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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탑 86

통일신라 오층석탑, 신라 석탑의 특징이 반영된 오층석탑

오층석탑은 백제가 중국 남조의 목탑 양식을 화강암 석재를 이용하여 쌓은 형태이다. 6세기 말 백제가 부여로 도읍을 옮기면서 쌓은 정림사지 오층석탑(국보)이 가장 오래된 오층석탑이다. 탑은 1층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쌓았는데 목탑과 비슷한 조형미를 보여주고 있다. 초기에는 석재를 목재처럼 가공하면서 세부적으로 구성을 간략하게 하면서 독창적인 조형미를 보여준다. 통일신라에서는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국보)이 가장 오래된 오층석탑이다. 이후 백제 석탑의 특징과 신라 모전석탑의 특징을 갖이 보여주고 있다. 이후 통일신라 삼층석탑의 양식이 완성되면서 그 특징을 적용한 오층석탑이 조성되었다. 통일신라에서는 삼층석탑이 주를 이루지만 신라 석탑의 특징을 반영한 오층석탑도 같이 조성되었다. 경주 나원리 오층석탑(국보)..

경주 용장사곡 삼층석탑(보물 186호)

경주 남산 용장사 옛 절터에 있는 삼층석탑(보물 186호)이다. 바위를 1층 기단으로 삼고 그 위에 2층기단과 탑신을 올려놓고 있다. 통일신라 후기 정형화된 삼층석탑 형태를 하고 있는데, 주위 경치와 함께 아름다운 조형미를 만들고 있다. 절터에 쓰러져 있던 것을 일제강점기에 다시 세웠다고 한다. 용장사는 금오산 정상부 서쪽 용장사 계곡 정상에 자리잡고 있었다. 사찰 규모는 크지 않은 편이며, 절터에는 삼층석탑으로 비롯하여 석조여래좌상, 마애여래좌상이 남아 있다. 조선초 천재이자 생육신 중 한명인 김시습이 머물면서 『금오신화』를 저술한 장소로 잘 알려져 있다. 경주 용장사 계곡 정상부에 남아 있는 삼층석탑(보물 186호). 경주 남산을 대표하는 명장면으로 주변 경치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조형미를 만들어 내고..

경주 남사리 삼층석탑(보물 907호)

경주 현곡면 남사리 마을 뒷편 절터에 있는 통일신라 삼층석탑이다. 2층 기단위에 3층 탑신을 올려 놓고 있으며, 기단과 탑신 몸돌에 기둥모양을 새겨 놓은 것 외에는 특별한 장식을 하고 있지 않다. 전체적인 비례에서 보여주는 조형미나 세부 조각수법은 양호한 편이며, 정형화된 통일신라 삼층석탑의 형태를 하고 있다. 절터에는 삼층석탑 외에 특별한 유물이나 건물터 흔적은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기록에도 남아 있지 않다. 통일신라 왕경이었던 경주 교외에 조성된 귀족들의 원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경주시 현곡면 남사리 절터에 남아 있는 삼층석탑. 불국사 삼층석탑과 비슷한 외형을 하고 있는 정형화된 통일신라 후기에 조성된 삼층석탑이다. 삼층석탑 기단부. 기둥모양을 새겨 놓은 것 외 특별한 장식이 없다. 3층으로 된 ..

경주 용명리 삼층석탑(보물 908호)

경주 용명리마을 절터에 남아 있는 삼층석탑(보물 908호)이다.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려 놓았다. 기단과 탑신 몸돌에 기둥모양을 새겨놓은 것 외 특별한 장식이 없는 정형화된 통일신라 삼층석탑 양식을 하고 있다. 전체적인 구성이나 비례와 조각수법 등은 양호한 편이다. 절터에는 삼층석탑 외 특별한 흔적은 남아 있지 않고 주변에는 민가들이 흩어져 있어 옛 사찰의 규모를 짐작할 수 없다. 이곳에 용명사(龍明寺)라는 절이 있었다고 하나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사찰의 내력에 대한 기록도 없는 듯 하다. 경주 용명리 삼층석탑(보물 908호). 2층 기단에 3층 탑신을 올려놓은 전형적인 통일신라 삼층석탑이다. 조가수법이나 전체적인 조형미는 양호한 편이다. 석탑 기단부.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모양을 새겨놓고 ..

