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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박물관] 능산리 절터 출토유물에서 보여지는 백제의 대외교류

younghwan 2012. 6. 5.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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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제는 성왕대에 수도를 사비로 옮기고 중국 남조의 양나라와 빈번하게 교류하면서 중국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양나라 무제를 위한 대통사를 창건하였으며 유학에 정통한 학자와 장인,화가 등을 초빙하기도 하였으며, 불교경전 들을 얻어 오기도 했다. 성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능산리사지에는 당시 중국과의 교류를 나타내는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는데 이는 중국 남조와 백제와의 교류가 성왕의 아들인 위덕왕대 이후에도 이어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능산리 절터에서는 수당의 영향을 받은 흑갈유 벼루나 자기편을 비롯하야 남조에서 많이 사용한 호자, 서역과 북위에서 많이 만들어진 소조상을 비롯하여 서역에서 수입한 것으로 보이는 유리제품들도 출토되고 있다. 

 또한 능산리절터에서는 백제에서 사용된 항아리, 사발, 등잔, 접시 등 다양한 토기들이 출토되고 있으며, 중국의 자기를 모방하여 칠을 입힌 토기들이나 표면에 글자가 새겨진 것도 출토되고 있다. 이들 토기들은 고분에서 출토된 것과는 달리 실생활에 사용했던 것들로 보이며, 주로 사찰에서 사용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능산리 절을 통해 본 백제의 국제성
능산리사지에서 출토된 국제적 성격의 유물은 사비시기의 대외교류 양상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중국의 영향을 받은 유물로는 수당대의 흑갈유 벼루 다리편.흑갈유 자기편.개원통보가 있고 남조시기의 호자나 북위 양식인 소조상과 토제장식도 나타나고 있다. 또한 모방품으로는 녹유자기나 칠토기를 들 수 있다. 고구려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는 풍경판, 연통형 토기, 표면을 단단한 도구로 눌러 시문한 암문토기가 해당된다. 이밖에도 갈색의 나뭇결 무늬가 있는 유리와 파란색 유리편은 서역에서 수입한 것으로 보인다. <출처:부여박물관>



개원통보(북쪽 회랑지), 유리제품, 부여 능산리 절터


흑갈유 자기 조각, 부여 능산리 절터


호자, 녹유 자기조각, 칠토기, 압문토기, 부여 능산리 절터


능산리 절터 토기 이야기
능산리사지에서 출토된 토기는 기종별로 항아리, 사발, 등잔, 자배기, 전달린토기, 벼루, 연통형토기, 접시, 뚜껑, 병, 삼족토기, 기대, 시루 등이 있다. 항아리는 짧은목항아리가 대부분이며, 사발은 표면에 흑색칠을 입힌 것이 많다. 벼루는 다리형태가 받침모양인 것과 다리모양인 것이 모두 확인된다. 뚜껑은 형태가 몹시 다양하다. 등잔은 대부분 심지받침이 없으며, 사슴기름을 많이 사용하였다. 토기 표면에 글씨나 부호를 새긴 것도 관찰된다. 능산리사지에서 출토된 토기류는 567년 하한인 사비 전기의 최하층 출토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6세기 후반에서 7세기로 편년된다. <출처:부여박물관>


연통모양 토기, 그릇받침, 부여 능산리 절터


벼루,


전달린 토기, 부여 능산리 절터


그릇받침, 부여 능산리 절터


세발토기, 굽다리접시, 부여 능산리 절터


'정'자명 토기, '합'자명 토기, '회곤'자명 토기, '전'자명 토기, 부여 능산리 절터


장군, 사발, 부여 능산리 절터


등잔, 손잡이, 부여 능산리 절터


병, 작은 항아리, 부여 능산리 절터


주구달린 항아리, 곧은목 항아리, 부여 능산리 절터


뚜껑, 부여 능산리 절터


항아리, 부여 능산리 절터


시루, 곧은목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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