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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의 파라오 투탕카멘 특별전, 파라오의 전차와 휘장

younghwan 2012. 11. 22.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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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탕카멘의 무덤에는 황금마스크와 황금관 등 많은 보물이 묻혀 있었다. 무덤에 묻힌 보물 중 이집트를 대표하는 유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신왕국시대에 사용한 마차가 실물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무덤에서는 모두 여섯대의 전차가 해체된 상태로 전실이 놓여 있었다고 한다. 그 중 3대는 행진용, 3대는 사냥용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집트에서 전차는 힉소스시대 이후에 근동지방에서 들어온 새로운 기술이다. 전차를 타면서 쏘는 강력한 복합궁과 함께 전쟁의 혁신을 가져왔던 기술적인 진보라 할 수 있다. 힉소스로부터 전래된 전차와 복합궁은 강력한 왕의 무력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으며, 이집트 벽화의 다양한 전투장면에서 전차를 탄 왕의 모습이 묘사되고 있다.

 무덤에는 전차를 비롯하여 인상적인 유물로는 왕이 앉았던 의자와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다양한 휘장들이 발견되었다. 그 중 이집틀 파라오를 상징하는 휘장인 도리깨와 홀은 수많은 벽화나 그림 등에서 등장하는 전형적인 파라오의 모습을 상징하지만, 실물로는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발견된 것이 유일하다고 한다. 또한 왕의 의자에 부조로 장식된 그림은 투탕카멘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그림 중 하나로 부인 아케세나멘이 남편인 투탕카멘의 어깨에 향유를 발라주는 장면을 만화처럼 정겹게 묘사하고 있다.

무기, 기술과 장인정신
근동 지방에서 개발된 전차는 힉소스 시대(기원전 1650년경)전까지는 이집트에 정착하지 않았던 것 같다. 전차 부대는 이집트 신왕국 시대의 군대에 새로운 차원의 이동성과 효율을 가져다 주었다. 가벼운 바퀴 두 개가 튼튼하게 달린 이 전차는 운전자와 궁수 두 명만 탈 수 있었다. 따라서 파라오가 고삐를 엉덩이에 두르고 전속력으로 전차를 몰면서 활시위를 힘껏 당기는 모습은 전혀 현실성이 없는 것이라 하겠다. 투탕카멘의 무덤에는 여섯 대의 전차가 해체된 상태로 있었다. 무덤에 들어갈 수 있도록 전차 몸체를 분리한 것인데 그 중 다섯 대는 지금 다시 조립되어 있다. 이중 세 대는 행진용으로, 다른 것들은 사냥용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이 마차들은 당시 특별한 방식으로 제작됐는데, 각 수레바퀴에는 바퀴살이 6개씩 있었다. 아르마나 시대에 왕의 마차 퍼레이드는 태양신이 하늘을 가로 질러 가는 행로른 나타내는 것으로 여겨졌다. 품질 좋을 활은 여러 겹의 나무, 뿔, 가죽을 풀로 붙여 만드는데 마차에서 궁수들이 사용하는 주요 무기였다. 투탕카멘은 어린시절에는 더 작은 활을 사용했다. 무덤 현실에는 전통적인 장례용품으로서 단단한 나무로 만든 단순한 활들이 많이 발견됐다. <출처: 신비의 파라오 투탕카멘 특별전>


전차 멍에와 멍에 안장의 복원을 묘사한 카터의 스케치


전차를 만드는 직공들


왕의 전차, 석고가루와 금박을 입힌 나무에 유리와 보석을 상감,
이 금박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전차는 왕이 사용하던 공식전차다. 몸체를 둥글게 휘어진 나무로만들고, 그 위에 석고와 금박을 입혔다. 전차 바닥은 서로 엇갈리게 짠 가죽끈의 그물망을 만들었다. 몸체는 바깥부분이 소용돌이 무늬로 동그라미 처져 있고, 가운데 부분은 백합모양으로 갈라졌음, 윗부분은 네 왕의 이름을 새겨 넣는 것으로 마감했다. 몸체 안쪽 중앙의 왕 이름 및 장식널에는 상하 이집트의 통일을 상징하는 이미지가 화려하게 그려져 있다. 양쪽에 결박한 포로가 보이고 그 밑으로 꿇어앉은 포로들을 형상화한 프리즈가 장식돼 있다. 프리즈에는 스핑크스 형상을 한 투탕카멘이 포로들을 지키고 있다. 전차의 굴대는 금속상감으로 덧댔으며, 양끝에 여섯 개의 살로 이루어진 바퀴가 달렸다. 뒤로 뻗은 멍에의 끝부분은 포로들의 형상이 조각되어 있다. <출처: 신비의 파라오 투탕카멘 특별전>


왕의 전차.