함양 승안사지 삼층석탑 (보물 294호)

경남 함양군 승안사 절터에 있는 고려시대 삼층석탑이다.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려 놓고 있다. 기단에는 부처, 보살, 비천 등의 모습을, 탑신 1층 몸돌에는 사천왕상을 새겨놓은 통일신라말 석탑 양식을 따르고 있다. 머리장식으로 받침과 복발, 연꽃모양장식이 남아 있다. 기단과 탑신의 비례에서 보이는 조형미가 비해 떨어지는 편이며, 고려전기 특색을 보여주는 장식들이 여러곳 있다. 승안사(昇安寺)는 함양군 수동면 남계서원 북쪽에 승안산 기슭에 있던 사찰로 조선초 사찰이 있었다는 사실 외에 다른 기록이 없다. 조선중기 이후에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함양 승안사지 삼층석탑. 기단과 탑신 1층 몸돌에 부조를 새겨 놓은 통일신라 말 삼층석탑 양식을 따르고 있는 고려시대 석탑이다. 기단부에는 부처, 보살, 비천..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 (보물 247호), 전형적인 통일신라 삼층석탑

대구 동화사 부속 암자인 비로암 대적광전 앞에 세워진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삼층석탑이다. 1층 몸돌에선 돌로 만들어진 사리그릇이 발견되었는데, 통일신라 민애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탑을 세웠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탑은 2층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려 놓았다. 기단부에는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모양을 조각해 놓고 있다. 탑신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으며, 몸돌에는 기동모양을 새겨놓았다. 석탑을 구성하고 있는 기단, 탑신, 머리장식의 비례가 우수하며, 특별한 장식은 없지만 단정하면서 아름다운 조형미를 보여주고 있다. 대구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 장식적인 면은 없으나 전체적인 비례나 조형미가 우수한 편이다. 2층으로 된 기단부. 몸돌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모양을 새겨 놓고 있다. 3층..

부여 장하리 삼층석탑(보물184호)

부여 사비성 남쪽 장암면 장하리에 있는 고려시대 삼층석탑(보물184호)이다. 백제 석탑을 대표하는 정림사지 오층석탑을 모방해서 만든 석탑이다. 얇은 판석을 3층으로 쌓아 기단으로 하고 그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려 놓았다. 1층 탑신 몸돌은 정림사지 석탑처럼 4개의 기둥을 세우고 그 안쪽에 판석을 끼웠으며 2,3탑신의 몸돌은 하나의 돌에 기둥모양을 새겨 감실처럼 보이게 하고 있다. 탑신 몸돌에서는 사리구, 상아불상, 목제소탑 등 고려시대 유물이 발견되었다. 정림사지 석탑을 모방하여 만들었다고 하나 전체적으로 균형미가 없고 조형미도 떨어지는 편이다. 통일신라가 멸망한 이후 옛 백제의 향수를 자극하고자 지역 호족이 정림사지 석탑을 모방해서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석탑이 남아 있는 이곳은 금강나루터가 있었던 교..

천안 천흥사지 5층석탑(보물 354호), 고려전기 양식을 잘 보여주는 석탑

천안시 성거읍 천흥사 절터에 남아 있는 고려시대에 세워진 오층석탑(보물354호)이다. 지대석 위에 2층기단을 놓고 그 위에 5층 탑신을 올려 놓고 있다. 기단부는 1층은 낮게, 2층은 높게 만들었다. 윗층 기단은 각 면마다 1개씩 4개의 판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로 되어있으며 1층 기단은 높게, 위층으로 올라가면서 높이가 줄어든다. 통일신라 말기 석탑이 작고 정형화된 형식인데 반해 웅장하면서 전체적인 비례에 있어 조형미가 있는 통일신라 전성기 석탑을 연상시키고 있는 석탑이다. 천흥사는 천안 성거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었던 사찰이었다. 천흥사종(국보280호)를 비롯하여 보물로 지정된 오층석탑, 당간지주 등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볼 때 상당히 큰 규모의 사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 성종대..

