으로는 작은 하천과 비교적 풍족한 들판이 나즈막한 산이 있다. 읍치 관아가 있던 창평면 소재지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전형적인 조선시대 양반들의 세거지라 할 수 있는 곳이다. 마을에는 조선중기에 지어졌다고 하는 김선기 가옥과 선조대 문신으로 임진왜란 당시 상황를 기록으로 남긴 미암일기를 쓴 유희춘을 모신 사당이 있다. 조선시대 양반의 집터를 어떤곳에 집터를 잡는지를 잘 보여주는 담양 장산리마을 뒷편에 위치한 김선기 가옥이다. 이 가옥은 선조 36(1603)에 처음 지어졌으며, 그 이후 여러 차례 수리를 거쳤지만 비교적 원래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안채는 조..

고택_정원 2013.03.23

담양 몽한각, 제사를 준비하는 재실 건물

담양군 창평 삼지천 마을에서 동쪽으로 도로를 따라서 자동차로 10여분을 가면 대덕면소재지인 매산리마을이 있고, 마을 안쪽에는 구한말에 지어진 큰 재실건물인 몽한각을 볼 수 있다. 몽한각은 태종의 5대손으로 종종대에 이곳 창평으로 유배되었다가 이곳에 정착하여 살았던 인물인 이과를 위해 지어진 재실이다. 이과는 중종대에 창평에 정착했지만, 몽한각은 비교적 늦은 시기인 19세기초에 지어졌다. 건물은 앞면 5칸의 꽤 큰 규모의 건물이며, 재실 오른편에 앞면3칸 규모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을 두고 있다. 솟을대문과 기와를 얹은 돌담장으로 둘러싸인 몽한각은 마당이 꽤 넓은 것으로 볼 때 예전에 여러동의 건물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담양 몽한각, 전남 담양군 대덕면 매산리 이 건물은 이서 공의 재실이다. 이..

담양 창평 고정주 고택, 슬로시티 삼지천마을에 남아 있는 고택

창평은 조선시대 담양군 남쪽에 있던 고을로 창평천과 증암천 주위로 형성된 들판에서 나는 경제력과 무등산 북쪽 자락의 빼어난 경치로 인해 조선시대 양반들이 선호했던 세거지이다. 이 지역에는 소쇄원, 식영정, 환벽당 등 유명한 정자와 정원이 많이 남아 있으며, 송강 정철을 비롯하여 많은 인물들을 배출한 고장이다. 옛 창평현 관아가 있던 창평면소재지 삼지천 마을은 관아소속 아전들이 주로 거주하던 다른 지역과는 달리 큰 부를 이룬 지주나 양반들이 터를 잡고 있는 마을이다. 지금은 담양지역의 대표적인 전통마을로서 '슬로시티'로 인정받아 농촌체험을 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삼지천마을에는 지금도 여러동의 전통한옥이 남아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한옥인 춘강 고정주 고택이다. 이 가옥은 창평지역 근..

고택_정원 2013.03.20

서산 유상묵가옥, 여미리마을에 남은 일제강점기 한옥

충남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 마을에 있는 전통 한옥인 '서산 유상묵가옥'이다. 일제강점기에 지은 이 가옥은 서울 운현궁을 본떠서 지었다고 하며, 인근에 있는 유기방 가옥과 비슷하게 지어졌다. '-'자형으로 지어진 사랑채가 왼쪽에, 유기방가옥과는 달리 'ㄱ'자형을 지어진 안채는 오른쪽에 있다. 안채와 사랑채는 담장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출입문도 별도로 두고 있다. 유기방가옥과 마찬가지로 서까래에 기와를 얹은 토담이 'U'자형으로 가옥전체를 둘러싸고 있다. 이 가옥이 있는 서산 여미리마을은 서산에서 당진 합덕으로 연결되는 교통로 위치하고 있어 삼국시대 백제 고분이 출토되는 등 오랜 기간동안 사람들이 살아왔던 살기좋은 마을이다. 마을에는 조선 2대 정종의 아들인 신성군사당을 비롯하여 오래된 한옥, 비자나무.느티나..

