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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박물관] 신라와 가야의 토기

younghwan 2013. 4. 22.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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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흙을 물에 섞어 빚은 후 불에 구워서 만드는 토기는 신석기 시대 이후 오늘날까지도 사용되고 있는, 금속제 도구와 함께 인류가 사용해온 대표적인 생활도구이다. 토기는 농경생활을 기반으로 하면서 식량이나 물을 저장하는 용기로 사용되었으며 신석기시대 이래로 끊임없이 사용되어왔고,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 왔기때문에 고고학에서는 토기의 형태로 연대를 추정하는 방업이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삼국시대 신라의 토기는 4세기 후반 구멍을 뚫은 굽다리토기가 출현하면서 본격적으로 발전하게 되는데 이 시기에는 물레를 이용하여 형태를 빚은도 고온으로 밀폐된 가마에서 구워서 얇고 단단한 그릇을 만들수 있게 된다. 신라의 토기는 경주에 있는 많은 고분들에서 껴묻거리로 만들어진 것들이 출토되고 있는데 특히 4~6세기 지배계층의 무덤인 돌무지덧널무덤에서 다량으로 출토되고 있다. 삼국시대 신라의 영토였던 경북지역에서 원삼국시대부터 지방세력이 존재했던 낙동강 주변 지역이나 경주와 가까운 경산지역 등에서 토기들이 출토되고 있으며, 대가야 영역이었던 고령, 달성지역에서는 가야의 토기가 출토되고 있다.

신라와 가야의 토기
신라토기
신라지역에서 출토되며 토기의 색상과 질에 따라 회청색 도질토기, 적갈색 연질토기로 나누어진다. 도질토기는 굴가마에서 약 1,200℃의 온도로 구워졌으며, 두께가 얇으면서 두드리면 쇳소리가 날 정도로 단단하다. 신라토기는 형태가 다소 직선적인 것이 특징이며, 굽다리의 네모난 굽구멍이 아래위로 서로 엇갈리게 뚫렸다. 주요 형태로는 굽다리접시, 목단지, 그릇받침, 단지 및 거북, 오리 등의 모양을 본떠 만든 토기 등이 있다. 연질토기는 한뎃가마에서 구워진 토기로 깊은 바리, 시루, 뚜껑 등이 있다. 가야토기 가야지역에서 출토되며 토기의 색상과 질은 신라토기와 거의 같다. 가야토기는 신라토기에 비해 다소 곡선적이며 두께가 두꺼운 편이다. 굽다리접시의 깊이가 깊지 않고, 굽다리의 구멍배치가 아래위로 일렬로 뚫렸다. <출처:대구박물관>


항아리.그릇받침(상주 헌신동, 삼국시대), 항아리.그릇받침(칠곡 심전리, 삼국시대)


원통모양그릇받침(상주 병성동, 삼국시대), 원통모양그릇받침(성주 성산동, 삼국시대)


뚜껑굽다리접시(김천 양천리, 삼국시대)


뚜껑굽다리접시(김천 삼성리, 삼국시대), 뚜껑굽다리접시(김천 모암동, 삼국시대), 뚜껑굽다리접시(달성 문산리, 삼국시대)


바리모양그릇받침(구미 황상동, 삼국시대), 바리모양그릇받침(대구 두산동, 삼국시대)


뚜껑굽다리접시(칠곡 심천리, 삼국시대), 뚜껑굽다리접시(대구 불로동, 삼국시대), 뚜껑굽다리접시(경산 임당동),


말머리장식고배(경산 임당동, 삼국시대)


원통모양그릇받침(달성 현풍, 삼국시대)


뚜껑 굽다리접시(대구 두산동, 삼국시대), 뚜껑굽다리접시(대구 내당동, 삼국시대), 뚜껑굽다리접시(경산 임당동, 삼국시대)


바리모양그릇받침(고령 괘빈동, 삼국시대), 화로모양그릇받침(고령 쾌빈동, 삼국시대)


원통모양그릇받침(달성 문산리, 삼국시대)


바리모양 그릇받침(고령 지산동, 삼국시대), 바리모양 그릇받침(칠곡 심천리, 삼국시대)


뚜껑굽다리접시(고령 지산동, 삼국시대),


뚜껑굽다리접시(고령 지산동, 삼국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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