문경 봉암사 삼층석탑(보물 169호)

문경 봉암사 옛 주불전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금색전 앞 마당에 세워져 있는 보물169호로 지정된 삼층석탑이다. 석탑 조형미가 절정을 이루던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석탑으로 당시 일반적인 석탑과는 달리 기단부가 1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상륜부 머리장식이 온전히 남아 있어 동시대 석탑의 기준이 된다고 한다. 전성기때 만들어진 석탑답게 전체적으로 구성품들이 균형을 이루고 있어 아름다운 조형미를 보여주고 있는 석탑이다. 문경 봉암사는 하얀 바위산인 희양산(해발999m) 남쪽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사찰로 통일신라말 호족의 지원을 받아 크게 번창했던 선종계열의 구산선문 중 하나인 희양산문의 종찰이었다. 이 사찰의 창건내력에 대해서는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통일신라말 지증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시대..

[대구박물관] 정도사지 오층석탑(보물357호)와 야외 전시장 석조유물

대구박물관 야외에 전시되어 있는 정도사터 오층석탑은 원래 경북 칠곡군 정도사 절터에 남아 있던 석탑이다. 경복궁 야외전시장에 있는 많은 석조유물들처럼 이 석탑도 일제강점기인 1924년에 일제가 경복궁 마당으로 옮겼던 것을 1994년에 대구박물관으로 옮겨 전시하고 있는 유물이다. 보물 357호로 지정된 이 석탑은 전성기때인 통일신라시대의 영향을 받은 고려초기의 석탑이라 한다. 2층 기단에 5층으로 탑을 쌓은 정형화된 양식의 석탑이다. 2층으로 된 기단 각면에는 안상이 새겨져 있고, 한면에 이 석탑의 조성 내력을 기록한 명문이 새겨져 있다. 몸돌과 지붕돌로 이루어진 탑신 1층 몸돌에는 자물쇠가 달린 문이 새겨져 있으며, 탑안에서 사리장치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석탑 조각기술의 절정기인 통일신라시대 석탑에 비해..

여주 신륵사 다층석탑 (보물 225호), 대리석으로 만든 조선시대 석탑

신륵사 주불전인 극락보전 앞 마당에 세워져 있는 다층석탑은 높이3m로 석탑으로서는 크지 않은 편이며 통일석탑이나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경천사지 석탑 등에 비하면 아담해 보이는 석탑이다. 고려시대 이전에 만들어진 전통적인 삼층석탑 또는 오층석탑과는 달리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석탑으로 원나라의 영향을 받아 도교풍의 장식이 많은 경천사지석탑의 특징을 이어받은 석탑으로 보이다. 신륵사가 세종대왕 영릉의 원찰 역할을 부여받아 크게 번창했던 성종대에 중창된 다른 불전들과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서울 탑골공원에 남아 있는 세조대에 세워진 원각사지십층석탑보다 약간 늦은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볼 때 원각사 석탑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성종대에는 세조의 며느리이자 성종의 어머니인 인수대비가 불교를 크..

담양 남산리 오층석탑(보물 506호), 정림사지 오층석탑을 모방하여 만든 고려시대 석탑

담양의 명소 메타세콰이어길이 시작되는 담양 순창간 국도변에 위치한 남산리 오층석탑이다. 가장 오래된 석탑 중 하나인 부여 정림사지오층석탑으로 모방해서 만든 것으로 보이는 고려시대 석탑으로 1층의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려 놓고 있으며, 머리장식은 남아 있지 않다. 기단 1층이기는 하지만 탑을 구성하는 탑신과 기단의 비례가 적절하여 안정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통일신라시대 이후 석탑은 석탑자체의 독특한 조형미를 가지는데 비해 정림사지석탑처럼 석재를 이용하여 목탑처럼 쌓은 석탑이다. 석탑이 있는 이곳은 담양읍내에서 동쪽으로 빠져나가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으며, 현재는 이곳이 절터였음을 알려주는 당간지주와 오층석탑만이 남아 있다. 이 곳은 고려시대에 많이 세워졌던 평지사찰로 주요 교통로에서 여행객들이 잠시..

