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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군은 광주광역시 북동쪽에 위치한 군으로 주변에 크고 작은 산들이 있으며 호남지방의 큰 강인 영산강이 발원한다. 조선시대 담양도호부와 창평현이 합쳐서 오늘날 담양군을 이루고 있으며, 영산강과 지천 주변으로 넓은 평야지대가 형성되어 있어서 경제적으로 풍족한 고장이었기때문에 호남지역에서도 대표적으로 양반문화가 발달되었던 곳이다. 담양에는 소쇄원을 비롯하여 부유층들이 조성한 크고 작은 정자와 원림들이 많이 남아 있다. 반면에 경치좋은 곳에 자리잡았던 서원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며, 다른 지역에서는 많이 볼 수 있는 사설교육기관이었던 학구당이 몇곳 남아 있다.
담양군 수북면 병풍산(해발 822m) 남쪽 자락에는 조선시대 사설 중등교육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수북학구당이 있다. 이곳은 조선 중기 성종때에 주변 마을의 여러 성씨들이 힘을 모아서 과거시험을 준비하기 위한 교육기관으로 처음 세웠다고 한다. 조선중기 이후 중등교육기관의 주류였던 서원은 중앙에서 고위관료를 지내다 낙향한 인사나 지역에서 명망이 높았던 유학자들이 세웠던 서당이 발전한 경우로 개인의 학문적 성향이 반영되었다면, 이곳 수북학구당은 고거시험을 준비하는 장소였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후기 이곳에는 많은 진사를 배출하여 지역에서 나름 영향력이 있었던 곳으로 보이며, 설명에 따르면 서원과는 달리 학문적인 성향은 뚜렷해 보이지 않는다.
수북학구당, 담양군 수북면 오정리
수북학구당은 조선시대에 많은 유생들을 배출하였던 곳이다. 성종 4년(1473)에 남(南).박(朴).진(陳)씨 등 3성씨 주관으로 건립하였으나 많은 유생들이 수학하러 오다 호랑이에게 해를 입어 철폐하였다고 한다. 그 후 숙종 35년(1709)에 김(金).이(李).우(禹).정(丁)씨 4성씨가 당초의 학구당에서 약 300m 떨어진 곳에 건립하여 많은 유학생을 배출하였는데, 특히 이곳에서는 많은 진사를 배출하여 당시 수북학구당의 세력을 과시하기도 하였다. 그후 영조 45년(1769) 윤광현 창평현령이 주민들을 동원하여 새로 복원하였으며, 지금 건물은 1990년에 보수한 것이다. 건물의 구조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다. <출처:담양군청>
담양군 수북면 오정리 마을 뒷산에 남아 있는 수북학구당. 조선시대 많은 진사를 배출한 지역에서 명망있는 교육기관으로 노령산맥을 이루는 큰 산 중 하나인 병풍산(해발822m) 남쪽 자락끝에 위치하고 있다. 조선중기에 수남학구당이 처음 세워졌을때에는 현위치보다 안쪽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호랑이 피해를 많이 보았기때문에 마을 가까운 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수남학구당은 1990년에 크게 보수하였다고 한다.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2칸으로 가운데 2칸은 대청마루, 양쪽에 1칸씩 온돌방을 두고 있다. 방과 대청마루 앞에는 반칸 정도 툇마루를 달아내어 놓아 잠깐 앉아서 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학구당 현판
학구당 마당. 서원 등에 비해서 마당이 넓지 않은 편이며, 경치좋은 곳에 세원 정자와 비슷한 규모를 하고 있다.
학구당 안쪽에 있는 관리인 살림집
학구당 출입문과 돌로 쌓은 담장
학구당 출입문에서 내려다 보이는 들판. 지금은 숲으로 가려져 있지만, 조선시대 마을 뒷산은 민둥산인 경우가 많았기때문에 전망이 좋았을 것으로 보인다.
학구당 주변에는 담양을 대표하는 대나무숲을 볼 수 있다.
마을에서 학구당으로 들어오는 길
마을 뒷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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