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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건축(불전_요사) 184

영월 법흥사 적멸보궁,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 중 한곳인 영월 법흥사 적멸보궁이다. 다. 신라 고승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돌아와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봉안한 곳에 세워진 불전이다. 자장율사가 도를 닦던 곳이라 전해지는 석굴과 승탑이 적멸보궁 뒷편에 있다. 승탑에 진신사리를 모셨다고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승려의 사리를 모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오대산 적멸보궁과 마찬가지로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에 진신사리를 봉안한 것으로 보인다. 양산 영축산 통도사, 평창 오대산 월정사, 인제 설악산 봉정암, 정선 태백산 정암사, 영월 사자산 법흥사를 5대 적멸보궁이라 한다. 영월 사자산 법흥사 적멸보궁. '적멸보궁'이라 적힌 현판. 불전 뒷편에 주인을 알 수 없는 승탑과 사리를 모신 것으로 추정되는 석단이 있다. 법흥사 석분. 자장율사가 도..

경주 기림사 주불전인 대적광전(보물 833호)

경주 기림사의 주불전인 대적광전(보물 833호)으로 비로자나여래를 모신 불전이다. 삼국시대 기림사가 창건된 이래 존재했으며 여러 차례 수리를 거듭했으며, 현 건물은 1629년(인조7)에 크게 고쳐 지은 것이다. 대적광전에 모신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보물958호)과 뒷편 탱화인 비로자나삼불회도(보물1611호)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앞면 5칸 규모로 맞배지붕을 하고 있으며, 공포는 화려한 다포계 공포를 사용하고 있다. 공포에 조각을 많이 새겨 넣었으며, 옛모습이 손상되지 않은채 보존되고 있다.상당히 큰 규모의 불전이지만 낮은 기단에 건물을 세워 웅장하지만 위압감을 주지는 않고 편안하고 친근한 느낌을 준다. 경주 기림사는 삼국시대 때 인도 승려가 창건한 사찰로 원효대사가 중창하면서 기림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대구 팔공산 동화사 주불전인 대웅전(보물 1563호)

대구 팔공산(해발 1193m) 동화사(桐華寺) 주불전인 대웅전(보물 1563호)이다. 이곳에는 석가모니여래, 아미타여래, 약사여래를 모시고 있다. 건물이 처음 지은진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여러차례 중건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은 1727년 경에 새로 지었다고 한다. 건물은 장대석를 쌓은 높은 기단 위에 자연석으로 만든 초석을 놓고 그 위에 기둥을 세웠다. 앞면3칸, 옆면 3칸 규모이며, 다포계 공포와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잘 다듬어지지 않은 나무를 기둥으로 사용하고 있어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주고 있다. 내부 불단 위에는 닫집이 화려하게 꾸며져 있다. 비교적 늦은 시기인 조선후기 영조대에 지어졌으며, 건축적인 조형미가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대구지역을 대표하는 동화사 주불전으로 이 지역의 사찰건축 경..

영천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국보14호), 고려시대 목조건축물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중 하나인 영천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이다. 건물은 앞면 7칸, 옆면 3칸 규모이며,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큰 규모의 건물이다. 주심포양식의 공포를 사용하고 있는데, 고려말.조선초 주심포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문살이 있는 분합문 대신 벽을 사용하고 있으며, 가운데 출입문을 두고 있다. 안동 봉정사 극락전과 비슷한 형태이다. 소박하고 간결한 건물이지만 사찰 불전 중에서는 큰 규모이다. 거조암은 원래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거조사라는 큰 사찰이었으나 지금은 은해사 거조암(居祖庵)이라 부른다. 많은 전각들이 있었으나 대부분 화재 등으로 소실되고 지금의 전각들은 최근에 새로 지은 것들이다. 부석사 무량수전(국보18호), 수덕사 대웅전(국보49호), 봉정사 극락전(국보15호)와 함께..

