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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_향교_사당

[성균관] 전사청과 수복청, 제사를 준비하는 공간

younghwan 2012. 11. 13.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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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균관은 조선시대 최고의 고등교육기관으로 유생들이 강당인 명륜당을 중심으로 기숙사인 동.서재에 숙식하면서 공부하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공자와 선현들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을 중심으로 제사를 올리는 제향공간으로서의 역활도 아주 중요했다. 이는 지방의 중등교육기관인 향교나 사설교유기관 역할을 했던 서원도 비슷한 역할을 가지고 있다. 이런 의미로 성균관의 원래 명칭은 공자를 모신 사당이라는 뜻으로 문묘(文廟)라 한다. 성균관은 제사를 올리는 제향공간이 앞쪽에 있고, 유생들이 공부하던 강학공간이 뒷쪽에 위치한 전묘후학의 공간배치를 하고 있다.

 지방의 향교나 서원도 성균관과 비슷한 공간배치를 하고 있지만, 중앙정부에서 운영했던 문묘답게 사당을 관리하고 제사를 준비하던 공간이 대성전 서쪽편에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이는 향교나 서원에서 볼 수 없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성균관에서 대성전을 관리하고 제사를 준비하는 건물로는 전사청, 수복청, 제기고가 있다. 전사청은 1년에 2번 제사를 올리는 석전을 준비하는 공간이며, 수복청은 대성전을 관리하는 노비들이 숙식하는 공간이고, 제기고는 제사에 필요한 제기들을 보관하는 창고있다. 전사청이나 수복청같은 시설들은 일반 향교나 서원에서도 있지만, 대체로 유생들이 숙식을 제공 역할과 겸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전사청(典祀廳), 석전 때에 희생(犧牲)을 준비하던 곳으로서 성종 3년(1472)에 대사성(大司成) 이극기(李克基) 등의 요청에 의하여 대성전 서쪽에 동향, 6간(間) 규모로 건립되었다. 희생은 제사에 잡아올리는 산짐승 일컫는 말로 아마도 희생을 준비할 공간으로 창고와 비슷한 형태로 지은 것으로 보인다. 


전사청 옆에 있는 작은 건물


전사청 남쪽편으로는 대성전을 관리하는 임무를 맡은 노비들이 숙식하는 공간인 수복청과 제기를 보관하는 창고인 제기고가 있다. 노비들이 머무는 공간기는 하지만 대성전 관리라는 중요한 임무를 맡아서 그런지, 양반가옥이나 중앙부서 관아와 비슷한 규모의 건물이다.


수복청(守僕廳), 문묘(文廟)를 관리하던 남자 종(從)들이 거처하던 곳으로서 대성전의 서쪽 담장 밖에 남향, 4간(間)규모로 건립되었다. 태조 7년(1398)에 대성전과 동시에 건립되었으나, 선조 25년(1592)에 왜란(倭亂)으로 소실되었다가 선조 34년(1601)에 중건되었다. 대학당(戴學堂)이라는 현판 걸려 있으며, 크지는 않은나 규모가 있고 단정해 보이는 건물이다.


수복청 한쪽편에는 작은 부엌을 두고 있다.


수복청 뒷마당. 2칸은 아궁이 시설이 있는 온돌방이고 2칸은 마루방인것으로 보인다.


수복청 맞은편에 있는 제기고(祭器庫), 각종 제사에 사용되는 제기를 보관하던 곳으로 태조 7년(1398)에 대성전과 동시에 건립되었으며, 대성전 서쪽에 북향, 6간규모의 창고 건물이다.


제기고 문짝. 기둥에는 용도별로 구분하기 위해 글씨를 적어 걸어놓고 있다.


문묘(文廟) 대성전을 관리하는 노비들이 머무는 공간인 수복청 마당. 마당에는 오래된 향나무가 자라고 있고, 주변에 수목이 우거지다.


수복청 마당에 심어진 수령이 수백년된 것으로 보이는 향나무


대성전 마당에서 전사청과 수복청으로 들어가는 작은 출입문


바깥쪽에서 본 수복청과 제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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