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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사지 8

[경주박물관 미술관] 황룡사지 출토 기와와 전

황룡사는 신라 칠처가람의 하나로 규모나 위상에 있어서 신라 최고의 사찰이었다. 황룡사는 진흥황 14년(553)에 월성 동쪽 지금의 구황동에 짓기 시작하여 17년만에 완성한 사찰이다. 현재 남아 있는 절터의 면적은 약 2만5ㅍ천여평에 달하며, 절터에는 당시 건물이 들어섰던 초석이나 불상이 있었던 석불대좌 등이 잘 남아 있는 편이다. 사찰의 가람배치는 중문, 탑, 금당, 강당이 일열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는 1탑 1금당의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황룡사에는 신라 삼보 중 장륙존상과 경주의 랜드마크가 되었던 구층목탑이 있었고, 화가 솔거가 그린 금당벽화도 있었다. 또한 원효대사가 이 곳 황룡사 강당에서 강론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신라 진흥왕때 처음 세워진 황룡사는 신라가 멸망한 이후에도 고려 고종 23년(129..

지역박물관 2011.11.08

경주 황룡사지, 찬란한 통일 신라 문화를 과시했던 흔적

신라의 수도 경주에는 많은 화려한 당시의 유적지와 유물들이 남아 있지만 많은 것들은 지금은 사라져 버리고 없다. 사라진 많은 것들 중에서도 가장 아쉬운 부분이 경주에 황룡사가 아직도 남아 있었더라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현재 기준으로도 20층 가까운 높이의 황룡사 구층목탑은 몽고의 침입으로 불타서 없어져 버리지기 전까지는 수 많은 사람들에게 경이로움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당시 황룡사 금당이라던가 목탑의 형태는 지금도 일본 나라의 사찰들에 그 형태가 남아 있는 것 같아서 그 사찰의 모습으로 당시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황룡사를 보면서 당시 사람들은 고대 사람들이 피라미드나 바빌로니아의 하늘 정원 등을 보았을 때의 느낌과 비슷할 것으로 생각된다. 1. 황룡사 중문, 남문, 회랑 터 백제 ..

절터 2010.10.05

[경주 황룡사지] 금당터, 신라 보물 장류존상과 솔거의 그림이 있었던 곳

황룡사는 원래 구층석탑 뒷편으로 금당이 하나만 있었던 일탑식 가람배치였으나, 확장되면서 금당 좌우에 비슷한 규모의 금당이 들어서는 독특한 구조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황룡사 금당에는 신라 3대 보물중 하나인 장륙존상과 솔거의 그림이 걸려 있었던 곳이라고 합니다. 일본 나라의 동대사 본당과 비슷한 형태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황룡사 구층목탑 뒷편에는 본당이라고 할 수 있는 금당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금당에는 거대한 불상인 장륙존상과 솔거의 그림이 있었다고 합니다. 황룡사 목탑터에서 본 금당터입니다. 황룡사 금당터 중앙에는 세개은 커다란 석재 받침대가 있는데 이 것이 거대한 장륙존상을 비롯한 삼존불상을 받쳤던 받침돌이라고 추정되는 것 같습니다. 황룡사 금당의 기둥을 지지해 주던 주춧돌입니다. 황룡사 강당터에서..

절터 2010.10.01

경주 황룡사지 구층목탑 터, 신라 제일의 보물이 있었던 자리

신라 제일의 보물이었던 황룡사 구층목탑이 있었던 자리입니다. 경주 중심가 한 가운데 자리하고 있으면서 천년 가까이 이정표 역할을 했던 거대한 목탑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경주를 처음 방문한 사람이 황룡사 구층목탑을 처음 봤을 때 감동은 우리가 파리에 갔을 때 에펠탑은 보고 느끼는 감동보다 훨씬 웅장한 감동을 느꼇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고대 사람들이 피라미드나 바빌로니아의 하늘 정원 등을 보았을 때의 느낌과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도 이 자리에 목탑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황룡사를 보면 비슷한 시기에 지은 일본의 사찰인 나라의 동대사와 비슷한 느낌입니다. 선덕여왕때 완공된 이후 몽골에 의해 불타버리기까지 천년 가까운 세월동안 경주의 이정표가 되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감..

