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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중앙박물관 회화실] 궁중장식화와 민화

younghwan 2012. 8. 19.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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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회화의 한 분야로 실용적인 성격의 그림으로 기록화궁중장식화가 있고, 일반인들이 취미로 그렸던 민화가 있다. 기록화는 궁중에서 일어났던 중요한 행사를 그린 현대적인 의미로 보면 기념촬영과 같은 성격의 그림이다. 또한 중앙박물관 회화실에는 전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민간 상류층에서도 계모임이나 잔치 등을 그림으로 남겨놓고 있다. 이들 그림들은 화가의 의도나 예술적인 목적으로 그림을 그렸다기 보다는 행사등의 사실을 추억하기 위해서 사실을 중심으로 그린 그림으로 한번에 여러장을 그려서 참석자들이 나누어 가졌다고 한다. 이들 그림은 회화로서의 가치도 있지만 사진처럼 당시의 풍습과 복식 등 다양한 모습을 오늘날 사람들에게 전해주는데 큰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민화는 조선후기에 많이 그려졌던 것으로 보이는데 전문적으로 그림을 배운 사람들이 아닌 일반인들이 취미로서 그렸던 그림으로 그 기교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일반 민간의 소망과 감정을 표현했다는데 그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민화는 대체로 설화나 민간신앙의 대상이 되는 것들을 그린 것이 많다고 한다.
 

궁중장식화와 민화
궁중장식화는 궁중의 여러 공간을 장식하거나 궁중의식에 사용하기 위하여 그린 그림을 말한다. 그 종류로는 왕이 집무를 보던 정전이나 왕과왕비의 관을 모시던 빈전, 신위와 혼백을 모시던 혼전 등에 놓는 오봉병, 궁궐을 장식한 용 그림과 책걸이도, 새해를 맞아 그리던 세화, 각종 축하 잔치에 사용한 십장생도와 모란도 등이 있다. 이 그림들은 대체로 어진 임금이 나라를 잘 다스려 모든 백성이 건강하고 왕조의 평화가 영원히 계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궁중의 취향에 맞게 전문화원들이 그렸기 때문에 채색이 화려하고 우아한 기품이 서려 있다. 민화는 전문 화원과 달리 정통으로 그림을 배우지 않은 화가가 그린 것으로, 일반회화의 소재뿐만 아니라 재미있는 민간 설화나 무속신앙 등과 관련된 내용도 다루었다. 화려한 기교로 다듬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소망과 감정을 소박하게 표현하였다.

 궁중기록화는 궁중에서 벌어지는 특정한 행사를 기념하기 위한 그림이다. 그 종류는 크게 궁중행사도와 의궤도로 나눌 수 있다. 궁중행사도는 왕실의 결혼이나 생일잔치 등 중요한 행사의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 한 번에 여러 벌을 그려서 관련자들이 나누어 소장하였다. 의궤는 궁중 행사의 절차를 기록한 책이다. 여기에 성대한 행렬도와 행사에 사용한 물건들을 그린 도설 등 각종 그림들을 실어서 의식의 상세한 내용을 전해 준다. 제작 배경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궁중기록화는 조선시대 궁중 문화를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관동지역 명승지 그림, 19세기, 비단에 색. 명승지 풍경을 그린 그림으로 산수화라고도 할 수 있지만, 단순히 명승지의 모습을 그린 그림으로 민화의 성격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 여행이 어려웠던 옛 사람들의 여행에 대한 소망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관동팔경으로 유명한 관동지역 명승지는 수많은 문인들에게 풍류와 유람의 대상이 되었다. 많은 문인들이 관리로 부임하거나 혹은 개인적으로 유람을 하게 된 것을 계기로 관동지역 명승지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예부터 아름다운 경치를 8경, 혹은 10경으로 묶어 시로 노래하고 그림으로 그리는 문화가 있었다. <관동팔경도>는 금강산도와 마찬가지로 문인들 사이에서 시작되어 서민계층까지 유행하면서 민화의 소재로 확대되었다. 평생에 금강산이나 관동지역을 유람하기 힘들었던 서민들에게 명승지 그림은 생생한 경치를 대신 볼 수 있게 해주는 기능을 하였다. 이 그림은 통천의 총석정에서 시작하여 간성의 청간정, 강릉의 경포대, 고성의 삼일포, 삼척의 죽서루, 양양 낙산사, 울진 망양정, 평해의 월송정 등 관동팔경의 경치를 그리고 있다. 매우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본 시점으로 그려진 것이 특징이다. <출처:중앙박물관>



즐겁게 노는 아이들, 19세기, 비단에 색. 부귀영화와 무병장수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그림으로 중국의 그림을 연상하면서 그린 것으로 보인다.