장성 진원리 오층석탑, 정형화된 고려시대 오층석탑

장성군 진원면 진원리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는 고려시대 오층석탑이다. 1층의 기단위에 5층의 탑신을 올려놓은 전형적인 고려시대 오층석탑이다. 탑의 규모도 크지 않은 편이며 조각수법도 전성기 석탑에 비해서 많이 뒤떨어지는 편이다. 탑은 부처의 사리를 모셔놓은 곳으로 삼국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까지는 불교 사원에서 신앙의 중심이 되는 예배물이었지만, 고려시대 이후 불전에 모셔진 불상이 신앙의 대상으로 바뀜에 따라서 형식적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석탑이 형식적인 성격을 가진 전형적인 고려시대 석탑이라 할 수 있다. 보통 석탑의 기단부는 2층으로 쌓아야 안정적인 모습을 하는데, 이 석탑은 원래부터 그런지 알 수 없지만 1층으로 쌓고 있으며, 기단부와 몸돌에 안상이나 불상 등을 전혀 새겨 놓지 않고 있다..

창경궁 팔각칠층석탑 (보물 1119호), 라마탑을 연상시키는 중국의 석탑

창경궁 후원 춘당지 연못가에 세워져 있는 조선시대 석탑인 보물 1119호로 지정된 창경궁 팔각칠층석탑이다. 이 석탑은 원래 창경궁에 있었던 것은 아니고 일제강점기에 만주에서 가져온 상인으로부터 박물관을 건립하기 위해 구입한 것이라고 한다. 1층몸돌에 이 탑을 세운 연대가 1470년대임을 알려주는 명문이 적혀 있다고 한다. 이 탑은 우리나라 석탑은 아니고 중국의 것으로 라마교의 영향을 받은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탑은 팔각의 평면위에 7층의 탑신을 세운 석탑으로 3단의 바닥돌 위에 1단의 기단을 올려 놓고 그 위에 7층의 탑신을 세워 올렸다. 1층 몸돌은 볼록한 형태이며, 2층부터는 목조건축물의 지붕처럼 전형적인 동아시아 석탑의 형태를 하고 있다. 기단부에는 각면마다 꽃무늬 등을 새겨 놓고 있다. 전체적으..

이천 안흥사지 오층석탑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에 전시되고 있는 안흥사지 오층석탑이다. 경기도 이천의 안흥사터에 있던 것을 현재의 위치로 옮겨 놓았다고 한다. 이 석탑은 전형적인 통일신라 석탑의 양식을 따르고 있어서 석탑 구성 요소의 비례가 표준적인 석탑의 비례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아서 조형미는 있어 보인다. 석탑은 2층의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려 놓고 있다. 2층의 기단부는 1층은 낮고 2층은 높게 되어 있으며 모서리에 기둥장식을 새겨 놓고 있다. 탑신은 1층 몸돌은 높게, 그 위로는 낮게 만들었다. 전체적으로 통일신라 전성기 조각수법이 많이 남아 있는 석탑이다. 안흥사 오층석탑은 통일신라말이나 고려초기에 세워진 석탑으로 추정된다. 그래서인지 석탑의 크기도 크고, 구성요소간의 비율도 안정적이다. 이 석탑은 전체적으로 직선적인..

원주 영전사지 보제존자탑 (보물 358호), 석탑 형태로 만든 승려의 사리탑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에 전시된 보물 358호로 지정된 영전사지 보제존자탑이다. 이 사리탑은 고려말 승려인 보제존자의 사리탑으로 현재도 보제존자의 사리탑은 여주 신륵사 뒷동산에 석종형태로 만들어져 있지만, 특히하게 그의 제자들이 석탑형태로 사리탑을 만들었다고 한다. 원래는 원주 영전사지에 있던 것을 일제시대때 일본인들이 경복궁으로 옮겼다고 한다. 고려말에 통일신라시대 양식이 두개의 탑 형식으로 세운 것도 특이하며, 아마도 우리나라 남아 있는 제대로 된 삼층석탑 중에서 가장 후대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석탑의 크기는 크지 않지만, 기단과 탑신의 구성요소들의 비율의 통일신라시대 양식과 비슷해서 얼핏 보기에도 조형미가 뛰어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나옹선사는 고려말을 대표하는 승려로 무학대사의 스승이기도 하다..

