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인정전은 임진왜란 때 경복궁이 불타 버린 이후 구한말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기까지 조선후기 정치의 중심이 되었던 창덕궁의 정전이다. 인정전은 태종 이방원이 상왕이 되었을 때 거처할 궁전으로 창덕궁이 건립될 때 정전으로 세워진 건물로 당시에는 앞면 3칸의 크지 않은 규모였다. 임진왜란때 경복궁과 함께 불타버린 것을 궁궐 정전의 형식에 맞게 현재의 규모로 앞면 5칸의 2층 건물로 중건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순조대에 화재로 불타버린것을 중건한 것이라고 한다. 인정전은 일제강점기에 순조가 거처하는 궁궐의 정전으로 바뀌면서 내부에 마루를 깔고 전등을 설치하였다고 한다. 인정전은 궁궐 정전으로 인정문과 회랑으로 둘러져 있어 조정의 형태를 갖추고 있지만, 원래 상왕이 머무는 이궁으로 건립한 까닭에 경복궁에 비해서 인정전 앞 마당과 회랑의 규모는 약간 좁은 편이며, 편전과 내전이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지 않다. 경복궁 근정전이 약간은 위압적이고 웅장한 면을 보여준다면 창덕궁 인정전은 편안한 느낌을 주는 건물이다. 인정전은 왕이 거처하던 곳이 아니라 왕의 공식적인 행사를 거행하던 의식의 공간이다. 경복궁 근정전과 함께 조선의 대표전인 법궁의 상징적인 건물이라 할 수 있다.
국보 225호로 지정된 인정전은 앞면 5칸, 옆면 4칸으로 외관상 2층 건물을 하고 있으며, 지붕을 받치는 공포는 화려한 다포계 공포를 하고 있고, 용마루에는 대한제국의 상징인 오얏꽃문양을 새겨 놓고 있다. 궁궐 정전으로 건물은 2층 월대 위에 세워져 있으며, 월대에는 4마리씩 석수가 새겨진 계단을 두고 있고, 계단에는 봉황이 새겨진 답도를 설치해 놓고 있다. 조선시대 궁궐 정전 건물의 모범이 되는 건축물로 흥선대원군이 근정전을 중건할 때 이 건물을 참조하였다고 한다.
창덕궁 정전인 인정전. 앞면 5칸에 2층 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대표적인 조선시대 궁궐의 정전이다. 원래 태종 이방원을 위한 이궁으로 건립된 인정전은 앞면 3칸의 크지 않은 건물이었으나, 임진왜란 이후 국왕이 창덕궁에 거처하기 위해 궁궐 정전답게 웅장하게 지었다.
창덕궁 인정전과 품계석이 세워진 조정 마당. 창덕궁은 경복궁과는 달리 정문, 정전, 편전, 내전이 일자로 배치되어 있지 않고, 자연환경에 맞게 유연한 건물 배치를 하고 있다. 원래 상왕을 위한 이궁으로 건립되어서 경복궁 조정에 비해서 좁은편이며, 상대적으로 인정전이 크게 보인다.
인정전은 앞면 5칸, 옆면 2칸에 2층으로 된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이다. 화려함을 배제한 다른 건물들과는 달리 화려하고 웅장하게 지어진 건물이다.
건물은 2층 월대 위에 세워졌으며, 삼도의 형식을 갖춘 계단을 중앙에 설치해 놓고 있다. 각 계단에는 4마리의 석수를 배치해 놓고 있으며, 가운데에는 국왕의 가마가 지나가는 답도에 소맷돌을 설치했다.
계단 답도의 소맷돌과 석수. 소맷돌에는 2마리의 봉황을 새겨 놓고 있다.
월대 양쪽에 설치된 계단
인정전 2층 월대.
월대 모서리에 설치된 화재를 예방하고자 하는 상징적 의미가 있는 드므
인정전 월대에서 내려다 본 인정문과 조정 마당.
인정전 현판
지붕을 받치기 위한 공포는 기둥 사이에 2개의 공포를 추가하고 있는 다포계 공포를 하고 있으며, 겹처마에 단청으로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인정전은 궁궐 정전으로 웅장함과 화려함을 강조하여 화려한 솟을빗살창을 하고 있다.
지붕 추녀마루의 잡상들
외관과는 달리 인정전 내부는 개방된 공간을 하고 있으며, 가운데 지붕이 있는 닫집에 어좌가 있다. 어좌 뒤에는 나무로 만든 곡병이 있고 그 뒤에는 일월오악도가 그려진 병풍이 있다. 일월오악도는 왕과 왕비를 상징하는 해와달, 우리나라 동.서.남.북.중앙의 다섯산을 상징하는 오악이 그려져 있다.
인정전 천정. 경복궁 근정전 천정에는 용이 새겨져 있는데 반해 이곳에는 2마리의 봉황이 새겨져 있다.
인정전 내부 바닥에는 원래 전돌이 깔려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순조가 창덕궁에 머물 때 마루를 깔고, 전등을 설치했다고 한다.
인정전은 다른 궁궐 건물들과는 달리 창문을 설치해 두고 있는데, 이또한 일제강점기에 설치한 것이라고 한다.
2008년 인정전
2012년 인정전
인정전은 창덕궁의 중심 건물로 조정의 각종 의식과 외국 사신 접견 장소로 사용하였으며, 신하들이 임금에게 새해 인사를 드릴 때에도 이곳을 이용하였다. 또한 왕세자나 세자빈을 결정하였을 때나 국가의 커다란 경사가 있을 때에도 왕이 인정전으로 나아가 신하들의 축하를 받았다. 태종 5년(1405)에 창덕궁을 세우면서 함께 지었는데, 그 뒤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쳤다. 지금 있는 건물은 순조 4년(1804)에 다시 지은 것이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4칸의 2층 건물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보았을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으로 2층의 높은 기단 위에 세웠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밖으로 뻗친 부재 끝이 날카롭게 표현되어 조선 후기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지붕 꼭대기에는 오얏꽃무늬로 장식하였는데, 이것은 한말 대한제국 황실을 상징하던 무늬이다. 건물 좌우에는 복도(행각)가 있고, 마당에는 신하들의 지위를 표시하는 품계석이 놓여 있다. 내부 천장 가운데는 한 단을 높여 구름 사이로 봉황 두 마리를 채색하여 그려 넣었다. 뒷면의 높은 기둥 사이에 임금이 앉는 의자가 마련되어 있고 그 뒤에는 해와 달, 5개의 봉우리를 그린 일월오악도 병풍이 있다. 인정전은 경복궁의 근정전, 창경궁의 명정전, 덕수궁의 중화전과 함께 조선왕조 궁궐의 정전다운 격식과 장식을 잘 갖추고 있는 건물이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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