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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화재(탑_석등_범종)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불상, 파주 용미리 석불입상

younghwan 2009. 4. 22.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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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산 관촉사의 은진미륵과 함께 초기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파주 용미리 석불입상입니다. 몸통은 원래 있던 자연암석을 이용했고 머리만 만들어 올린 것 같습니다.

 토속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불상으로 전체적으로 예술작품으로서의 아름다움은 부족하지만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반영하고 있는 많지 않은 유물 중의 하나로서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윤관 장군 묘역에서 국도를 타고 서울쪽으로 조금 내려오면 언덕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불상인 파주 용미리 석불입상입니다. 몸통은 원래 있던 자연암석을 이용했고 머리만 만들어 올린 것 같습니다. 토속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불상으로 논산 관촉사의 은진미륵과 함께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불상입니다.

파주 용미리 석불입상이 있는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입니다. 국도변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이 거대한 불상은 아래를 굽어 보고 있는 모습입니다.

두개의 불상이 자연 암석을 이용해서 아주 특색있게 만들어 졌습니다.

자연 암석에 부조형태로 새겨 놓은 몸통입니다. 선들이 아주 부드럽게 새겨져 있습니다.

용미리 석불입상의 얼굴입니다. 투박하게 만들어졌지만 아주 온화하고 후덕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뒤에서 본 용미리 석불입상입니다.

안내표지판



거대한 천연 암벽에 2구의 불상을 우람하게 새겼는데, 머리 위에는 돌갓을 얹어 토속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한 까닭에 신체 비율이 맞지 않아 굉장히 거대한 느낌이 든다. 이런 점에서 불성(佛性)보다는 세속적인 특징이 잘 나타나는 지방화된 불상이다. 왼쪽의 둥근 갓을 쓴 원립불(圓笠佛)은 목이 원통형이고 두손은 가슴앞에서 연꽃을 쥐고 있다. 오른쪽의 4각형 갓을 쓴 방립불(方笠佛)은 합장한 손모양이 다를 뿐 신체조각은 왼쪽 불상과 같다. 지방민의 구전에 의하면, 둥근 갓의 불상은 남상(男像), 모난 갓의 불상은 여상(女像)이라 한다. 고려 선종이 자식이 없어 원신궁주(元信宮主)까지 맞이했지만, 여전히 왕자가 없었다. 이것을 못내 걱정하던 궁주가 어느날 꿈을 꾸었는데, 두 도승(道僧)이 나타나 ‘우리는 장지산(長芝山) 남쪽 기슭에 있는 바위 틈에 사는 사람들이다. 매우 시장하니 먹을 것을 달라’고 하고는 사라져 버렸다. 꿈을 깬 궁주가 하도 이상하여 왕께 아뢰었더니 왕은 곧 사람을 장지산에 보내어 알아 오게 하였는데, 장지산 아래에 큰 바위 둘이 나란히 서 있다고 보고하였다. 왕은 즉시 이 바위에다 두 도승을 새기게 하여 절을 짓고 불공을 드렸는데, 그 해에 왕자인 한산후(漢山候)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이 불상들은 고려시대의 조각으로 우수한 편은 아니지만, 탄생설화가 있는 점 등을 미루어 볼 때 고려시대 지방화된 불상양식을 연구하는 귀중한 예로 높이 평가된다. <출처: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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