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사를 대표하는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석가탑과 다보탑일 것이다. 많은 전란등으로 불국사가 타버렸을 때도 석가탑과 다보탑이 있었기 때문에 불국사는 계속 재건되어왔던 것으로 생각된다. 황룡사의 목탑이 불타버렸을때 그 복구 비용을 감당할 수가 없어 황룡사는 역사속으로 사라져 버렸지만, 불국사는 석가탑과 다보탑을 중심으로 언제나 예전같이 재건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불국사 마당에 있는 석가탑과 다보탑을 보면 그림,사진,동전 속에서 볼때의 약간 왜소함에 비해 실물의 크기에 감탄을 하게된다. 이 두개의 탑을 중심으로 불국사의 역사는 계속되는 것 같다.
국보 20호로 지정된 다보탑은 석가탑과 함께 대웅전 경내에 나란히 서 있는 '2개의 탑'이라는 의미를 잘 보여주는 석탑으로 높이 10.34m의 대형 석탑으로 목조건축물을 연상시키는 독특형 형태를 하고 있다. 정식명칭은 '다보여래상주증명탑'으로 법화경의 현세불인 석가여래가 설법하는 것을 과거불인 다보불이 옆에서 옳다고 증명하는 내용을 표현하고 있는 석탑이다. 4각형 기단에 4면에 계단을 설치하고 돌계단에는 4마리의 돌사자를 올려 놓고 있는데 현재는 3마리가 일제에 의해 약탈되고 지금은 한마리만 남아 있다. 중앙부에는 4면과 중앙에 4각형 돌기둥을 세워서 탑의 지붕을 받치고 있다. 지붕돌 위에는 난간을 만들고 안쪽에 팔격형으로 몸체를 만들었으며 그 위에 다시 팔각간 난간을 돌렸다. 그 안에는 돌기둥으로 16잎의 팔각 연꽃돌을 받치고 있는 형태를 하고 있고, 지붕돌 위에는 노반.복발.앙화.보륜.보개로 이루어진 상륜부가 거의 완벽하게 남아 있다.
불국사 다보탑은 전대에 만들어진 모전석탑을 비롯한 목탑을 모방한 석탑과는 전현 다른 형태를 하고 있으며, 후대에 정형화된 석가탑과 같은 삼층석탑과도 다른 아주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는 통일신라 석탑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다. 다보탑은 석가탑과 마찬가지로 신라 경덕왕 때 김대성이 불국사를 중창할 당시인 8세기 중엽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우리나라 사찰 중에서는 보기 드물게 회랑으로 둘러싸인 대웅전 경내 중심에 석가탑과 함께 나란히 서 있는 다보탑.
다보탑은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로 이루어진 석가탑처럼 정형화된 석탑과는 달리 목조건축물을 연상시키는 구조를 하고 있는 독특한 외형의 석탑이다.
다보탑의 기단부는 단층 구조로 만든 안정적인 형태를 하고 있으며 앞쪽에 돌기둥이 세워져 있는 계단이 4면에 세워져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화강암석재로 만든 기단부 몸돌도 석재를 가공하여 마치 목조건축물을 세우듯이 하고 있다.
다보탑 기단부 4면에 세워진 계단. 계단을 걸어서 올라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다보탑 탑신 1층은 바깥쪽에 4개의 석조기둥과 중앙의 석조기둥이 지붕돌을 받치고 있는 형태로 목조건축물처럼 보와 공포가 설치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다보탑 탑신 1층 4면에 세워졌던 사자상 가운데 상태가 좋지 않아서 훼손을 면했던 서쪽편 방향의 사자상이다. 연꽃모양 대좌 위에 세워진 사자상으로 걸작에 웅장한 외형의 걸작이라 할 수 있다.
지붕돌 위에는 4각형의 난간을 세우고 그 위에 다시 팔각난간을 돌렸으며, 그 안에 16잎의 연꽃돌을 받치고, 그 위에 다시 8개의 기중모양 받침이 팔각지붕돌을 받치고 있는 형태로 정교하면서도 세밀한 디자인이라 할 수 있다. 지붕돌 위에는 노반.복발.앙화.보륜.보개로 이루어진 상륜부가 거의 완벽하게 남아 있는데 우리나라 석탑 중에서 흔치 않은 경우라 할 수 있다.
여러 방향에서 본 불국사 다보탑
'2개의 탑'을 연상시키는 대웅전 앞 경내에서 불국사 신앙의 중심이 되었던 석가탑과 다보탑.
