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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산성_읍성)

충남 홍성 홍주성, 구한말에 증축한 조선시대 읍성

younghwan 2011. 2. 1.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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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 홍성의 군청소재지에 위치하고 있는 홍주성은 구한말인 고종때 홍주목사 한응필이 크게 보수한 읍성으로 조선이 쌓은 마지막 성곽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곳 홍주성 성곽은 최초의 축성연대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으며, 구한말 일본에 대항한 큰 전투가 있었던 곳이다. 당시의 전투결과 및 일본인들로 인해 많은 훼손이 있기는 했지만 성곽의 모습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홍주성은 둘레 1,772m에 달하는 읍성으로 원래는 사대문을 두고 있었으나 지금은 동문인 조양문만이 남아 있다. 성내에는 동헌을 비롯하여 관아건물이 35동이나 있었으나, 홍주아문과 동헌인 안회당 정도만 남아 있다. 구한말에 증축한 홍주성은 조선시대 축성기술이 동원된 마지막 성곽으로 성곽을 쌓은 규모로 보았을 때 상당히 정성을 들여서 쌓았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당시에 많이 출몰했던 외국선박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서 쌓았던 것으로 보이며, 당시 집권자인 대원군이 직접 휘호를 써서 문액을 걸어 놓았다고 한다. 당시에 있었던 서문인 경의문과 북문인 망화문은 없어지고 동문이 조양문만이 남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홍주성 성곽은 도심 외곽 방향인 서쪽과 남쪽의 성벽만이 남아 있는데, 구한말 성곽 축성기술을 잘 보여주고 있다. 홍주성은 큰 돌을 쌓아서 만든 석축성으로 바깥쪽은 석축으로, 안쪽은 토성의 형태를 하고 있다. 조선후기에는 큰 전쟁이 없어서 그런지 성곽을 축성하는 기술이 이전에 비해서 크게 발전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성곽 바깥으로으로 돌출해 있는 치(雉), 성벽에 접근하는 적을 효율적으로 제압하기 위한 시설로 수원화성에 비해서 치밀하게 배치되어 있지는 않다.


석축을 쌓은 돌은 가공해서 일정한 규격을 갖추고 있는 부분도 있고,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한 부분도 섞여 있다. 곳곳에 근래에 들어서 보수한 흔적이 보인다.


홍주성 석축


홍주성 남문. 문루가 없는 홍예문이었다고 하며, 지금 발굴과 보수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문 발굴 현장


홍주성 서남쪽 성벽


홍주성 성벽 위에는 방어를 위한 여장을 설치하고 있지 않다. 안쪽으로 경사진 언덕을 이용하여 적절히 방어를 했던 것으로 보이며, 우리나라 읍성 대부분은 이런 형태를 하고 있다.


홍주성 안쪽은 흙을 쌓아서 만든 토성의 형태를 하고 있다.


홍주성 서쪽편 성벽


홍주성 서문인 경의문이 있었던 자리. 문루는 없어지고 도로가 지나가고 있다.


홍주성 관아 건물 뒷편 성벽


홍주성 수성비, 홍주성 완공을 기념하여 세운 기념비이다.


기념탑


홍주성 안쪽 관아가 있었던 자리. 1978년 지진으로 성곽의 일부가 붕괴되자, 이 곳에 있던 가옥들을 철거하고 공원 및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옛 홍주성 관아 배치도


홍주성 위성사진을 보면 성관 바깥쪽으로는 하천이 흐르고 있어 해자의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최초 축성연도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 백월산 중턱에 위치했던 해풍현이 현재 위치로 옮겼다는 기록으로 보아 이때 성을 축조한 것으로 추측되며 규모는 1,300척의 토성으로 400개의 성첩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 후 여러 차례 보수 확장을 하였고 조선시대 고종7년(1870) 홍주목사 한응필이 연봉금 3천냥과 원납금, 지세부과금으로 석성을 개척하여 1,830척에 560척을 증보하여 석축하면서 650개의 첩과 130개의 치, 2개의 곡성, 4곳의 우물과 연못을 신설한 다음 동서에 수문을 두어 서문천의 물을 끌어 동편 수문을 거쳐 남문천과 금마천으로 흐르게 하고 동서북에 문을 세우고 남문은 문루가 없는 홍예문으로 하였다. 같은 해 대원군이 휘호한 문액을 받았는데 동문은 조양문, 서문은 경의문, 북문은 망화문이라 하였다. 그 후 홍성지방 일본인들이 서문과 북문을 훼절하고 성곽곳곳을 철거하려던 것을 읍민들의 강경한 반대로 보존하였다. 홍주성은 최장 1,772m에 달아였으나 810m만 현존하며 성내에는 관아건물이 35동에 이르렀으나 조양문, 홍주아문, 안회당(동헌), 여하정만이 남아 있다. 1978년 10월 7일 강도 5도으 지진이 발생하여 성곽의 일부가 붕괴된 것을 계기로 성곽주변 가옥 64동 철거와 토지를 매입하여 주변정비 및 성곽을 보수하여 현재의 모습에 이르고 있다. <출처:홍성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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