고택_정원 2013.03.19

서산 유기방가옥, 충청 서해안 지역 전통한옥

충남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마을에 남아 있는 전통 한옥인 '서산 유기방가옥'이다. 이 가옥 소나무숲이 우거진 산을 배경으로 마을 들판이 내려다 보이는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가옥은 안채와 사랑채가 나란히 있는 형태이며, 앞쪽에는 원래 중문채가 있던 것을 최근에 솟을대문과 비슷하게 생긴 대문채로 바꾸었다. 앞면 6칸의 큰 건물로 '-'자형 주택을 하고 있는 안채는 부엌, 방, 대청마루,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채도 '-'자형 건물로 방과 대청마루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는 담을 쌓아 공간적으로 분리해 놓고 있으며, 작은 협문을 통해 출입하게 되어 있다. 'ㅁ'자형으로 안채가 폐쇄적인 공간구성을 하고, 사랑채는 바깥쪽으로 개방되어 있는 경북지역의 한옥과는 달리 '-'자형 구조와 넓은 마당을 ..

고택_정원 2013.03.17

담양 죽림재, 창녕조씨 집성촌인 분향리마을 문중에서 세운 마을 글방

담양 광주댐 아래 창녕조씨 집성촌인 분향리 마을 언덕에 위치한 죽림재는 문중에서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지은 곳으로 서원과 비슷한 성격을 하고 있다. 이곳은 원래 조선중기 문신인 조수문(1426~)이 후학 양성을 위해 작은 정자인 죽림재를 세운 이후에 크고 작은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서원과 비슷한 규모로 확장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마을 건너편에 조선중기 이지역을 대표하는 유학자였던 양자징 주돌 창평지역 25개 성씨가 후학을 양성하기 건립한 수남학구당의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죽림재가 있는 분향리 마을은 담양 일대에서 경치가 좋아 소쇄원, 식영정, 환벽당 등 양반들이 세운 크고 작은 정자들이 들어서 있는 가사문학의 산실 증암천이 골짜기를 빠져 나와서 들판과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죽림재 ..

장성 이진환 가옥과 백계리마을

장성군 장성읍 백계리에 남아 있는 전통주택인 이진환 가옥 사랑채이다. 이 가옥은 초가지붕을 얹은 주택으로 19세기 말부터 이집에서 사랑채로 사용해 왔던 건물이다. 원래 사당에 딸린 재실용 강당 건물으로 사용하던 것을 이 곳으로 옮겨 사랑채로 사용하고 있는 건물이다. 앞면 5칸의 꽤 큰 규모의 건물로 '-'자형 구조를 하고 있다. 오른쪽편에 안채였던 것으로 보이는 주택이 있는데, 현대식 기와를 얹기는 했지만 원래의 안채의 모습과 구조가 크게 바뀐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이 가옥이 소재한 장성 백계리 마을은 내장산과 입암산에서 발원하여 장선군을 지나서 영산강과 합류하는 황룡강변에 위치한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장성댐 바로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마을의 규모는 크지 않은편이 이 가옥을 제외하고는 오래된 고택이 ..

고택_정원 2013.03.03

서울 인사동길, 대표적인 서울의 전통문화 거리

서울 인사동길은 종로 탑골공원에서 시작하여 북촌입구에 해당하는 안국동 사거리까지 이어지는 길로 서울의 대표적인 전통문화 거리이다. 이 길은 조선시대부터 개천을 따라서 있었던 길이라고 하며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일제강점기에 골동품 상가가 형성되면서 한국적인 전통이 많이 남아 있는 거리로 많은 사람들에게 인식되어 있다. 인사동은 조선시대 서울의 공식 상업지구인 육의전이 있던 종로 북쪽편과 창덕궁 남쪽에 형성되어 있던 관아 서쪽편에 인접하고 있는 주택가 였던것으로 보인다. 일제강점기에 청계천 남쪽에 일본인들이 많이 살았던 반면에, 인사동 일대는 조선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핵심 주거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형성된 골통품 상가는 60년대에 전성기를 이루다가 70년대 이후에는 골통품 상가들은 ..

