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압지는 통일신라시대 신라 궁궐의 후원 연못으로 백제 사비성의 궁낭지, 경복궁의 경회루 연못, 향원정 연못과 비슷한 성격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삼국사기> 기록에는 문무왕 14년(674)에 궁궐 안에 연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화초를 심고 짐승과 새를 길렀다고 한다. 연못은 동서 200m, 남북180m로 서남쪽은 직선형인데 반해 북동쪽은 들쭉날쭉한 곡선으로 되어 있으며 무산12봉을 상징하는 연덕을 조성해 놓고 있다. 또한 발해만 동쪽에 있다는 삼신도를 본떠서 만든 크고 작은 3개의 섬이 연못안에 배치되어 있다. 안입지는 신라가 멸망한 이후 동궐 건물들의 잔해들을 연못속에 버리고 폐허가 되어 연못에는 갈대밭만 남아 있어 기러기와 오리가 노는 곳이라하여 조선시대 선비들이 안압지라 불렀다고 한다.
안압지는 1975년부터 2년 동안 이 연못을 발굴조사한 결과, 여러가지 기와를 비롯하여 건축부재와 장식물, 금동여래삼존상을 비롯한 금동불상, 당시 생활상을 보여주는 그릇을 비롯한 생활용품, 당시 문자생활을 보여주는 목간 등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안압지는 인공적으로 조성한 연못으로 물을 끌어들이는 입수부에는 두개의 수조를 설치하였고, 북동쪽에는 물이 빠져나가는 출수구를 두었었는데, 출수구를 막았던 나무 마개가 발굴조사 때 출토되었다. 또한 연못 뻘 속에 묻혀 있던 당시 신라사람들이 연못에서 이용했던 나무로 만든 통나무배가 함께 출토되기도 하였다.
인공연못 안압지
안압지의 남서쪽 호안은 직선인데 반해 북동쪽 호안은 들쭉날쭉한 곡선으로 되어 있어, 어디에서건 연못의 전경을 볼 수 없다. 이것은 임해전이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듯, 이 연못을 바다로 보고자 했던 설계때문으로 보인다. 이 연못의 동남쪽 모서리에는 연못에 물을 대는 시설인 두개의 수조가 있는데, 수위 조절과 함께 물의 낙차를 이용, 산소를 연못에 공급함으로써 수질의 부패를 방지하는 효과를 거두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북쪽에는 장석에 4개의 구멍을 뚫어 물을 빼는 배수 시설이 당시의 나무물마개가 꽃힌채로 발견되었다. <출처:경주박물관>
배. 연못 동쪽의 호안 석축 앞에서 뒤집힌 채 발견되었다., 세쪽의 나무를 통째로 파낸뒤 이물과 고물쪽 뱃바닥에 참나무 각재를 가로질러 조립하였다. 이 배는 통나무배에서 나무판을 이어 붙여서 만드는 배로 넘어가는 중간단계의 형태이다.
경주박물관 안압지관 중앙 로비에 전시되어 있는 안압지에서 출토된 통일신라시대 배. 안압지 연못 뻘속에 묻혀 있어서 그 형태가 남아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안압지는 통일신라의 궁원지
<삼국사기>의 문무왕 14년(674) 2월조에 궁궐 안에 연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화초를 심고 진귀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지금의 안압지이다. 기러기와 오리가 노닐고 있는 연못이라는 뜻의 안압지는, 본래의 명칭이었던 월지가 잊혀지고 조선시대에 붙여진 이름이다. 1975년부터 2년 동안 이 연못을 발굴조사한 결과, 여러가지 기와를 비롯한 건축관련 부재 및 장식물들, 불상, 불교 관련 공예품들, 실제 생활에 사용했던 그릇들이 출토되었다. <출처:경주박물관>
경주박물관 안압지관에 전시되어 있는 안압지 모형
경주 안압지 전경. 궁궐건물이 있었던 서쪽편은 높은 석축을 쌓아 놓아 직선적인 느낌인데 반해 동쪽편은 크고 작은 섬들과 굴곡을 많이 주어서 바다같은 느낌을 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경주 안압지 야경
나무물마개, 안압지 북쪽에는 장석에 4개의 구멍을 뚫어 물을 빼는 배수 시설에서 발견된 통일신라시대에 사용했던 나무물마개이다.
안압지 배수시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안압지 북동쪽 연못가
안압지 동남쪽 모서리에는 있는 연못에 물을 대는 시설인 두개의 수조.
수조의 물은 작은 폭포를 이루면서 연못으로 물을 흘려 보내고 있다. 이는 수위 조절과 함께 물의 낙차를 이용, 산소를 연못에 공급하여 물고기를 비롯하여 생물들이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물이 썩는 것을 방지하고 있다.
동물뼈
안압지에서는 소.말.돼지.개.노루.산양.사슴.멧돼지, 그리고 꿩.오리.닭.거위.기러기 등의 조루뼈가 많이 출토되었다. 이것은 "궁안에 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진귀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이 사실임을 뒷받침해 준다. 이러한 동물 뼈들은 당시의 자연환경과 동물을 연구하는 데에 아주 귀중한 자료이다. <출처:경주박물관>
산양뼈, 맹금류뼈, 기러기뼈, 꿩뼈
사슴뼈, 노루뼈, 개뼈
안압지 동쪽편에 조성된 크고 작은 섬들과 정원에 지금의 동물원처럼 짐승을 길렀을 것으로 보인다.
명문 있는 큰 항아리. 곡식이나 물을 저장했던 항아리로 보인다. 목부분에 가는 침선으로 <심석입옹>으로 보이는 글자를 새겼다. <십석입옹>이란 10석에 해앙하는 양이 들어갈 수 있는 항아리라는 뜻이다. 1석(52ℓ)은 15두, 1두(350㎖)는 10승이었다. 이 명문은 신라시대 도량형 이해에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출처:경주박물관>
경주박물관 안압지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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