안성 청룡사 대웅전(보물824호)

안성 청룡사 주불전인 대웅전(보물824호)이다. 조선 선조 이전에 지어진 건물이라고 전해지고 있으나, 건물의 형태나 건축수법으로 볼 때 조선후기에 크게 중수하면서 새로 지은 것으로 보인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4칸으로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지붕을 받치는 처마는 화려한 다포계 공포를 사용하고 있다. 건물 기둥은 전혀 가공하지 않은 원목을 사용하고 있어, 소박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멋이 있다. 안성 서운산 자락에 위치한 청룡사는 고려시대(원종6)인 1265년에 처음 세워진 사찰로 고려말 이름난 고승인 나옹화상이 크게 중창하면서 청룡사라 불렀다고 한다. 조선시대 인조의 셋째 아들인 인평대군의 원찰이었다고 한다. 또한 1900년대부터는 남사당패의 근거지가 되었다고 하며, 부근에 지금도 남사당마을 등이 있다고..

안성 석남사 영산전(보물823호), 조선초기 건축양식이 남아 있는 불전

안성시 서운산(해발547m) 북쪽편 자락에 자리잡은 석남사 영산전(보물823호)이다. 건물 규모는 앞면3칸.옆면2칸이지만 건물 규모는 작은 편이다. 이 건물이 언제 처음 지어졌는지는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지만 임진왜란 때 소실되지 않았다고 한다. 지붕을 팔작지붕을 하고 있고, 다포계 공포를 사용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조선초기에서 중기 건축양식이 남아 있는 건물로 평가 받고 있다. 이 불전은 석가모니불과 생애를 그린 팔상도를 모신 영산전이지만, 지금은 명부전과 비슷한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석남사는 신라 문무왕대에 창건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고려 광종의 아들 혜거국사가 크게 중건하는 등 안성 일대에서는 중요한 사찰로 여겨졌다. 임진왜란 때 사찰 대부분이 화재로 소실되면서 현재는 대웅전과 영산전만 남아 작은..

문경 봉암사 극락전(보물 1574호), 봉암사에서 제일 오래된 작은 불전

문경 봉암사 경내에 남아 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인 극락전이다. 이 불전은 외관상 2층건물처럼 보이는 독특한 형태의 건물을 하고 있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3칸으로 단층건물이지만, 바깥쪽에 1칸씩 차양칸을 둘러서 2층건물처럼 보인다. 이건물은 신라 경순왕이 피난하였다는 건물이라고 하나, 현재의 건물은 대체로 조선 중.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원래 불전이 있었던 자리로 기단과 초석은 고려시대 것이라고 한다.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 희양산 자락에 위치한 봉암사는 통일신라 헌강왕 때 지증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알려져 있다. 통일신라시대 선종 구산선문 중 희양산파의 본산이기도 하며 고려초 정진국사가 크게 중창하였다고 한다. 봉암사는 직지사의 말사이기는 하지면 대표적인 참선도량으로 해방이후 참선..

여주 신륵사, 주불전인 극락보전을 비롯한 불전과 요사채, 강당

여주 신륵사는 남한강 수운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조포나루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위치하고 있는 사찰이다. 창건연대는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지만 고달사를 비롯하여 고려시대에 남한강변 교통로에 존재했던 많은 사찰들 하나였던 것으로 보인다. 신륵사는 고려말 공민왕의 왕사를 지냈으며 보제존자라는 시호를 받은 고승 나옹선사가 이곳에서 입적함으로써 그의 제자들과 후원자들이 절을 크게 중창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숭유억불정책에 따라 남한강변에 위치한 많은 사찰들처럼 쇠락하기는 했으나 세종대왕의 영릉이 여주로 옮겨짐에 따라 능을 지키는 원찰의 역할을 부여받아 크게 중창하였다. 신륵사는 성종대에 크게 중창하면서 대리석으로 만든 다층석탑을 중심으로 불전들이 배치된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신륵사 가람배치는 아..

