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story Traveling

한국의 풍경

고려대학교 교문, 중앙광장으로 변신한 운동장

younghwan 2010. 8. 29. 20:59
반응형


 명문사학인 고려대학교 교정은 최근 수년동안 많은 변화가 일어나서 기존에 알고 있던 캠퍼스의 모습과는 많이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 중 이 대학교 캠퍼스를 대표하는 도로에서 볼 수 있는 독립문을 연상시키는 아치형 정문은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지만, 그 안쪽에 있던 흙먼지를 날리던 대운동장은 지금은 푸른 광장으로 변신해 있다.

 최근에 서울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공원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잔듸밭과 분수로 바뀐 새로운 교정의 모습을 만들고 있다. 그 뒷편으로는 여전히 이 학교의 설립자인 인촌 김성수의 동상이 본관 석조건물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다. 주위에는 화강석으로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본관 건물의 형태를 따라서 비슷한 모양의 많은 건물들이 신축된 것으로 보인다.



안암로 도로변에 있는 고려대학교 정문. 꽤 오래전에 만든 교문이지만 화강석으로 웅장하게 만든 출입문으로 독립문을 연상시키는 모습을 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교문을 들어서면 볼 수 있는 캠퍼스 전경. 고려대학교 안암캠퍼스는 면적은 넓지 않지만, 개운산을 배경으로 건물들이 웅장하게 펼쳐져 있기때문에 실제 면적보다 상당히 넓고 웅장해 보인다. 중앙에 본관을 중심으로 서쪽으로 서관, 동쪽으로 도서관과 강의동 건물들이 있다. 대학교 캠퍼스로는 특이하게 옛날에 학교 입구에 대운동장이 있었다.


지금은 잔듸광장으로 변신한 고려대학교 대운동장. 운동장 지하에 주차장과 학생 편의 시설이 있다. 광장을 조성한 형태가 서울광장이나 광화문 광장을 연상시키는 모습이다.


광장 입구에 있는 분수대.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분수이다.


고려대학교 설립자인 인촌 김성수 동상이 본관 건물 앞에 우뚝 서 있으며, 학교를 출입하는 학생들을 내려다 보고 있다.

김성수(金性洙, 1891년 10월 11일 ~ 1955년 2월 18일)는 일제 강점기의 교육인 겸 언론인·기업인·민족운동가·독립유공자이며 대한민국의 정치인, 교육인, 서예가이다. 일제시대에는 실력양성론을 주장하며 민족자본육성 활동과 재정난을 겪은 중앙고등보통학교와 보성전문학교 등을 인수, 운영하며 교육활동을 하였고 물산장려운동에 참여하였으며 동아일보를 경영하였으나 일제의 탄압에 굴하지 않았고 가담하지 않았다. 8·15 광복 이후에는 한국민주당 조직과 신탁통치반대운동에 참여한 뒤 1947년 3월부터 정부 수립 전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무위원을, 1951년 5월부터 1952년 8월까지 대한민국 제2대 부통령을 역임하였고, 민주국민당 창당을 주관하였다. 경성방직·고려대학교의 설립자이며 동아일보 창설자의 한 사람이다. 자는 판석(判錫), 아호는 인촌(仁村). 가톨릭 세례명은 바오로라 하였다.[1][2] 조선시대의 유학자 김인후(金麟厚)의 13대손이다. 전라북도 고창 출생. <출처: 위키백과>


고려대학교를 상징하는 조형물. 지구위에 올라 있는 호랑이를 조각해 놓고 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