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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화재(탑_석등_범종)

백제의 미소, 서산마애삼존불상

younghwan 2009. 10. 31.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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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시간이 나서 오래전부터 한번 가 보고자 마음을 먹고 '백제의 미소'로 잘 알려진 서산마애삼존불상을 보기 위해 서산을 방문했다. 햇볕이 좋은 한적한 가을날에 이 곳을 방문하니 가야산 계곡의 아름다운 단풍이 우리를 맏아 주었다. 예전에 이 곳을 왔다가 사람이 많고 주차할 장소가 마땅하지 않아 포기했던 기억이 있던 곳이다. 전 문화재청장 유흥준 선생이 저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극찬을 했던 장소인 이 곳은 한적할 때 찾아가니 그 극찬이 조금도 모자람이 없는 장소이다. 책에서는 마애석불이 비각안에 있어 이 곳을 관리하던 아저씨가 조명을 비춰주면서 설명했다고 했었는데 지금은 보호각이 제거하고니 석굴암 보호각을 봤을 때의 실망감은 전혀 없었고 자연스러운 햇빛에 노출되어서 다양한 모습 마애석불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가야산 계곡 절벽 바위에 새겨진 마애삼존석불. 바위를 파서 석불을 새겨놓고 있는데, 바위가 자연스러운 처마의 역할을 하고 있다. 가운데 여래입상, 오른쪽에 보살입상, 왼쪽에 반가사유상이 새겨져 있다. 새겨진 불상이 누구인지 의견이 많은 삼존불이다. 여래입상 뒷쪽에는 연꽃무늬 광배가 있는데 비로자나불을 연상시킨다.

'백제의 미소'로 잘 알려진 서산마애삼존석불 중 여래입상의 얼굴. 햇볓이 비치는 방향에 따라서 다양한 표정을 연출한다.

국립부여박물관에 전시된 복제품. 조명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변하는 것을 체험할 수 있다.

서산마애삼존불상의 상체부분. 여래입상은 얼굴 윤각이 둥글고 풍만하여 자비로운 인상이다. 석굴암을 제외하고는 후대에 만들어진 마애석불에서는 이런 기교적, 예술적인 미를 찾기는 힘들다.

서산마애삼존불상의 다리부분. 여래입상은 연꽃잎을 새긴 대자 위에 서 있는데, 발가락을 자연스럽게 잘 묘사하고 있다.

삼존불 중 여래입상 오른쪽에 있는 보살입상

누구를 묘사하고 있는지 잘 알려지지 않고 있는 반가사유상을 왼쪽편에 새겨놓고 있다. 백제와 통일신라, 일본에 많이 존재하는 반가사유상이 삼존불의 하나로 새겨져 있다.

다양한 각도에서 본 서산마애삼존불상. 햇빛의 방향에 따라서 그림자가 크게 변하도록 바위에 새겨져 있다.

가야산 계곡 입구에 걸어서 올라면 첫번째로 보이는 서산마애삼존석불. 계단을 올라서면 정면이 보이게 되어 있다.

측면에서 본 서산마애삼존불상. 바위에 깊게 새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약간 떨어져서 본 서산마애삼존석불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가야산 계곡을 따라 들어가면 층암절벽에 거대한 여래입상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보살입상, 왼쪽에는 반가사유상이 조각되어 있다. 흔히 ‘백제의 미소’로 널리 알려진 이 마애불은 암벽을 조금 파고 들어가 불상을 조각하고 그 앞쪽에 나무로 집을 달아 만든 마애석굴 형식의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연꽃잎을 새긴 대좌(臺座) 위에 서 있는 여래입상은 살이 많이 오른 얼굴에 반원형의 눈썹, 살구씨 모양의 눈, 얕고 넓은 코, 미소를 띤 입 등을 표현하였는데, 전체 얼굴 윤곽이 둥글고 풍만하여 백제 불상 특유의 자비로운 인상을 보여준다. 옷은 두꺼워 몸의 윤곽이 드러나지 않으며, 앞면에 U자형 주름이 반복되어 있다. 둥근 머리광배 중심에는 연꽃을 새기고, 그 둘레에는 불꽃무늬를 새겼다. 머리에 관(冠)을 쓰고 있는 오른쪽의 보살입상은 얼굴에 본존과 같이 살이 올라 있는데, 눈과 입을 통하여 만면에 미소를 풍기고 있다. 상체는 옷을 벗은 상태로 목걸이만 장식하고 있고, 하체의 치마는 발등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왼쪽의 반가상 역시 만면에 미소를 띤 둥글고 살찐 얼굴이다. 두 팔은 크게 손상을 입었으나 왼쪽 다리 위에 오른쪽 다리를 올리고, 왼손으로 발목을 잡고 있는 모습, 오른쪽 손가락으로 턱을 받치고 있는 모습에서 세련된 조각 솜씨를 볼 수 있다. 반가상이 조각된 이례적인 이 삼존상은『법화경』에 나오는 석가와 미륵, 제화갈라보살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본존불의 묵직하면서 당당한 체구와 둥근 맛이 감도는 윤곽선, 보살상의 세련된 조형 감각, 그리고 공통적으로 나타나 있는 쾌활한 인상 등에서 6세기 말이나 7세기 초에 만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곳은 백제 때 중국으로 통하는 교통로의 중심지인 태안반도에서 부여로 가는 길목에 해당하므로, 이 마애불은 당시의 활발했던 중국과의 문화교류 분위기를 엿볼 수 있게 하는 작품이라 하겠다. <출처: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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