매 모양의 전차 부착물, 석고가루와 금박을 입힌 나무
태양원반을 쓰고 있는 이 매 모양의 부착물은 전차의 한 가운데에 있는 기둥에 붙어 있다. 매의 신 호루스가 왕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왕의 수호자이기 때문에 이 매 모양의 부착물은 전차를 지키는 위엄있고 신성한 후원자 역할을 한다. 태양 원반은 투탕카멘의 왕명인 네프-케페루-레를 색다르게 나열하는 방식으로 장식되어 있다. <출처: 신비의 파라오 투탕카멘 특별전>


사자 두마리를 죽이는 장식과 스핑크스로 변신한 왕이 있는 방패.

사자 두마리를 죽이는 장식이 있는 방패, 나무와 금
의식용 방패를 사이에 두고 투탕카멘 왕은 한꺼번에 덤비는 사자 2마리를 죽이고 있다. 왕 자신도 사자의 모습으로 표현될 수 있지만, 투탕카멘이 여기서 잡는 동물은 사막의 동물로 상징되는 혼돈과 이집트의 적을 상징한다. 적군과 아군이 보이는 언덕 풍광을 '이국'을 상징하는 상형문자로 바꿔 표현한 것이다. 방패에 새겨진 내용을 보면 왕을 전생신 몬투에 비유하고 있으며 왕의 뒤에는 북부 이집트의 수호여신 네크벳이 싸우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출처: 신비의 파라오 투탕카멘 특별전>

스핑크스로 변신한 왕이 있는 방패, 나무와 금
이 방패에서 투탕카멘은사즈이 몸과인간의 머리를 한 스핑크스 형상을 하고 있다. 그리고 상이집트와 하이집트의 왕관을 결합한 이중 왕관을 쓰고 있다. 테베의 전쟁신 몬투의 힘을 왕에게 부여한다는 내용의 상형문자가 방패에 적혀 있는 것을 보면, 검은 피부의 누비아인 두명을 짓밟고 있는 스핑크스가 바로 투탕카멘임을 알 수 있다. <출처: 신비의 파라오 투탕카멘 특별전>


발 받침대가 있는 투탕카멘의 옥좌, 금박을 입힌 나무에, 은, 설화석고, 유리와 준보석 등으로 상감처리
이 유명한 옥좌의 등받이에 새겨진 왕의 이름은 투탕카멘이 아홉살에 왕위에 올랐으며 당시에는 아직 투탕카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는사실을 보여준다. 의자 등받이의 장면은 아마르나시대의 종교적 전통에 따라 생명을 주는 어떤 태양 아래 있는 국왕 부부를 묘사하고 있다. 여기 쓰인 왕의 이름은 후에 '아멘'이 붙어 투탕카멘으로 수정됐다. 그림에서 투탕카멘은 편안한 자세로 기대어 쉬고 있고, 그의 아내 안케세나멘은 옆에서 남편의 어깨에 향유를 발라주고 있다. 나무 발 받침대는 푸른 파이앙스로 상감처리 되어 있다. 받침대에는 세 명의 누비아인과 다른 세 명의 근동지방 사람들이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파라오의 발밑에 굴복한 이국의 우두머리를 나타내고 있다. <출처: 신비의 파라오 투탕카멘 특별전>


의자에는 이집트 그리 중에서도 유명한 장면인 안케세나멘이 남편인 투탕카멘의 어깨에 향유를 발라주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푸른색으로 상감처리된 발받침대. 세명의 누비아인과 다른 세명의 근동지방 사람들이 그려져 있는데 파라오의 발밑에 굴복한 이국의 우두머리를 나타내고 있다.


의자 뒷편의 장식. 뱀으로 보이는 조각상과 파피루스 등이 묘사되어 있다.


의자 뒷편 부채의 장식

권력의 휘장, 신에 의한 대관식
투탕카멘의 부채와 지팡이에는 장식이 많고 왕권을 상징하는 장식물이 붙어 있었지만, 일상생활에서도 사용됐다. 그러나 왕관, 옥좌와 홀 등은 대관식 때 신이 직접 왕에게 하사하는 것이었기때문에, 이집트 백성들은 그것들이 신성한 왕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특별한 힘을 주는 것이라 믿었다. 투탕카멘의 무덤에서는 도리깨 두 개와 갈고리형 홀 세 개가 발견됐다. 도리깨 홀은 오늘날까지 보존되고 있는 유일한 진품이다. 왕이 쓰던 왕관은 무덤에 넣지 않았는데, 이는 신성한 국가의 물건으로 현재 통치를 하는 왕만이 착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라가 쓴 왕관은 깃털모양의 금 장식물을 달았는데, 이는 남성 신이 착용하는 '깃털옷'에 해당하는 것으로 왕의 신성한 지위를 강조하는 상징물이었다. 백성들의 매장 관습은 왕실의 예를 그대로 모방했는데, 이는 민간 장례 행렬에 왕의 휘장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런 의식의 목적은 내세에서 신성한 지위를 얻는 것인데, 이 신성한 지위는 고왕국에서는 오직 왕에게만 부여되었던 것이지만 후에 모든 사람들이 간절히 원하게 되었다. <출처: 신비의 파라오 투탕카멘 특별전>


통치자 왕의 이미지가 있는 오스트라콘


아시아와 누비아 죄수들이 그려진 지팡이.