백동자도는 넓고 호사스러운 저택의 정원에서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는 백명의 남자 아이들을 그린 것이다. 백동자도는 아들을 낳아 조상의 제사를 받들게 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였던 조선시대에 자손번창의 바램을 담아 병풍으로 제작되어 아이들 방이나 부인방 등에 사용되었다. 백동자도는 중국 당나라 때 평생 부귀영화와 무병장수를 누린 곽자의 자손들을 그린 그림에서 유래되었다. 그는 늙어서 백자천손을 거느렸다고 한다. 그러한 한평생의 부귀영화를 그려낸 것이 곽분양행락도이다. 이 그림의 사내 아이들은 꽃놀이, 전쟁놀이, 물놀이, 닭싸움놀이, 원숭이 놀이 등을 하며 노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배경에는 건물, 소나무, 괴석, 파초 등으 표현하였는데, 아이들이 입은 옷이나 배경 표현은 거의 중국식이다. 또한 화려하고 세밀하게 채색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잉어 그림, 19세기, 종이에 먹. 민화의 소재로 많이 등장하는 동물을 그린 그림이다. 사대부들이 많이 그렸던 사군자화와는 달리 민간신앙에서 상징적 의미를 가진 것들을 많이 그렸던 것으로 보인다.

민화의 주된 소재 중 하나로 잉어, 쏘가리 등 어류들이 있다. 이렇게 물고기가 그림의 소재로 채택되는 것은 상징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예를들면 물고기는 밤낮으로 눈을 뜨고 있기 때문에 항상 주의를 경계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다락문에 물고기 그림을 붙여 놓기도 했다. 쌀뒤주에 물고기형 자물쇠를 달거나 서람의 물고기형 손잡이 역시 이런 상징성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물고기는 부부의 금술을 상징하기도 하고 알을 많이 낳는 것 때문에 다산을 의미하기도 한다. 특히 배가 부른 물고기 그림은 풍요를 상징한다. 특히 잉어가 뛰어 오르는 그림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중국 고사에는 잉어가 물살을 거슬러 폭포로 뛰어 오르면 천둥번개가 치고 꼬리에 불이 붙어 용으로 변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것은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오르는 입신출세를 상징하며, <어변성룡도>라고도 한다. 이 그림은 파도에서 뛰어 오르는 세마리 잉어를 그렸다. 물고기 지느러미와 파도에는 푸른 담채를 가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신선들의 잔치, 작가모름, 비단에 색
중국 왁황이 곤륜산에 이르러 서왕모를 만나 요지에서 벌린 잔치 장면을 그린 요지연도이다. 화려한 청록산수를 배경으로 서왕모와 주 옥황, 춤을 추는 선녀들을 그렸고, 왼쪽에는 잔치에 참석하기 위해 파도를 건너오는 신선의 무리들을 표현하였다. 오지연도는 조선후기 현세의 복을 구하고 장수를 기원하는 그림으로 널리 사랑받았다. <출처:중앙박물관>