고택_정원 2013.02.28

서울 경운동 민병옥 가옥과 민영휘 일가 저택이 있었던 경인미술관

서울 경운동 천도교중앙대교당 앞에는 '민가다헌'이라고 적힌 한옥이 남아 있다. 지금은 식당으로 사용되고 있는 이 건물은 '경운동 민병옥 가옥'이란 이름으로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1930년대 지어진 개량한옥으로 H형 평면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 건축가인 박길룡이 설계한 건물로 안방을 비롯한 주요한 방들을 전면에 배치하여 채광과 전망을 좋게하였다. 전통한옥과는 달리 대청마루는 작게 하고, 별도의 방에 응접실을 설치한 개량한옥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주요 방들 앞 툇마루에는 유리창을 설치하여 보온과 채광을 고려하였으며, 현관과 출입문을 뒷편에 배치해 놓고 있다. 이 가옥을 설계한 박길용은 일제강점기에 화신백화점 등 많은 건축물들을 설계했던 건축가로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 개량한옥으로서 의미를 ..

고택_정원 2013.02.20

청주동헌, 조선시대 청주목사가 근무했던 관아 건물

청주목은 삼국시대 서원경이 설치되었던 청주지역에 설치된 지방행정기구로 고려가 국가의 형태를 제대로 갖추기 시작한 광종대에 전국에 12개 목(牧) 중 갑오개혁으로 전국의 행정체제가 개편되기까지 유지되어 왔다. 청주에는 병자호란 이후 해미읍에 있던 충청병영이 옮겨와 상당산성을 중심으로 내륙의 군사적 거점이 되어왔다. 청주 구도심으로 대부분의 행정기관이 모여있는 상당구 남문로에는 객사가 있었던 중앙공원을 중심으로 조선시대 관아 건물들 중 일부가 남아 있다. 중앙공원 뒷편에는 원래 충주목 관아 동헌이 있었던 자리에는 지금은 청원군청이 소재하고 있고, 그 사이에는 KT지사가 들어서 있는데, 대체로 충주목과 충청병영에 속했던 많은 관아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청원군청 본관 뒷편에 남아 있는 청주동..

조선 관아 2012.12.02

안동 하회마을, 작천고택과 주변 한옥들

하회마을 서쪽끝 낙동강 물길이 서쪽으로 흐르다 굽이쳐 다시 동쪽으로 흐르는 곳에 위치한 마을 종갓집인 양진당과 충효당을 지나서 골목길을 들어서면 첫번째로 보이는 집이 작천고택이다. '-'자형 안채와 초가로 지은 작은 별채로 구성된 작천고택은 규모가 그리 큰 편은 아니지만 종갓집과 가까운 것으로 볼 때 마을에서도 권위가 있었던 집이 아닌가 생각된다. 작천고택을 지나 골목길을 따라서 걸으면, 하회마을에서 최근 유명인사로 잘 알려진 연예인 류시원이 살았던 고택인 담연재가 있다. 아직 일반인에 개방되지 않았지만 이 마을을 방문한 엘리자베스여왕도 들렀던 집으로 꽤 유명세가 있는 저택이다. 담연재 주변으로도 여러채의 고풍스러운 한옥들이 있는데, 다른 고택들과는 달리 안동지역의 전통한옥 형태인 'ㅁ'자형 주택구조에서..

고택_정원 2012.11.12

서울 성북동 성밖마을과 성북동길 걷기

서울 성북동은 조선시대 창덕궁을 중심으로 한 동궐영역 뒷편 한양도성 성밖에 형성된 마을로 북한산 자락과 북악산, 한양도성 사이의 계곡에 위치하고 있다. 한양도성의 대표적인 성밖마을로 조선시대에는 도성 수비를 담당했던 여영청 군사들이 주둔하던 곳으로 지금도 서울을 지키는 군인들이 북악산자락에 주둔하고 있기도 하다. 조선시대에는 한성부 소속이었다가 일제강점기에는 고양군 성북리로 되었다가 다시 성북동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이전에도 마을이 있었다고는 하나, 현재의 성북동은 일제강점기에 서울이 확장되고, 서울 성곽이 허물어지면서 성벽 너머에 자연스럽게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성북동은 서울 도심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일제강점기에 지은 도시형한옥이 많이 남아 있으며, 또한 당시로서는 외곽지역에 ..