여주 신륵사 조사당(보물 180호), 조선전기를 대표하는 지공,나옹,무학대사 영정을 모신 곳

여주 신륵사는 남한강변에 위치한 고찰로 삼국시대에 창건된 사찰이라고 전해지고 있으나 정확한 내용은 아닌것으로 보고 있으며, 고려말 나옹선사가 이곳에서 입적하면서 크게 번창한 사찰이다. 고려시대 남한강변 수운과 교통로상에는 큰 절이 많았는데 당시 신륵사는 상대적으로 그 위상이 높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며, 부근에 있던 고달사가 여주지역에서는 큰 사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신륵사는 조선시대에 억불정책으로 폐사되었던 주변의 다른 사찰들과 함께 크게 위축되었다가 예종대에 세종대왕 영릉이 여주로 천장되면서 원찰로서 주변지역을 대표하는 사찰로 발전했던 것으로 보인다. 신륵사에는 나옹선사 부도를 비롯하여 고려시대 석탑들이 많이 남아 있지만, 사찰건물 대부분은 임진왜란 등을 거치면서 거의 남아 있지 않고 나옹선사를 비롯..

여수 흥국사, 팔상전을 비롯한 불전과 요사채

여수시 명산인 영축산 자락에 있는 흥국사는 고려 중기인 1196년에 보조국사 지눌이 창건한 사찰로 알려져 있다. 흥국(興國)이라는 절 이름에도 알 수 있듯이 남해안 세워진 호국사찰이라 할 수 있다. 조선초기 불교탄압과 왜구의 침입으로 폐허화된 것을 조선중기에 중건하였다고 한다. 흥국사의 실제적인 역사는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이끌고 전라좌수영 수군을 도와 큰 공을 세워 승병의 중심지로 인조대에 크게 중건된 것으로 보인다. 사찰의 규모는 주불전인 대웅전을 중심으로 팔상전, 불조전, 무사전, 원통전 등의 불전과 심검당, 적묵당 등 요사채, 사찰 강당인 봉황루를 두고 있으며, 사찰입구에는 계곡을 건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의 홍예를 하고 있는 다리인 보물로 지정된 홍교가 있다. 지금은 화엄사 말사이지만 현재..

여수 흥국사 대웅전(보물 396호), 조선후기에 중건된 대표적인 불전

여수 흥국사는 여수 영취산 북동쪽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고찰로 고려 명종대인 1195년 보조국사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조선중기 불교가 크게 중흥한 명종대에 중창되었다가 임진왜란때 전남 남해안 지역 승병의 중심지로 전라좌수영을 도와 임진왜란 극복에 큰 기여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때 기존의 사찰건물들은 크게 불타버리고 인조대에 승병들을 지원하기 위해 크게 중건된 것으로 보인다. 흥국사라는 이름에서부터 호국사찰의 성격이 강한 사찰이다. 흥국사의 주불전으로 보물 396호로 지정된 흥국사 대웅전은 인조대에 계특대사가 흥국사를 크게 중건할 때 지은 건물로 조선 중.후기를 대표하는 사찰건물이다. 건물 규모는 앞면 3칸, 옆면 3칸에 화려한 다포계 공포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이다. 건물천정은 우물천장으로 꾸몄..

강화 전등사 극락암, 향로전을 비롯한 요사채들

전등사는 서울에서 가까운 곳에 자리한 사찰인 까닭에 전통과 역사에 비해서 사찰의 규모는 크지 않은편이다. 부처를 모시는 불전으로는 석가모니를 모시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약사여래를 모시는 약사전, 최근에 많이 볼 수 있는 크게 지어진 지장보살을 모시는 명부전이 있다. 불전들은 크지는 않지만 아담하면서 화려하게 꾸며져 있는 편이다. 주위의 우거진 수목들과 잘 어울리는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불전에 비해서 사찰에서 수행하는 승려들과 이 곳을 방문하는 손님들이 머무는 요사채는 꽤 규모가 크고 많은 편인데, 대체로 최근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왕실과 관련이 되어 있고, 정족산 사고가 있어 이 사찰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라 요사채를 많이 두고 있었을 것으로 보이며, 최근에도 템플스테이 등을 위해서 ..

