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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관아

한국민속촌 관아, 용구현 동헌

younghwan 2011. 4. 24.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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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헌은 지방수령이 근무하던 지방장관이 공사를 처리하는던 공청으로 관아의 중심건물이다. 조선시대 지방행정조직은 종2품이 수령인 부(府)에서 종5,6품관이 수령인 현(縣)까지 다양한 규모의 고을이 존재했었다. 고을 수령의 명칭 또한 다양해서 부사, 목사, 군수, 현감, 현령 등 직위에 따른 이름들이 있었으며, 호칭이 통일되어 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고을 수령이 근무하던 장소인 동헌 건물은 가운데 대청마루로 된 정청이라는 넓은 공간이 있고, 그 양쪽으로 온돌방을 두고 있는데, 한쪽은 고을수령 집무실이라 할 수 있고, 다른 방은 손님을 맞이하는 접견실이다.

 용인 한국민속촌에 복원되어 있는 동헌 건물은 옛날 용인지역에 있었던 용구현 관아건물을 복원했다고 한다. 용구현은 현(縣)단위 고을 규모로 종5품인 현령 또는 종6품인 현감이 고을 수령으로 있었던 지역인데, 현재 복원된 동헌 건물을 실제보다 규모나 면적에 있어서 약간 과장된 느낌을 주고 있는 규모이다. 동헌 건물규모는 앞면 7칸으로 가운데 3칸은 공적인 업무를 보던 정청이며, 양쪽에 2칸씩 온돌방을 두고 있는 구조이다. 전체적으로 한칸의 폭이 넓게 만들어서 건물규모가 상당히 크게 보인다.


용인지역에 있었던 용구현 동헌을 복원했다고 하는 한국민속촌 관아 동헌건물이다. 앞면 7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이 건물은 칸사이의 폭이 넓어서 상당히 크게 지은 건물이다. 외국관광객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그랬는지(?) 실제보다 약간 크게 지었다는 느낌을 준다.


동헌 건물 가운데 3칸은 대청마루로 되어 있는 정청이고, 양쪽 2칸씩은 온돌마루가 깔린 방으로 되어 있다.


대청마루로 되어 있는 가운데 3칸을 정청이라고 부르며, 고을 수령이 하급관리들과 공식적인 회의를 하거나 재판 등 공식업무를 수행하는 공간이다.


동헌 오른쪽에는 앞면 2칸의 방이 있는데, 민원인이나 손님을 접견하는 접견실로 사용되었던 방이다.


동헌 오른쪽 온돌방은 2칸으로 되어 있는데, 고을 수령이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공간이다. 일반적으로는 이 방에서 있는 경우가 많으며, 겨울 난방비 등의 문제로 앞면 1칸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경우 동헌건물은 앞면 6칸이 된다.


동헌건물 앞쪽으로는 반칸규모로 툇마루를 달아놓아 공간이 상당히 넓다.


분합문을 걸어 놓아 시원한 느낌을 준다.


건물을 받치는 공포는 전형적인 익공양식을 하고 있다.


기둥을 받치는 주춧돌


동헌 뒷편 툇마루


동헌 건물을 복원할 때 빠지지 않는 형구들이 동헌마당에 전시되어 있다. 고을 수령에 대한 선입견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동헌 마당 한쪽에는 방위를 표시한 표지석이 있다.


동헌 출입문이 등원문. 양쪽으로 내행랑채 건물들이 연결되어 있다.


등원문을 들어서면 양쪽에는 내행랑채 건물들이 있다. 이 건물들은 주로 하급관리들이 근무하던 방과 부엌, 창고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방과 부엌으로 구성된 내행랑채


행랑채 대청마루에 전시된 하급관료들의 모자


행랑채에 있는 방과 부엌. 우리나라 관아 건물들을 보면 부엌이 많다는 것이 또다른 특징 중 하나이다.


동헌과 내아를 연결해 주는 통로. 아마도 구한말 건축에서 많이 사용된 건물양식으로 생각된다.


동헌 뒷편에는 부근당이라는 사당이 있단. 무속신앙이 관청과 결합된 모습을 보여주는데, 무신으로 승화된 역사적인물이나 산신, 장군신 등을 모신다.

부근당


부근당은 지방장관이 백성들을 위한 원활한 정무와 자신의 영달, 관내의 태평과 풍작 등을 기원하는 신당으로 지방장관이 새로 부임을 해 오면 가장 먼저 이 신당에 들러 참배를 한다. 부근당에는 무신으로 승화된 역사적 인물이나 산신, 장군신 등을 모시고 있는 무속신앙과 결합된 관청내의 독특한 신앙형태이다. 무신도와 남근석, 제단이 구비되어 있다. <출처:한국민속촌>

 


동헌 옆으로는 옥사가 있다.


한국민속촌 옥사는 우리나라 사극에서 많이 등장했던 장소가 아닐까 생각된다. 보통 옥사는 형방청 건물과 같이 있는 것으로 생각되며, 실제로 현단위 작은 고을에서는 큰 옥사를 두고 있지 않았던 것 같다. 이 또한 약간 과장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옥사내부의 모습


옥사는 일반죄인, 여자죄인, 중범죄인으로 구분하고 있다.


조선시대 형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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