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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읍성 8

[서산 해미읍성] 호서좌영 객사

서산 해미읍성은 충남 서해안 지역의 왜구의 침입에 대처하기 위해 새운 읍성으로, 조선 전기까지는 충청병마도절제사가 머무르던 곳이며 왜구의 침입이 없어진 조선 후기에는 해미현 관아가 옮겨왔다고 한다. 해미읍성 관아 건물로는 객사, 동헌, 내아를 볼 수 있는데 원래부터 있었던 건물은 아니고, 건물터에 현재의 건물을 복원했다고 한다. 읍성내에 있는 작은 동산 아래에 관아 건물들이 모여 있다. 해미읍성 북쪽편 동산 아래에 객사를 비롯한 관아 건물들이 모여있다. 해미읍성 객사. 복원된 건물로 문화재적인 가치는 없으나, 옛날 관청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해미읍성 객사는 앞면이 5칸이나 되는 건물로, 도절제사가 머물렀던 관청 건물답게 다른 지역의 객사보다 크다. 객사 양쪽 날개부분에는..

조선 관아 2010.09.21

[서산 해미읍성] 호서좌영 동헌, 해미 현감겸영장이 근무하던 곳

해미읍성은 조선초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쌓은 읍성으로 조선후기 충청병마절제사가 청주로 이전하기 전까지 주둔했던 병영이었다. 이후에는 해미 현감겸영장이 근무한던 곳이다. 읍성내부에는 병마절제사가 근무했던 격에 맞추어 규모가 큰 동헌, 객사 등 관아 건물이 있었다. 지금의 동헌의 원래의 건물터에 새롭게 복원한 건물들이다. 충청좌영이란 편액이 걸린 동헌 출입문. 절제사가 근무하던 기준에 따라 동헌입구에 삼문과 누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른 지역의 동헌에는 없고, 관찰사나 절제사 등이 근무하던 지역의 동헌에만 이런 출입문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호서좌영 동헌. 이 동헌은 병마절도사를 비롯한 현감겸영장의 집무실로서 관할지역의 일반 행정업무와 재판 등이 행해지던 건물이다. 해미 현감겸영장은 인근 12개 ..

조선 관아 2010.09.21

[서산 해미읍성] 내아(內衙), 해미 현감겸영장이 거주하던 관사

해미읍성 동헌 서쪽편, 객사 뒷쪽에는 해미 현감겸영장 가족들이 생활하던 관사 건물인 내아가 있다. 발굴조사와 고증을 거쳐 2000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고 한다. 문화재적인 가치보다는 조선시대 관청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데 의의가 있는 건물이다. 전면5칸의 일자형 주택으로 부엌과 3개의 방, 사랑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도절제사라는 높은 지위에 비해서 관사 건물은 소박하고 단촐하게 지었다. 해미 현감겸영장 숙소인 내아. 동헌에서 내아로 들어오는 출입문. 작지만 솟을대문으로 해 놓고 있다. 내아는 동헌보아 아래쪽에 있어 계단으로 내려온다. 내아 출입문에서 본 모습 부엌 내아 건물에는 3개의 방이 있고, 대청마루는 없는 반면 사랑방이 옆으로 있다. 내아 부속건물로 유일하게 창고가 있다. 부지 면적..

조선 관아 2010.09.21

[서산 해미읍성] 옥사와 회화나무, 천주교 박해의 현장

해미읍성 정문인 진남문에서 동헌으로 들어가는 길 중간에 우뚝 서 있는 회화나무를 볼 수 있고, 그 뒤로 옥사가 있다. 이 곳 해미읍성은 구한말 천주교 박해의 현장으로 교인들을 고문했던 흔적이 회화나무에 남아 있고, 당시 옥사터에 옥사를 복원해 놓고 있다. 옥사는 내옥, 외옥 2개의 건물로 남.녀를 구분하여 수용하였다고 한다. 옥사 마당에는 곤장이 준비되어 있어 방문하는 사람에게 재미있는 체험을 할 수 있게 해준다. 해미읍성 진남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동헌 정문이 보이고, 길 왼쪽에는 천주교 박해와 관련이 있는 회화나무가 서 있다. 해미읍성 회화나무 해미읍성 서쪽편 옥사 건물, 남.녀를 구분해서 수용하고 있다. 해미읍성 동쪽편 옥사 옥사내부. 해미읍성 옥사 마당에 곤장이 있다. 해미읍성은 우리나라 천주와 깊..