강화 전등사 대조루, 사찰로 들어가는 출입문 겸 강당

강화 전등사 출입문 역할은 하는 대조루는 사찰에서 불이문과 같은 역할을 하는 누각이다. 전등사는 정족산성내에서 정족산사고를 지키는 역할을 하는 등 조선시대 국가와 관련된 전통사찰이 전체 영역을 대표하는 대형 사찰과는 달리 일주문, 천왕문, 금강문 등의 출입문을 두지 않고 누각인 대조루가 그 역할을 했다. 전등사 대조루는 사찰을 찾는 신도들이 잠시 쉬는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도록 만든 건물로 대웅전와 같은 방향을 하고 있지 않고, 지금은 수목이 우거져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멀리 염하라고 불리는 강화해협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방향으로 건물이 세워졌다. 현재의 건물은 1932년에 크게 수리를 하였다고 하면, 유리문이 달려 있는 등 당시 건축양식이 반영되어 있다. 앞면 5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

강화 전등사 약사전(보물 179호), 약사여래를 모시는 전통사찰에서는 흔치 않은 유서깊은 불전

강화 전등사에는 중심 불전인 대웅전 외에 서쪽으로 명부전과 약사전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찰 처럼 죽은이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 명부전이 있고, 특이하게 전등사에는 약사여래를 모신 보물로 지정된 약사전이 있는데, 오래된 불전답게 규모가 적고 아담한 건물이다. 보물 179호로 지정된 약사전은 조선중기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며 주불전인 대웅보전과 거의 비슷한 건축양식을 하고 있다. 앞면 3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기둥에 공포를 설치하고 기둥사이에 하나의 중간포를 설치한 간략한 형태의 다포계 건물이라고 할 수 있다. 건물 내부에는 고려말이나 조선초에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 약사여래상을 모시고 있다. 약사여래는 모든 질병 뿐만 아니라 무지의 병까지도 고쳐주는 부처로 알려져 있으며, 주로 둥근 약단..

강화 전등사 대웅보전(보물178호), 화려한 장식으로 꾸며진 고풍스런 건물

보물 178호로 지정된 강화 전등사의 주불전인 대웅보전이다. 앞면 3칸, 옆면 3칸으로 큰 규모의 건축물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단정한 외형에 정교한 조각장식으로 꾸며져 있다. 조선 중기인 광해군13년(1621)에 지어진 건축물로 이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물 중 하나이다. 건물내부에는 불단 위로 화려한 닫집이 꾸며져 있으며, 천정 주변으로 연,모란,당초가 화려하게 양각되어 있다. 건므이 기둥은 대체로 굵은 편이며, 모통이 기둥은 높이를 약간 높여서 처마끝이 들리도록 하고 있다. 이 건물은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다른 건물에 비해 약간의 변화를 주고 있는 곡신이 심한 지붕과 화려한 장식이 그런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건물의 모서리 기둥 윗부분에는 벌거벗은 여인상이 조각되어 있는데, 절을 짓던 목술ㄹ 배반하..

논산 쌍계사 대웅전(보물408호), 꽃무늬 문살이 아름다운 조선후기 건축물

논산 쌍계사는 논산시 양촌면 중산리 불명산에 자리잡고 있는 오래된 사찰이다. 이 사찰은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을 세운 혜명이 창건하였다하며, 사찰규모는 큰 편으로 보이는데 보물 408호로 지정된 대웅전을 제외하고는 내력이 깊은 건물이나 석탑 등 유물은 그리 많지 않은 편이며, 사찰의 역사에 대해서 알려진 내용 그리 많지는 않고 민간에 전해내려오는 전설이 많은 곳이라고 한다. 보물 408호로 지정된 쌍계사 대웅전은 조선후기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사찰 건축물로 앞면 5칸, 옆면 3칸의 규모가 꽤 큰 불전이다. 이 건물이 처음 세워진 연대는 알려진 바가 없고 조선후기인 1738년에 크게 중건하였다고 한다. 이 건물의 공포는 다포계로 우리나라에서는 출목수가 가장 많다고 하며 지붕은 겹처마에 팔작지붕 형태를..

