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하고성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대불사는 후한시대부터 남북조시대까지 전성기를 누렸던 차사전국의 수도 교하고성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사찰터이다. 교하고성은 투루판 분지 북쪽 산악지역에서 강물이 분지내로 들어오는 지역에 자리잡고 있는 요새와 같은 성격의 고성이다. 일반적으로 중국이나 한반도 등에서 볼 수 있는 도시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중동지역이나 중세 유럽의 도시국가와 비슷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고성의 면적은 그리 넓지 않은편이며, 좁은 골목길과 바위를 파서 만든 집과 상가, 관청 건물들로 이루져 있으며 도시민들의 식량은 고성밖에 있는 농지에서 공급되었다. 중세 유럽도시들을 보면 성곽 안을 들어서면, 중앙에 마차가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의 대로가 있고, 대로의 끝에는 거대한 성당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 보통인다. 교하고성이 그런 모습을 하고 있으며, 불교국가로서의 의미와 동아시아와는 달리 서역 불교국가의 도시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반면에 후대에 세워진 한족인 국씨가 세운 고창국의 경우는 중앙에 궁궐이 있고, 사찰인 대불사는 외성에서 사람의 통행이 많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교하고성의 대불사는 규모가 큰 사찰인데, 건물은 흙벽돌을 쌓아서 만든 투루판분지 지역의 건축 양식을 사용했기때문에 목조 건물로 만든 동아시의 사찰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불교가 서역인 인도에서 발생하여 동아시아로 전파되는 실크로드의 중심에 있는 이 곳 교하고성의 대불사는 그 전래과정에서 나타난 가람의 배치 변화와 특징적인 측면에서 중간과정을 보여주는 듯하다. 불교에서 가람의 배치는 부처의 사리를 모시는 탑과 불상을 모시는 금당의 배치를 말하는데, 원래 인도에서는 사리를 모시는 탑만 있었으나, 후대에 불상을 중요시 여기게 됨에 따라서 이집트 아부심벨처럼 불상을 모신 석굴사원에 서역에서는 크게 유행했다고 하며, 실크로드상에 많은 석굴사원들이 유적으로 남아 있으며, 중국을 비롯하여 그 흔적은 경주 불국사 석굴암까지 남아 있다고 볼 수 있다.
대불사 가람배치는 1금당, 1탑을 기본으로 가람배치를 하고 있는데, 동아시아의 일반적인 가람배치와는 달리 부처님 사리를 모신 탑이 사찰 바깥 대로에 위치하고 있다. 동아시아 사찰의 가람배치는 이런 형태의 가람배치와는 달리 궁궐의 건물배치의 영향을 받아서, 여러 형식의 가람배치가 있는데 지역적, 문화적 특성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사찰 가람배치에서 중문에 해당되는 출입문.
중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부처님의 상인 불상을 모신 금당이 정면에 있다. 높지는 않지만 축대를 쌓고 그 위에 건물을 조성한 경주에는 삼국시대 사찰의 금당과 비슷한 형태이다.
교하고성 대불사 경내에 있는 회랑. 금당 앞 경내를 둘러싸고 있는 삼국시대 황룡사같은 사찰에서 볼 수 있는 회랑과 비슷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이지만 사람들이 거주하는 방처럼 보이기도 한다. 용도에 있어서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건물 성격은 비슷해 보인다.
교하고성 대불사 회랑을 구성하고 있는 방. 승려들이나 여행자들이 머물던 장소였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대불사 경내에는 탑(?) 또는 다른 상징물이 세워두었던 장소.
대불사 경내 상징물을 세워 놓았던 장소의 배치는 감은사지나 불국사에서 볼 수 있는 두개의 탑과 비슷한데 사찰 입구에 있는 탑과 중복되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이 곳을 1탑, 1금당이라고 해야할 지, 3탑 1금당이라고 해야할 지 알 수 없다.
금당 앞에는 종교의식을 치를 수 있는 공간이 있고, 특히하게 이 곳에는 금당 앞에 우물을 두고 있다.
금당 앞에 있는 우물
금당을 올라가는 계단
금당은 그 크기나 형태가 우리나라 삼국시대 금당과 비슷하며 내부에는 탑형태로 만든 불상을 모시는 곳이 있다.
금당 왼쪽편에는 우리나라 사찰의 강당과 비슷한 기능을 했을 것으로 보이는 방들이 있다. 대불사는 강당의 배치에는 큰 의미를 두고 있지는 않는 것으로 보이며, 강당은 중국 궁궐 건축의 영향을 받은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대불사 외벽. 벽을 상당히 높게 만들었다.
대불사 중문 앞에 있는 탑. 지금은 크게 높아 보이지는 않지만 실제로는 더 높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교하고성 성문에서 시작한 대로는 이 곳 대불사 탑을 향하고 있다.
교하고성 대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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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람배치: 탑·금당(金堂)·강당(講堂) 등 사찰의 중심부를 형성하는 건물의 배치.
인도어의 상가라마(Saṃghārāma)는 한문으로는 승가람마(僧伽藍摩)로 표기되며, 승가(僧伽)란 중(衆), 람마(藍摩)란 동산[園]의 뜻으로 이는 중원(衆園), 즉 여러 승려들이 한데 모여 불도를 닦는 곳이다. 이것을 후세에 절[寺]·가람(伽藍)이라 부르게 되었다. 석가모니의 사리와 그것을 담은 그릇, 화장에 사용한 숯 등을 나누어 보관하기 위해 스투파(Stupa)라는 반원형의 무덤을 만든 것이 불교사찰의 효시가 되었다. 인도에서 불교가 종교로서 정착되자 스투파가 대형화되고 장식이 화려해지면서 스투파를 중심으로 한 가람이 지속되던 중 BC 2세기경부터 마치 이집트 석굴신전의 출현과 같은 일석굴사원(一石窟寺院)이 유행했다. 이는 불교의식인 선(禪)과 기도의 새로운 양식과 의식에서 연유된 것으로 건축적인 내부공간이 필요해졌음을 뜻하며, 사리를 안치한 탑인 스투파에서 불상의 출현으로 인해 공간적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졌음을 의미한다. 불교가 중국·한국·일본 등으로 전파됨에 따라 가람도 각기 고유한 형태로 발전·전개되었는데 중국은 2세기말부터 주로 탑을 중심으로 가람이 조성되었다. 가람배치의 형식은 중국의 궁궐건축과 인도의 불탑(佛塔) 요소가 복합되어 형성된 것으로 이것이 한국에 전래된 것으로 보인다. 사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구조물은 존상(尊像)을 봉안한 금당과 사리를 모신 탑이다. 따라서 가람의 구성에 있어서도 탑과 금당과의 관계에 의해 일탑일금당식(一塔一金堂式)·일탑삼금당식(一塔三金堂式)·이탑일금당식(二塔一金堂式)·무탑식(無塔式) 등으로 배치 형식이 분류된다. <출처:브리태니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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