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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_향교_사당

남원 창주서원, 조선중기 문신 노진 선생을 모신 서원

younghwan 2010. 11. 17.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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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원 창주서원 조선중기 문신이자 성리학자인 옥계 노진선생을 모신 서원이다. 조선시대에 서원은 주로 경치가 좋은 곳에 자리잡고, 향교는 관청이 있는 행정중심지에 있는 것이 보통이나 이 서원은 도심과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옥계 노진선생은 경남 함양출신으로 오랜 관직생활을 하면서 처가가 있는 남원으로 옮겨와 살았다고 한다. 노진선생을 모신 서원으로 고향인 함양에도 당주서원이 있었으나, 두개의 서원이 모두 없어졌다고 한다.

  원래 창주서원은  남원시 금지면에 섬진강을 바라보고 있는 지역에 있었던 것 같은데 구한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 1950년대에 현위치에 새로이 지어졌다고 한다. 서원의 건물은 사당인 명덕사와 강당, 고직사 등의 건물이 있으며, 일반적인 서원과는 달리 서원을 관리하는 사람이 서원 내부에 거주하고 있는 것 같았다. 교육기능을 갖는 서원의 역할보다는 제사를 올리는 것이 주역할인 것으로 보인다.


남원 창주서원 강당. 앞면 5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중앙의 마루가 뚫려있어 날렵한 느낌을 주고 있는 건물 구조이다. 1950년대에 세워진 건물로 정읍 태인 무성서원 강당 건물과 약간 비슷한 느낌을 주고 있다.


창주서원 출입문인 진덕문.


강당앞 마당과 출입문인 솟을대문이 보인다.


강당 앞 서쪽편에 위치하고 있어 서재로 불릴 것으로 보이는 건물이다. 아마도 손님들이 묵을 수 있는 방으로 보인다.


동쪽편에는 동재라기보다는 고직사에 가까운 건물이 있다. 이곳 창주서원을 관리하는 사람이 가족이 거주하고 있는 살림집이다. 아마도 노진 선생의 후손 중 한사람이 아닌가 생각된다.


창주서원 강당 마루는 앞뒤로 시원하게 뚫려있다.


창주서원 편액과 마루에 걸린 당호인 '도남당'


노진 선생을 모신 사당인 명덕사 출입문인 내삼문


사당인 명덕사는 앞면 3칸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세운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오래된 건물처럼 보인다.


담장 밖에서 본 창주서원 강당

옥계 노진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노진(1518∼1578)은 조선 명종 1년(1546)에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충청도관찰사, 전주부사 등 여러 자리를 거쳤다. 그는 기대승·노수신·김인후 등의 학자들과 교류도 하였으며, 효성이 지극하여 정려도 세웠다. 창주서원은 선조 12년(1579)에 남원시 금지면에 고룡서원으로 지었으나 선조 33년(1600) 나라에서 ‘창주’라는 현판을 내려 창주서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고종 때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었으나, 1959년 지금 있는 자리에 복원하였다. 현재 서원에는 사당인 명덕사와 내삼문, 강당, 고직사 등의 건물이 있다. 명덕사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과 비슷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안에는 노진의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해마다 음력 3월 20일에 제사를 지낸다. 강당은 옆면에서 볼 때 지붕선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 건물이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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