오대산 월정사, 천왕문과 용금루

오대산 월정사는 삼국시대에 처음 창건된 오래된 고찰이지만 전각자체는 대부분 한국전쟁이후 중건된 건물이다. 사찰 중에서 경주 불국사처럼 가람들이 질서 있게 배치된 경우도 있지만, 조선시대 왕실과 관련된 원찰역할을 했던 사찰들은 대부분 가람배치에 있어서 질서를 크게 중요시하지 않는 경향이 있으며, 특히 선종을 강조하는 사찰들에서 이런 경향은 더 많아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월정사는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 사찰로 전체적으로 가람배치에 있어서 질서를 강조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이며, 한국전쟁 이후 많은 전각들이 중건되거나 새로 지어지는 과정에서 이런 경향이 많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월정사에는 출입문으로 천황문과 금강문이 있고, 주불전인 적광전과 마주하고 있는 누마루인 용금루 또한 출입문으로서 기능을 갖고 있..

오대산 월정사, 승려들의 수행공간인 요사채들

월정사는 삼국시대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로 상원사와 함께 오대산을 대표하는 큰 사찰이다. 조선시대에는 세조가 병을 치료하기 위해 이 곳을 다녀가고, 오대산 사고를 설치하는 등 왕실과 관련된 원찰의 기능을 갖고 있는 사찰이다. 월정사의 오랜 역사에 비해서 한국전쟁 당시 대부분의 전각이 불타 버렸기때문에 현재의 전각들은 대부분 그 이후에 중수되어 팔각구층석탑을 제외하면 고풍스러운 멋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사찰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이후 중수되기 시작한 월정사에는 적광전을 비롯하여 부처를 모신 불전을 여럿 두고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불전보다는 승려가 수행하는 공간인 승방이나 사찰을 방문한 사람들이 잠시 묵을 수 있는 요사채들을 많이 두고 있다. 이는 월정사가 위치한 장소가 민가가 있는 마을과 거리가 떨어..

오대산 월정사, 수광전을 비롯한 불전들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에 소재한 월정사는 삼국시대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로 문수보살이 머문다는 오대산을 대표하는 큰 사찰이다. 월정사에는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팔각구층석탑이 있고, 조선시대에는 세조를 비롯한 왕실의 비호를 받고 실록을 보관했던 오대산사고를 지키는 역할을 하는 등 원찰의 성격을 갖는 사찰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월정사가 오랜 역사를 갖고 있으며, 불교계에서 비중이 큰 사찰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전쟁당시 사찰 대부분이 소실되어 건축물로서 내력이 있는 불전이나 요사채건물은 없고 대부분 한국전쟁 이후에 중건되어 불전이나 요사채에서 오래된 사찰로서의 느낌은 주지 못하고 있다. 월정사 주불전인 적광전 뒷편으로는 4동 불전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안쪽에 있는 것이 이름난 큰 산에 자리잡은 사찰에서 많이 ..

오대산 월정사, 주불전인 적광전

오대산 월정사는 643년(선덕여왕12)에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로 알려져 있다. 삼국시대에는 작은 암자의 형태로 유지되다가 이후에 사찰로서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 월정사는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에 오른 세조가 방문하고 이 곳에 오대산 사고를 두는 등 조선시대에는 왕실의 원찰 기능을 했던 사찰이기도 하다. 고려초기에 세워진 팔각구층석탑을 제외하고는 사찰전각들은 여러차례의 화재와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어서 문화재로서 내력이 있는 불전은 남아 있지 않다. 현재 월정사는 주불전인 석가모니불을 모신 적광전을 비롯하여 많은 불전과 요사채를 두고 있는 강원도 지역을 대표하는 대형 사찰이다. 월정사의 주불전은 적광전으로 석가모니를 본존불로 모신 불전이다. 원래 이 곳에는 일곱부처를 모신 칠불전이 있었으나 한국전쟁으로 소실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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