절터 2010.10.01

[경주 황룡사지] 강당터, 우물

경주 황룡사지에서 제일 뒷쪽편에 있는 강당입니다. 신라 평지 사찰의 특징으로 강당이 본당인 금당 뒷편에 자리잡고 있다는 점입니다. 현재의 사찰에서 강당은 본당이 있는 경내 입구에 누각의 형태로 존재하는 경우와 많이 다른 점입니다. 황룡사 강당에서는 원효대사 등 당대의 유명한 승려들이 설법의 강의했던 역사적 의미가 큰 장소이기도 합니다. 강당 뒷편에는 복원한 황룡사 우물이 있고, 그 외에 여러 건물터가 많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강당 뒷편으로는 분황사로 연결되는 길이 있습니다. 황룡사 가람 중에 제일 뒷편에 있는 강당과 그 양쪽의 부속건물입니다. 황룡사지 금당터 뒷편에 자리한 강당터입니다. 황룡사지 강당 좌우에 있던 건물터입니다. 황룡사지 강당의 주춧돌입니다. 황룡사지 동쪽편 회랑터입니다. 황룡사지 강..

절터 2010.10.01

[경주 황룡사지] 중문, 남문, 회랑 터

백제 미륵사지와 함께 신라를 상징하는 거대한 사찰인 황룡사지 출입문인 남문과 중문터입니다. 황룡사의 규모에 걸맞게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주춧돌만 남아서 황량한 옛 도읍의 의미를 던져 주고 있는 곳입니다. 황룡사 모형을 보면 황룡사는 전체가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고 남문을 통해서 출입하면 회랑으로 둘러싸인 황룡사 경내를 들어가는 출입문인 중문이 있고 중문을 들어서면 황룡사의 상징인 거대한 목탑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평지사찰인 황룡사는 산중에 위치하고 있는 현재의 사찰들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고, 하나의 궁궐을 연상시키는 구조를 하고 있습니다. 경주박물관에 전시된 황룡사지 중문 모형입니다. 이층 누각이 있는 정문인 중문 좌우로는 회랑이 있고 중문을 들어서면 황룡사목탑을 볼 수 있습니다. ..

절터 2010.10.01

국립 경주박물관 미술관 황룡사실 - 금동약사불, 황룡사지 출토유물

국립 경주박물관 황룡사실에는 황룡사지에서 출토된 많은 유물들이 있다. 황룡사가 오랜 기간 동안 존속해 왔던 대규모 사찰이었던 까닭에 불상, 생활용품, 염주 등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황룡사지 목탑터에서 발굴된 금동약사여래불 입상. 많이 발굴되고 현존하는 약사여래불 입상과는 약간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삼국시대에 제작된 불상이라 한다. 금당터와 강당터, 회랑터, 목탑터 등지에서 모두 9점의 작은 금동불상이 출토되었다. 목탑터 동쪽에서 발견된 금동약사불입상은 화재를 입었는지 표면의 도금층이 벗겨지고 목 부분도 일부 파손되어 고개가 약간 뒤로 젖혀진 상태이다.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법의法衣를 입고 오른손에 약단지를 들고 있는 이 불상은 삼국시대에 제작된 것이다. 원래는 발과 대좌가 없는 모습으로 발견되..

지역박물관 2009.07.19

국립 경주박물관 미술관 황룡사실 - 치미, 기와, 수막새, 암막새

국립 경주박물관에 전시된 황룡사지에서 출토된 유물들 중 기와와 같은 건축자재들이다. 황룡사의 규모를 느끼게 해 주고 있는 유물들로 바닥에 깔았던 용무늬전, 장식용 기와인 치미 등이 있는데 각각에 다양한 무늬로 장식해 놓고 있다. 잘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후대에 만들어진 궁궐 등의 건축물에 비해서 상당히 화려했었다는 느낌을 많이 갖게 한다. 황룡사지에서 발굴된 치미. 치미는 건물의 양끝을 세운 장식용 기와인데 통일신라 이후의 건물에는 치미가 있는 건물이 거의 없고 지금은 일본 나라의 동대사 같은 큰 사찰에서 볼 수 있는 구조이다. 상당히 화려하며, 외부에 금박 같은 것으로 화려하게 장식하는 것 같다. 치미는 궁궐이나 절의 용마루 양끝에 세운 장식용 기와이다. 치미를 놓으면 건물이 더 높아 보이기 때문에 ..

지역박물관 2009.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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