지팡이 끝에 아시아인과 누비아인 모습이 인형이 붙어 있다.

아시아와 누비아의 죄수들이 그려진 지팡이, 금박을 입힌 나무에 상아와 흑단으로 상감처리
이 지팡이의 곡선형 손잡이 끝부분에는 적군 포로 2명의 형상이 그려져 있다. 낯이 창백하고 뾰족한 수염이 난 남자는 아시아인인 들 보이며, 피부가 검고 곱슬 머리의 두번째 사람은 누비아인을 묘사하고 있다. 고대 이집트의 적들은 주로 동쪽에 아시아인, 남쪽에 누비아인, 서쪽에 리비아 인들이 있었다. 이러한 죄수들의 형상은 파라오의 권력과 지배를 나타낸다. 어린 투탕카멘은 실제로 전쟁에 참여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모습은 아마도 실제와는 무관한 듯하다. <출처: 신비으 파라오 투탕카멘 특별전>

누비아 죄수가 그려진 막대, 상아와 흑단으로 상감처리
이 막대는 사자 머리를 한 의식용 침상의 맨 위에, 다른 막대들과 함께 놓여 있었다. 막대에서 갈고리 형태의 끝부분은 누비아 사람을 묘사하고 있는데, 파라오가 이 막대를 사용할 때 말 그대로 자신의 적을 '엄지 손가락 밑에' 두었던 셈이다. <출처: 신비의 파라오 투탕카멘 특별전>


홀과 아동용 도리깨. 이집트 파라오의 전형적인 휘장이다.

홀, 나무, 금, 준보석 파앙스, 유리
이런 형태의 홀은 사원의 재물 축성식에서 왕이 사용했다. 현재 남아 있는 다섯 개의 장부는 제물로 바쳐진 소와 이미 토만난 소가 기록되어 있다. 소의 고기는 매일 제사 때 제물로 바쳤다. 홀의 다른쪽은 정교한 황금 상형문자로 장식되어 있다. 투탕카멘의 얼굴을 '아텐처럼 빛나는'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묘사하는 동시에 그를 '아멘 신의 아들'로 부르고 있다. 이는 투탕카멘의 초기 통치시설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며, 이 때 아케나텐의 태양신 '아텐'의 이름과 투탕카멘이 복위한 '아멘'을 동시에 사용해 조정을 꾀하려는 시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출처: 신비의 파라오 투탕카멘 특별전>

아동용 도리깨와 홀,
도리깨와 갈고리 모양의 홀은 파라오의 전형적인 휘장이다. 그러나 유일하게 현존하는 신왕국 시대의 유물은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나온 것들이다. 머리의 휘장과는 별도로, 두개의 갈고리 모양 홀과 두 개의 도리깨가 발견됐다. 이것은 다른 것과 비교했을 때 크기가 작으며 아홉살에 즉위한 어린 왕의 대관식에 사용했던 것이다. 작은 홀에는 옛 이름인 투탕카멘이 새겨져 있다. <출처: 신비의 파라오 투탕카멘 특별전>


왕의 작은 조각상과 의식용 낫

왕의 작은 조각상,
왕의 작은 조각상 위에 있던 두 개의 막대는 아마포로 싸여 있었고 두 개의 바깥 사당 사이에서 발견됐다. 은으로 만들어진 하나는 지친 얼굴에 주름살로 눈가가 늘어진 늙은 왕의 모습을 묘사했다. 금으로 된 하나는 크고 생기 있는 눈을 가진 빛나는 왕의 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금과 은의 재료, 왕의 젊은 모습과 늙은 모습, 그리고 물품들이 발견된 장소인 관 주변 등은 모두 그 막대가 장례용 도구임을 나타내는 거이다. 저승에서 왕이 살아나 부활하기를 바랬던 것처럼, 이는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태양(금)과 달(은)의 행로를 특징적으로 보여준다. <출처: 신비의 파라오 투탕카멘 특별전>

의식용낫, 나무, 금, 합금, 유리, 방해석
투탕카멘의 무덤에는 일상용 연장과 의식용 연장이 있었다. 의식용 낫은 가장 아름답고 정교하게 장식되어 있다. 곡식을 자르는 일상용 낫은 나무 손잡이와 수석 날로 만들어졌다. 이것은 의식용이며 금, 합금에 상감처리해 장식했고 날은 색색이 유리로 만들었다. 왕을 포함해 죽은 자들은 모두 내세에 농사를 짓고 자급자족해야 했다. 제례가 끝나고 제례를 치른 하인들이 피곤해 쓰러지면 투탕카멘은 이 낫을 사용해 자신의 곡식을 수확할 수 있었을 것이다. <출처: 신비의 파라오 투탕카멘 특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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