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기관으로서 성균관의 실질적인 기능을 담당했던 유생들이 머둘던 기숙사인 동.서재이다. 성균관 강당인 명륜당 앞 마당 동.서쪽에 회랑처럼 나란히 서 있는 건물로 각각 앞면 18칸으로 총 28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건물은 명륜당 마당 반대쪽을 향하고 있다. 명륜당 방향에는 국왕을 모시고 공식행사를 치를 수 있도록 회랑을 만들어 놓고 있으며, 생활공간인 바깥쪽 방향으로는 반칸씩 툇마루를 달아 놓았다. 한옥 건물의 작은 방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 유생들의 생활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해 주고 있다.
동.서재 건물은 한양에 성균관이 처음 세워졌던 1398년(태조7)에 세워졌고,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06년(선조39)에 중건하였다고 한다. 성균관 동.서재에는 진사나 생원에 합격한 후 입학한 상재상과 선발시험이나 추천에 의해 입학한 하재상들이 기숙하였으며, 전체 정원은 200명이었다고 한다. 상재생들은 하재생들이 머무는 곳에 가지 못하게 하였다고 한다. 유생들은 아침에 북소리가 나면 일어나 의관을 갖추고 책을 있고, 식당에서 식사를 하였는데 식사횟수로 출결을 확인하였다고 한다. 1년에 300번 출석을 해야 과거시험 자격이 주어졌다고 한다.
대성전 및 명륜당과 함께 태조 7년(1398)에 건립되었으나, 이후 선조 25년(1592)에 왜란(倭亂)으로 소실되었다가 선조 39년(1606)에 중건되었다. 동·서재는 명륜당 동서로 있는 장방형의 건물로서 2간(間)이 한 방으로 되어 있는데, 동·서재를 합하면 총 28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재의 첫째 방은 약방이고, 그 다음은 우제일방·장의방·진사칸·하일방·하종방의 순서로 되어 있고, 끝 방을 하재라고 하였다. 그리고 서재의 첫째방은 서일방이고, 그 이하는 동재의 순서와 같다. 유생들은 매일 새벽에 북소리가 한 번 나면 일어나고, 날이 밝기 시작하여 북소리가 두 번 나면 의관을 갖추고 단정하게 앉아서 책을 읽으며, 북소리가 세 번 나면 식당에서 동서로 마주앉아 식사를 했다. 한편, 유생들이 식당에서 함께 식사하는 점수를 원점(圓點)이라 하는데, 아침·저녁을 합하여 1점으로 계산하였으며, 이것은 일종의 출석 점수로서 300점을 취득하여야만 과거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후대로 내려오면서 잘 시행되지는 않았다. 유생들의 글씨는 해서(楷書)를 원칙으로 하고, 성현을 숭상하지 않는 언동을 하거나 조정을 비방하면 처벌 대상이 되었다. 상론(商論)·재뢰(財賂)·주색(酒色) 등을 말하는 것과, 바둑이나 장기 두는 것도 금지되었으며, 오륜(五倫)을 범하여 이름을 더럽혀서도 안되며, 윗사람을 능욕하거나 사치하여도 안되고 교수에게 예의를 갖추지 않아도 처벌을 받았다. 상재생(上齋生 : 생원이나 진사로서 성균관에 입학한 사람)은 하재를 방문하지 못하며, 하재생(下齋生 : 사학생도(四學生徒)와 같이 유학(幼學)으로서 성균관에 입학한 사람)에게 과실이 있으면, 식손(食損 : 식사에 참여하지 못하게 함.)과 출재(黜齋 : 재에서 퇴거시키는 것으로 퇴학과 같음.)가 있어서 규율은 엄격한 편이었다. <출처: 성균관>
성균관 유생들이 머물던 공간인 동재. 생활공간인 동재는 공식행사가 열렸던 명륜당 마당을 등지고 있으며, 별도의 마당을 두고 있다. 동재에는 성균관 관리들의 사무실인 정록청, 식당, 약방 등 생활에 필요한 공간들의 모여 있어 약간 번잡한 분위기였을 것으로 보이며, 하급생들이 주로 머물렀다고 한다.
성균관 동심문 옆에 위치한 동재 출입문. 성균관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출입하는 출입문으로 꽤 번잡했을 것으로 보인다.
동재는 18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2칸이 합쳐서 1개의 방이 된다.
동재에서 명륜당 강당으로 연결되는 출입문
기숙사 방 내부
성균관 동재에 매달려 있는 북. 유생들은 북이 2번 울리면 아침에 일어나 의관을 입고 책을 읽기 시작하며, 북이 3번 울리면 식당에서 식사를 한다.
동재 툇마루
동재 맞은편에는 현재 성균관을 관리하는 사람이 머무는 숙소가 있으며, 이곳에서 식사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명륜당 마당 쪽으로는 경복궁 정전 앞 마당처럼 국왕을 모시고 공식적인 행사를 치를 수 있도록 회랑을 구성해 놓고 있다. 마당방향으로는 작은 창문을 달아놓았다.
명륜당 마당에서 동재로 들어가는 출입문
동재 창문이 열린 모습
2009년 성균관 동재
성균관에서 공부하는 유생들 중 상급생들이 머물렀던 기숙사인 서재. 관청들과 부속건물이 모여 있어 번잡했던 동재와는 달리 기숙사 건물만 있어 상대적으로 조용했던 것 같다. 동재와 마찬가지로 마당 방향으로는 회랑을 구성하고 있다.
서재 회랑
서재 마당
2009년 성균관 서재
성균관 명륜당 앞 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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