해태와 기린, 작가 모름, 19세기, 종이에 색
상상 속의 동물인 기린과 해태를 복숭아나무와 함께 그린 그림이다. 기린은 육지에 사는 동물을 대표하는 신성한 동물로 수컷을 '기'라고 하고 암컷을 '린'이라고 한다. 기린은 이마에 긴 뿔이 하나 돋아 있는데 그 끝에는 살이 있어 다름 짐승을 해치지 않으며 풀도 밟지 않아 인자한 동물로 알려졌다. 해태는 해치라고도 불리며 물에 사는 동물이므로 화재를 방지하는 부적과 같은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좋은 의미를 지닌 동물과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 장수를 상징하며 진귀한 과일로 여겨진 복숭아나무를 함께 그려서 나쁜 것을 물리치고 좋은 것은 받아 들이고자 하는 바람을 나타내고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구름속의 용, 필자미상, 19세기, 종이에 색
용은 귀신과 재앙을 막아 주는 신통력을 발휘하는 존재이다. 천자를 상징하기도 하여 임금이 앉는 자리, 수레, 옷에 문양으로 장식되었다. 조선시대 용 그림은 대체로 구름이나 물 속을 배경으로 그려지고, 호랑이와 짝을 지어 힘을 겨루는 장면으로 다양하게 표현되었다. 이 그림은 아마도 정월초 궁궐이나 관청의 대문 등에 귀신과 재앙을 물리치기 위해 붙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먹구름 속에서 몸을 들어 하늘로 날아오르는 용의 모습은 활달하고 섬세한 황선으로 그려져 있어 힘차고 웅혼한 기상이 느껴진다. <출처:중앙박물관>


구름 속의 용, 19세기, 비단에 색.

용은 상상의 동물이다. 실재하는 동물이 아니기에, 인간의 무한한 상상력을 통해 재현되었으며, 고귀함과 신성한 힘을 가진 신수로 믿었다. 구름과 함께 표현되는 운룡도가 많이 그려졌으며, 운룡도는 벽사와 길상의 의미를 가지며, 비가 오기를 바라는 기우제에 사용되기도 하였다. 이는 다종다양한 용 중에서 비를 내리게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응룡의 상징성을 빌린 것이라 생각된다. 이 그림은 용을 그린 두 폭, 호랑이를 그린 두 폭의 총 네 폭 중 한 점이다. 용은 황,적,녹,청색을 진채로 사용하여 화려하게 표현되었으며, 동그랗게 뜬 두눈은 해악적으로 느껴진다. <출처:중앙박물관>


책거리, 19세기, 비단에 색. 이런 종류의 그림은 병풍으로 많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림이라기보다는 장식의 의미가 강한 성격을 가진 것으로 생각된다.

여러 칸의 서가에 고동기, 도자기, 꽃병과 서책, 붓 등 각종 문방구류를 진열한 모습을 그린 그림을 책거리 또는 책가도라고 한다. 책거리 그림에 등장하는 여러 기물들은 당시 문인들이 고동기 등 진귀한 물건들을 수집하여 즐겼던 취미를 보여준다. 이 그림에서는 책가나 서안 등 책과 기물을 올려놓은 가구가 생략되고 빈 공간에 서책과 고동기, 화분 문방구류 등이 그려졌다. 책가도의 표현형식은 초기에는 서가로 구획된 화면에 소재들이 좌우대치을 이루다가 점차 정물화처럼 자유로운 배치구도를 취하였다. 전체적으로 위에서 내려다본 시점으로 그려졌는데, 화면을 구성하고 있는 기물들이 거의 겹치지 않고 독립적인 공간을 차지하도록 배치되었다는 점과 작은 서책 위에 큰 서책을 올려놓아 불안하게 보이도록 구성한 점 등이 흥미롭다. 벼루를 표현 부분에서는 역원근법을 사용하여 뒤로 갈수록 크게 보이도록 그리기도 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책거리, 19세기, 종이에 색


책거리, 19세기, 작가 모름, 비단에 색
여러 칸으로 나누어진 서가에 고동기, 도자기, 꽃병과 서책, 붓, 벼루, 연적 등 각종 문방구류를 진열한 모습을 그린 그림을 책거리 또는 책가도라고 한다. 책거리 그림에 등장하는 여러 기물들은 당시 문인들이 고동기 등 진귀한 물건들을 수집하며 보고 즐겼던 취미를 보여주는 것들이다. 조선후기부터 그려지기 시작한 우리나라의 책거리 그림은 중국에서 명말청초의 그림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그림은 진귀한 골동품과 문방구류를 소재로 하여 새롭게 투시도법과 명암법을 사용하여 그렸다는 점에서 당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이 책거리 그림은 화면을 가득 채운 책가에 책과 기물들을 배치하고 다섯번째 폭 상단에는 인장을 그려 작자를 밝히고자 하였다. 이러한 점은 조선 말기의 대표적인 책거리 그림 화가인 이형록의 화풍과 유사하나 인장의 글씨가 불명확하여 작자를 확인할 수 없다. <출처: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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