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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광성보 손돌목돈대 아래 해안에 설치된 해안포대인 광성포대이다. 병인양요.신미양요 이후 해안 방어 화력 증강의 필요성에 따라 고종때 설치된 군사시설로 돈대와는 달리 해안가 낮은 위치에 설치하여 함선을 공격하여 명중률을 높일 수 있도록 하였다. 광성포대에는 9좌, 4좌, 3좌의 포자를 갖추고 총 16문의 화포를 배치할 수 있는 시설로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18문의 화포를 운영하는 포병대대와 비슷한 수준이다. 남쪽편 남장포대, 강화해협 반대편 김포의 덕포진 포대와 협공을 하며 선박을 공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정도 화력으로 당시 우리나라를 침공하는 함대를 방어하기는 힘들 것으로 생각되며 실제로 1875년 일본의 운양호가 초지진을 침략했을때 거의 힘을 쓰지 못하고 오히려 운양호의 포격에 많은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19세기말 급격하게 변하는 세계정세와 무기, 함선 등 기술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한 조선의 당시 사정과 국력을 보는 듯한 장면이다.
강화 광성포대,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온면 덕성리
광성포대는 조선후기 강화도 해안 수비를 위해 설치된 방어시설 가운데 하나이다. 국방강화책으로 숙종은 강화도내에 내성, 외성, 12진보, 53돈대 등을 축조하여 요새화를 이루었으며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거치면서 화력을 증가시키는 일이 시급한 과제로 등장함에 따라 고종 11년(1874) 용진진, 광성진, 덕진진, 초지진에 포대를 설치하였다. 광성포대는 손돌목돈대 주변 3곳에 설치되었으며, 각각 9좌, 4좌, 3좌의 포좌를 갖추고 있었으며 이중 가장 규모가 큰 중앙포대는 길이 80m, 포좌의 크기 약 6m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1875년 운양호사건을 계기로 왜세에 문호를 개방함에 따라 파괴되었던 것을 2004년 발굴조사를 실시, 유적이 확인되어 복원 정비를 하였다.<출처: 강화군청>
강화도 해안에 설치된 포대중에 하나인 광성포대로 손돌목 돈대 아래에 설치되어 있다. 포대는 돈대와는 달리 낮은 곳에 설치하여 지나가는 함선을 공격하기 좋게 설치되어 있다.
강화도 염하(강화해협) 해안가를 따라서 길게 늘어선 포좌, 총 16문의 포를 설치할 수 있는 포좌가 있었는데 발굴.복원작업을 통해 13문의 포를 설치할 수 있는 포좌를 복원해 놓고 있다.
광성포대의 여러 포좌 중 용두돈대 입구에 위치한 4문의 포를 설치할 수 있는 포좌.
포좌의 구조는 간단한 편으로 해협을 지나가는 선박을 향해 포를 발사할 수 있도록 방향이 고정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9문의 화포를 설치할 수 있는 가운데 포좌.
용두돈대에서 보이는 9개 화포를 설치할 수 있는 가운데 포좌
광성포대와 용두돈대
2009년 광성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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