고택_정원 2012.11.11

안동 하회마을 충효당(보물414호), 마을을 대표하는 서애 류성룡 종택

안동 하회 충효당은 마을 종택인 양진당(보물 306호)과 함께 하회마을을 대표하는 고택으로 보물 414호로 지정된 문화재이기도 하다. 이 집은 조선중기 문신으로 충무공 이순신과 함께 함께 임진왜란을 극복하는데 큰 공을 세웠던 서애 류성룡이 종택에서 분가하면서 지었던 집터에 후손들이 세운 작은 종택이라 할 수 있다. 원래는 작은 초가집이었다고 하는데 그의 손자인 류원지가 사랑채와 안채를 짓고, 증손자인 류의하가 17세기에 크게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충효당은 전체적으로 낙동강이 바라보이는 서쪽을 향하고 있다. 안채는 북쪽에, 사랑채는 남쪽에 나란히 배치되어 있으며 앞쪽에는 12칸의 긴 행랑채를 두고 있고, 사랑채 뒷쪽에 불천위 조상을 모시는 사당과 서애 류성룡의 유품을 전시하는 최근에 지은 영모각이..

고택_정원 2012.11.11

서울 혜화동 장면가옥, 한옥과 양옥이 절충된 1930년대 개량한옥인 제2공화국 장면 총리의 사저

젊음의 거리 대학로와 성균관이 있는 명륜동 주택가 남아 있는 일제강점기 개량 한옥인 장면가옥이다. 이 가옥은 4.19혁명 이후 제2공화국 내각 수장인 국무총리를 역임한 장면선생이 살았던 가옥으로 일제강점기인 1937년에 지은 주택으로 기존 한옥건물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욕실과 화장실을 실내에 배치하고 전통한옥의 대청마루가 거실 형태로 바뀌는 등 양옥의 형식이 반영된 1930년대 개량한옥의 전형을 보여주는 가옥이다. 가옥은 살림집이라 할 수 있는 안채와 양옥으로 지어진 손님을 맞는 공간인 사랑채, 수행원과 경호원이 머무는 2동의 작은 부속채로 이루어졌다. 대문입구에 골목에서 안채를 볼 수 없도록 담장을 설치하고, 별도의 출입문으로 사랑채를 출입하게 만들어 놓고 있는 점에서 양옥이지만 기존 한옥의 기능적 특징..

고택_정원 2012.11.08

안동 하회마을 북촌댁(화경당)과 주변 한옥, 마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대저택

하회마을 북촌댁은 양진당이나 충효당처럼 마을에서 종갓집에 해당되지는 않지만 마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저택으로 원래 이름은 화경당이나 마을 북촌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고, 가장 큰 규모라서 북촌댁이라 부른다. 대지 1,700여평에 72칸에 이르는 대저택인 북촌댁은 정조대인 1797년에 류사춘이 사랑채, 날개채, 대문채를 짓고, 철종대에 증손이 류도성이 안채, 큰 사랑채, 사당을 지었다고 한다. 마을 중심에 있는 삼신당 느티나무 바로 옆에 자리잡고 있으며, 북쪽으로 하회마을을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과 부용대가 내려다 보이는 풍광이 아름다운 곳에 자리잡고 있는 저택이다. 마을에서 북쪽택부터 안쪽 충효당까지는 종택이라고 할 수 있는 양진당과 서애 류성룡이 분가한 충효당을 비롯하여 하회마을에서 큰 벼슬을 하..