조선 관아 2010.09.21

[서산 해미읍성] 읍성내 민가 가옥들

순천 낙안읍성과는 달리 해미읍성내에는 주민들이 살지 않는 텅빈 공간이다. 지금 읍성내에는 관청건물과 서산지역의 민가들을 재현해 놓고 있다. 서산지역 민가들은 대부분 ㅡ자형 주택을 하고 있으며, 이 곳을 방문한 사람들이 쉬어 갈 수 있거나, 다양한 체험을 제공하고 있다. 해미읍성 동헌 앞쪽에 재현해 놓은 서산지역 초가 주택들 시골마을 돌담길 부농의 ㄱ자형 주택. 조선시대 민가로 부농의 집을 재현하였다. 전형적인 서산지역의 민가로서 대청이 없는 것이 특징인데, 이런 ㄱ자형의 가옥은 ㅡ자형 가옥의 기본평면에서 발전된 것으로, 부억 1칸, 방 1칸의 기본적인 생활공간의 형태로 필요에 따라 칸이 덧붙여져 확대된 것이다. 이 가옥은 부유한 농가로 각종 농기구와 농산물을 저장하기 위한 창고와 부속채가 딸려 있는데 부..

고택_정원 2010.09.11

[서산 해미읍성] 돈대와 성벽

해미읍성은 순천의 낙안읍성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읍성이다. 해미읍성과 낙안읍성은 그 구조와 성을 쌓은 목적이 매우 유사하며, 해안에서 들어오는 왜구의 기습에 대비한 모습을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우리나라 읍성은 대규모로 침입하는 적들에 대항하여 오랜 기간 농성을 할 수 없는 구조이며, 왜구와 같이 노략질을 목적으로 기습적으로 들어오는 적에 대항하여 2~3일 정도 농성할 수 있는 규모이다. 그래서 해미읍성은 성벽의 높이가 높지 않고, 조총이 없던 시절에 활용한 성으로 성벽위와 돈대에 흉벽을 설치하지 않고 있다. 물론 국가적인 반란의 거점이 될 수 없도록 주위에 해자도 설치하지 않고 있다. 해미읍성에는 돈대가 2곳 설치되어 있는데 서해안 바닷가를 향한 남서쪽 방향에만 2개의 돈대가 설치되어 있다. ..

[서산 해미읍성] 복원된 성문인 동문, 서문

해미읍성이 60년대에 정비될때 복원된 성문인 동문과 서문이다. 오래전에 복원되서 그런지 고증을 거치지 않고 현대적인 석재로 복원해서 성문의 옛스러움이 없어 보인다. 서문에는 지성루(枳城樓)라는 명칭이 붙어 있는데 아마도 해미읍성 성벽 바깥쪽에 탱자나무를 심어서 성곽방어에 이용했다는데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성루에는 흉벽 등의 방어시설은 없고 단순히 적의 침입을 감시하는 돈대로서의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해미읍성 서문. 복원된 부분이 주위의 성벽과 잘 어울리지 않는 현대적인 석자재를 사용했다. '지성루(枳城樓)'라고 적힌 서문 성루 편액, 탱자를 성벽밖에 심었다는 유래와 관련된 명칭으로 보인다. 해미읍성 내부에서 본 서문. 지금은 서문을 통해서 해미읍성 외부를 출입할 수 있다. 해미읍성 성벽에서 본 ..

[서산 해미읍성] 진남문(鎭南門), 읍성의 정문

서산 해미읍성의 정문인 진남문(鎭南門)이다. 60년대 해미읍성이 복원될때 남아있던 유일한 성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해미읍성은 뒤로는 수덕사, 개심사 등이 있는 가야산 산자락이 있고, 앞으로는 서산지역의 넓은 평야가 펼쳐진 곳으로, 조선시대까지 연안 해상 교통의 중심인 태안반도를 관장하던 군사적 중심지였다. 해미읍성은 평지에 쌓은 전형적인 읍성으로 만주지역으로 부터 들어오는 북방기마부대를 중심으로한 대규모 군사의 침입에 대비한 방어시설은 아니고, 고려시대에서 조선중기까지 우리나라를 괴롭혔던 왜구의 침입에 대응하기 위해 쌓은 읍성이다. 그래서인지 성문에는 옹성이 없는 단순한 모습을 하고 있다. 서산 해미읍성의 정문인 진남문. 단순히 왜구의 기습에 대비하기 위해서 지은 읍성이기 때문에 옹성이 없고, 성문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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