7~8여년 전에 찍었던 불국사 석가탑과 다보탑
2009년에 다보탑이 수리중이었을 때의 모습
중국북경 청나라 서태후의 여름별장이었던 이화원 호수변에 건륭제가 세웠던 다보탑을 볼 수 있다. 전통적인 우리나라의 석탑과는 달리 성문 문루와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불국사 다보탑(국보20호), 경주시 진현동 15-1
불국사는 통일신라 경덛왕 10년(751)에 김대성의 발원으로 창건된 사찰로, 과거.현재.미래의 부처가 사는 정토 즉 이상향을 구현하고자 했던 신라인들의 정신세계가 잘 드러나 있는 곳이다. 이 탑은 높이 10.34m이며, 일반적인 통일신라시대의 석탑과는 다른 특이한 형태로, 정식 명칭은 '다보여래상주증명탑'이다. 이는 '법화경'에 석가여래의 진리를 다보여래가 증명한다고 하는데 연유한다. 이러한 내용을 탑으로 조성한 예는 다른 불교 국가에서는 없다. 이 탑은 경덕왕 10년(751)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4각형 기단의 네 면에 계단을 설치하고, 중앙에 4각형 돌기둥을 세우고 교차되는 받침을 얹어 탑의 지붕돌을 받치게 하였다. 기단의 돌계단 위에 놓여 있던 네마리의 돌사자 가운데 보존 상태가 좋았을 듯한 3마리가 일제에 의해 약탈되어 그 행방을 알 수가 없으며 지금은 한 마리만 남아 있다. 지붕돌 위에 4각형의 난간을 만들고 안에 팔각형 몸부분을 조성했으며, 그 위에 팔각 난간을 돌렸다. 그 안에 8개의 대나무 마디모양의 돌기동을 도려 16잎의 팔각 연꽃돌을 받치고 있다. 연꽃돌 위에는 8개의 기둥머리 모양의 받침이 팔각 지붕돌을 받치고 있다. <출처:경주시청>
탑 속엔 무엇이 들었을까요?
처음엔 석가모니의 사리(화장을 한 후의 유골)를 모시는, 일종의 무덤이었죠.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무덤과는 다르게 생겼다고요? 최초의 탑 모양은 마치 오늘날의 무덤과 같았어요. 지금도 인도에는 ‘산치탑’이라는 거대한 반구형의 탑이 남아있죠. 불교가 중국으로 전해지면서 반구형의 탑은 점차 여러 층으로 구성된 목조건축물의 모습 으로 변하였지요.탑은 차츰 무덤으로서의 역할보다는 불교를 상징하는 기념물로 자리잡게 되었고 탑 속에도 사리와 함께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같은 경전을 넣게 되었어요. 사람들은 그런 탑을 성스러운 예배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탑돌이를 하며 소원을 빌었답니다. 부처님의 사리를 넣어 모시는 곳을 탑이라고 한다면, 열반한 스님의 사리를 모시는 곳은 ‘부도’라고 해서 이름을 달리하고 위치도 다르지요. 탑이 절의 중심부에 있는데 반해 스님들의 부도는 절의 앞편이나 옆, 뒷편에 모셔져 있습니다.석가탑은 3층탑이라는 걸 쉽게 알 수 있을 텐데, 다보탑은 아무리 보아도 잘 모르겠어요. 다보탑은 특수형이라 층 수 세기가 어려울 거예요. 전문가들도 사자와 4기둥이 있는 곳을 1층으로 해서 4층이라는 의견과 그 위부터 1층으로 세는 3층이라는 의견, 층수를 따질 수 없는 무급이라는 의견 등 분분하답니다.
그렇다면 흔히 우리가 보는 탑의 층수는 어떻게 셀까요?
마치 집의 층수를 센다고 생각하면 맞아요. 지붕이 있어야 1층이겠죠? 따라서 탑에서 지붕(옥개석)이 몇 개인지 세어보면 몇 층인지 알 수 있어요.탑의 층수를 세다보면, 옛날엔 기중기도 없었을 텐데 무거운 돌을 어떻게 올렸는지 궁금하지 않아요? 충남 논산 관촉사 은진미륵에 그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온대요. 들어보세요. 한 여인이 길을 가다 동자의 비명 소리를 들었어요. 깜짝 놀라 가까이 가보니 땅 속에서 큰 돌이 솟아 나오는 것이 아니겠어요? 이 사실은 당장 왕에게 보고되었어요왕은 이 돌로 불상을 만들게 하였죠.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불상의 윗몸과 아래 몸을 각각 다른 돌로 만들어 두 돌을 어떻게 합해야 하는지 고민이었어요. 그 때, 한 동자가 나타나 모래 장난을 하는데, 아래 몸을 모래로 묻은 뒤 윗몸을 끌어올리는 것을 보고 불상을 완성했다는 이야기죠.청동기시대의 거대한 돌무덤 고인돌도 이런 방법으로 만들어졌다고 하죠?
인도, 중국, 일본에는 어떤 탑들이 있을까요?
우리 나라처럼 돌로 만들었을까요? 인도나 중국은 황토 흙이 풍부하고 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어 벽돌을 만드는 건 쉬운 일이었어요. 중국은 벽돌로 쌓은 탑이 많아 ‘전탑의 나라’라 불리기도 하지요. 일본은 지진이 많아 좋은 재질의 석재를 구하기가 어렵죠. 대신 울창한 난대림의 좋은 목재들을 이용해 목탑을 만들어요. 그래서 일본을 ‘목탑의 나라’라고 불러요. 그러면 우리 나라는 왜 석탑이 많은 걸까요? 먼저, 목탑은 불에 타기 쉽죠? 우리 나라는 주변 나라로부터 침입이 잦은 나라여서 많은 목탑들이 불에 타버리고 없어졌어요. 여러분들이 잘 아는 경주 황룡사 9층탑 외에도 시대마다 목탑이 있었어요. 그러나 전란으로 인해 대부분 불타 버렸지요. 대신 우리나라에는 어딜 가나 산이 많아 질이 좋은 화강암을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자연조건 때문에 석탑이 많은 거예요.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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