고택_정원 2012.11.06

순천 낙안읍성, 동문 주변의 민가들

순천 낙안읍성은 조선시대 낙안군 관아 소재지에 쌓은 읍성으로 조선초기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쌓은 전국의 여러 읍성들 중 그 원형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곳이다. 교통과 행정 중심지였던 낙안군이 일제강점기 경전선 철도개설로 철도역이 개설된 벌교읍으로 그 기능이 급격하게 이전됨으로서 원래 있었던 읍성마을 근대화 과정에 소외되어 옛모습을 오늘날까지 보존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읍성내에는 약 90여호의 가옥에 실제 주민들이 옛 초가집들을 보존하면서 살고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낙안읍성 주변 도로가 동문 주변으로 개설되어 지금은 읍성의 정문처럼 사용하고 있는 동문 주변은 낙안읍성을 찾는 사람들이 처음 보게 되는 시골마을의 모습일 것이다. 읍성 동문 앞에 서면 오른쪽으로 식당 등으로..

고택_정원 2012.11.05

안동 하회마을 양오당(주일재)과 가온당, 분가한 후손들이 지은 양반 가옥

안동 하회마을은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마을로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낙동강이 'S'자형으로 굽이쳐 흐르는 끝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전통마을로 서애 류성룡으로 대표되는 풍산류씨가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는 마을로 후대에 고관을 많이 배출하여 경제적으로 부를 많이 축적한 양반마을이라고 할 수 있다. 하회마을은 서애 류성룡의 형으로 대학자였던 류운룡의 종택이자 종가집인 양진당을 중심으로 후손들이 분가하면서 크고 작은 저택들이 들어서 있다. 대체로 후대로 가면서 분가한 저택일수록 양진당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하외마을 종가집인 양진당에서 분가한 대표적인 저택인 서애 류성룡 종택인 충효당 뒷편으로는 그의 증손인 류인하가 분가한 집인 양오당이 있다. 주일재라고도 불리는 이 가옥은 후대에 분..

고택_정원 2012.11.05

서울 성북동 최순우 옛집, 일제강점기 도시한옥의 모습이 남아 있는 미술사학자 최순우가 살던 집

서울 성북동 선잠단 맞은편 주택가에 남아 있는 최순우 옛집은 중앙박물관장을 지낸 미술사학자 혜곡 최순우가 살던 집이다.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서울에서 크게 유행한 도시한옥의 형태를 하고 있는 집으로 'ㄱ'자형 본채와 'ㄴ'자형 바깥채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체적으로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본채는 사랑방이 앞면 4칸의 본채와 대청마루와 방이 있는 3칸짜리 날개채로 되어 있고, 바깥채는 대문과 문간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집은 2002년 한국 내셔널트러스트에서 성금으로 매입하여 운영관리하고 있는 대표적인 문화재로 일제강점기 한옥을 대표하는 의미로 등록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다. 혜곡 최순우(1916~1984)는 개성시립박물관에 입사한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내기도 하는 등 평생을 박물관에 재직하면서 ..

고택_정원 2012.11.02

안동 하회마을, 하동고택과 염행당

안동 하회마을은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마을로 경주 양동마을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마을이다. 조선초기 풍산류씨가 정착한 이후 서애 류성룡을 비롯하여 많은 문신들과 학자들을 배출한 전통있는 마을로 이중환의 택리지에 영남 4대길지로 손꼽히는 마을이다. 하회마을은 옛모습이 남아 있는 전통마을이지만 실제로는 일반 농민들이 살았던 마을이라고 할 수는 없고 정부 고위관료들을 많이 배출하고 많은 농지와 노비를 소유했던 조선시대 지배계층인 양반계층을 대표하는 마을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을에는 보물로 지정된 충효당과 양진당을 비롯하여 가장 큰 규모의 저택인 북촌댁 등 풍산류씨 일가에서 성공한 후손들이 분가하여 지은 크고 작은 기와집들이 많이 남아 있고, 초가집들도 많이 볼 수 있는데 상당부분은 규모가 크고..

고택_정원 2012.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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