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태인현에 위치한 무성서원은 통일신라시대에 이 곳에서 군수를 지낸 최치원 선생을 모신 서원으로 조선중기 '상춘곡'으로 유명한 정극인 선생을 비롯하여 지역 출신 인물들도 같이 모시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전해오는 많은 향약 중에서 그 내용이 가자 충실하다고 여겨지는 고현동 향약이 이 곳 무성서원을 중심으로 시행되어 왔으며, 이 서원 건물 자체보다는 상당히 많은 문서류를 보관해 왔던 서원이다.
현재의 무성서원 건물은 19세기인 헌종 10년에 중건된 것으로 건물자체로서는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그리 높지 않다고도 할 수 있지만, '상춘곡'을 지은 정극인 선생을 비롯하여, 임진왜란 때 전주사고의 실록과 어진을 피난 시킨 서비들을 비롯한 무성서원 관련 인사들의 역사적 중요성과 서원이 보관해온 각종 문서들로 인해서 그 역사적 가치가 아주 높은 서원이다. 이 무성서원은 구한말 대원군의 서월철폐령을 모면한 전국의 몇 안되는 서원 중의 하나이다.
또한 무성서원은 동학농민혁명 황토현 전투 당시 참여한 김기술 등 태인 유생들의 근거지가 되었던 곳 이었으며, 그 이후 을미사변 등에서 인상적인 의병활동을 한 최익현, 임병찬의 주요 거점이 되기도 하였다.
무성서원 강당. 앞면 5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 건물로. 중앙 3칸의 마루가 앞뒤로 뚫려 있어 아주 시원한 느낌을 주고 있다. 건물 전체적으로 날렵하고 시원한 느낌을 주고 있다.
무성서원 현판
무성서원 강당 양쪽에는 온돌방을 두고 있다. 기둥의 주련은 이지역 향약의 주요 내용을 적어 놓고 있다고 한다.
시원한 느낌을 주는 강당 마루
신라말 유학자인 최치원 선생을 모신 사당인 태산사
태산사는 앞면 3칸, 옆면 3칸의 크지 않은 건물로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태산사 현판과 출입문
태인 무성서원에 모셔진 최치원 선생 영정. 이 영정은 2010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고현동향약'과 관련된 특별전시에 전시된 것이다. 특별 전시회에서는 무성서원과 관련된 많은 유물들이 전시되었다.
무성서원 태산사 외삼문 기둥의 주련
무성서원 출입문 문루인 현가루. 멀리 칠보산을 바라보고 있다.
강당에서 본 현가루
현가루 현판
태인 서원 동쪽편에 있는 유생들의 기숙와 비슷한 용도로 보이는 건물인 강수재가 있다. 앞면 4칸의 일반적인 '-'형 한옥주택의 모습을 하고 있다.
수강재 현판
수강재 마루.
수강재 기둥에 걸린 주련들
수강재 양쪽에 온돌방이 있다.
조선시대 지방 사회에 유교를 토착시켜려 시행한 향약 가운데서 그 내용이 양적,질적으로 가장 충실하다고 여겨지는 전라북도 태인의 고현동 향약이다. 특히 가사문학 '상춘곡'으로 유명한 정극인 선생이 초기에 이 곳 향약을 주도한 까닭에 그 내력이 깊어져서 제대로 향약이 잘 시행되어진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형태의 향약 관련 문서들과 제도가 전해내려 오고 있다.
무성서원
이 서원은 신라 말 유학자인 최치원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지내는 곳이다. 태산 군수를 지낸 최치원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조선 성종 15년 (1484)에 세워 태산사라고 불렀는데, 조선 숙종 22년에 나라에서 무성서원이라는 이름을 내렸다. 현 건물은 헌종 10년(1844)에 다시 고친 것으로 최치원 외에도 조선 중종때 태인 현감을 지낸 신잠과 유학자인 정극인.송세림.정언충.김약묵.김관 등의 제사를 함께 모시고 있다. 이 서원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을 모면한 몇 안되는 서원 가운데 하나로, 2층 문루인 현가루와 강당, 강수재 등 건물이 예전 그대로 남아 있다. 또 참배객 명단인 봉심안, 서원의 규약집인 원규 등 귀중한 서원 연구자료도 보관되어 있다. <출처:무성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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