원주 천수사지 오층석탑과 삼층석탑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전시중인 천수사지 오층석탑과 삼층석탑이다. 고려시대 석탑 중에서 많지 않은 쌍탑을 하고 있지만 5층석탑과 3층석탑이 1쌍을 이루고 있다. 통일신라시대 사찰은 두개의 석탑이 신앙의 중심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통일신라시대부터 이어진 정형화된 가람배치를 위해 세운 것으로 보인다. 비슷한 경우로 고려초 대표적인 호족인 경기도 광주지역 호족들이 세운 하남 춘궁동사지에 오층석탑과 삼층석탑이 나란히 배치된 모습을 볼 수 있다. 통일신라의 석탑과 비교해 볼때 그 규모가 작고 예술적인 미가 떨어져 보인다. 원래 원주 천수사지에 있던 것을 일제시대 경복궁으로 옮겼다가 현 위치에 오게 되었다고 한다. 오층석탑은 기단은 남아 있지 않고 5층의 탑신만이 남아 있는데 2층 몸돌부터 그 높이가 급격히 낮..

서울 홍제동 오층석탑 (보물 166호)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전시된 보물 166호로 지정된 홍제동 오층석탑이다. 원래 홍제동 사현사터에 있던 탑을 도심확장으로 경복궁에 옮겨 놓았다가 현재의 위치에서 전시중인 문화재이다. 전체적으로 탑이 많이 훼손되어 원래 모습과는 많이 동떨어진 모습이지만 고려시대 석탑 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하며 목조건물의 형태를 모방하고 있다. 이 석탑은 후대에 올려놓은 것으로 보이는 자연석을 기단으로 하여 그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려 놓은 형태로 기단이 없어서 어색한 느낌을 주고 있지만, 탑신 전체적으로 안정감있는 비례를 하고 있다. 1층몸돌에는 장식이 없고, 2층부터는 탑신 몸돌에 기둥과 문짝을 새겨 놓고 있다. 이 석탑을 세운 연대는 칠장사혜소국사비의 비문에 고려 정종 때인 1045년에 이 절이 창건되었다는 ..

김천 갈항사 동.서 삼층석탑 (국보 99호), 언적법사 3남매가 건립했다는 통일신라 전성기 석탑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전시된 국보 99호로 지정된 갈항사 삼층석탑이다. 경북 김천시 남면에 소재한 갈항사절터에 있던 두개의 탑으로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반출될 위기에 처했던 것을 경복궁 마당으로 옮겼다가 현재 중앙박물관 정원에 전시되어 있다. 이 석탑은 2층의 기단위에 3층의 탑신으로 이루어진 통일신라 전성기 석탑의 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기단의 네모서리와 각면에는 기둥모양을 새겼다. 탑신부 몸달은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동탑의 기단부에 통일신라시대 영묘사 언적법사 3남매가 건립하였다는 내용이 글로 새겨져 있다. 이 탑에 모셔졌던 사리병과 법어 불경이 발견되었다. 이 석탑은 장식이 없고 약간은 정형화된듯하지만 석탑 각 부분의 비례가 뛰어나고, 당시의 석탑 양식이 잘 드러나 있어서 문화재로..

개성 남계원지 칠층석탑 (국보 100호), 고려 특유의 석탑 양식이 반영된 석탑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전시 중인 석탑 중에서 가장 가치가 높은 국보 100호로 지정된 문화재인 남계원칠층석탑이다. 원래는 경기도 개성 부근에 있던 석탑으로 탑신만이 경북궁에 옮겨졌다가 후에 기단부도 발굴되어 현재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이 탑은 2층의 기단 위에 7층의 탑신을 세운 것으로 전체적인 형식은 전형적인 통일신라 석탑의 정형화된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세부적으로 변화된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신라 석탑에 비해서 1층기단은 약간 높아졌고, 2층 기단은 약간 낮아져 있다. 통일신라 석탑의 전형이 삼층석탑을 벗어나 고려시대 특유의 석탑 양식이 반영된 석탑이라고 한다. 남계원칠층석탑은 2층의 기단부와 7층의 탑신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신라석탑의 양식을 가지면서도, 고려 특유의 석탑 양식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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