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는 고려시대 이래로 국방상 중요한 고을로 종3품인 강화유수가 고을수령이었던 도호부가 설치된 고장이다. 조선후기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 굴욕을 당한 이후에는 그 중요성이 더욱 커져서 관아가 있던 강화읍내에는 산성이 구축되었으면, 바깥쪽으로는 외성이, 해안에는 돈대가 설치되었고 관아가 있었던 곳에는 비상시를 대비하여 행궁이 설치되었다.
강화유수가 관리하던 강화향교는 고려 인종 5년(1127)에 고려산 남쪽에 세워졌던 것을 갑곶리, 서도면 등으로 이전했다가 1731년 강화유수 유척기가 현재의 위치인 강화읍 관청리로 옮겼다고 한다. 강화는 국왕이 국방상 매우 중요시하던 고장으로 서원이 많이 설치된 다른 지역과는 달리 서원이 지역 여론을 조성하고 교육을 담당하는 기능을 하지 않고, 공교육기관이 강화향교에서 전담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 강화향교에는 대성전.명륜당.내외 삼문이 있는데, 복원 공사가 한창 진행중인 것으로 보인다. 그 중 대성전은 앞면 5칸, 옆면 3칸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데 다른 지역의 향교에 비해서는 규모가 큰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복원공사가 한창 진행중인 강화향교 전경. 외삼문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새로 복원할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뒷편 대성전과 동.서무, 내삼문은 원래의 모습이고 앞쪽으로 유생들이 기숙사인 동.서재로 새로이 복원하고 있다.
옛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강화향교 외삼문과 담장.
내삼문 뒷편으로 앞면 5칸의 상당히 큰 규모의 대성전 건물이 보인다.
최근에 복원한 것으로 보이는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 앞면 6칸으로 상당히 큰 규모로 복원해 놓고 있다.
복원작업이 한창 진행중인 서재
지금의 강화향교 출입문. 삼문의 형식을 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서 중문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강화향교 뒷편에 있는 강화여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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